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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
콩나물신문
197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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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포 전 인천에서 지인 집안 혼사가 있었다. 그래 가는 김에 계양산을 한 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관악산과 함께 김포공항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기준점. 대한항공 다니던 젊은 시절 매일같이 쳐다보며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했던 대상이었다. 인천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1호선 전철 계산역에 내리니 북쪽에 바로 산이 보였다. 그런데 중턱부터 나무가 거의 없는 대머리 산…. 산성이 있다더니 바로 저것인가 싶었다. 지루한 계단 길 끝에 만난 성은 뜻밖에도 아주 훌륭한, 나의 기준으로는 국보급이었다. 해발 230m 높이의, 둘레가 1,18
내고향 부천이야기
박기성
2021.01.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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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준 신도비계수동 함박산 기슭에 조성된 청주한씨 묘역에 부천 향토유적 제3호인 한준신도비가 한언 묘표와 더불어 새롭게 조성되어 있다. 원래는 한언묘표, 한준신도비, 한언묘역, 한준묘역이 따로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옥길지구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할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조성된 것이다. 이에 한준신도비에 새겨진 신도비문을 소개한다. 비문 중간에 나오는 관직 같은 경우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가지 설명을 붙였다.(편집자 주) 우참찬청천군한공신도비명공(公)의 휘(諱)는 준(準)이고, 자(字)는 공칙(公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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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9.02.2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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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로 도배된 계수동 일대범박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단지는 뒤에 할미산을 배경으로 지어진 것이다. 자연녹지를 끼고 있어서 전원아파트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현대 홈타운은 삼태봉이라는 산을 하나 잡아 먹었다.할미산 아래에 봉긋하게 솟아 있던 삼태봉을 잡아먹고 자연을 도려낸 뒤 아파트들을 토해 놓았다. 삼태봉이라는 산은 삼신할미가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 아들딸을 점지해주는 중요한 산이름이다. 사람들이 삼태봉을 깔고 앉아서 삼신할미는 어디로 가서 살까?범박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계수동이다. 계수동에는 오른쪽으로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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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9.01.2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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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골 향나무.향나무는 밀양변씨 종가집에서 공장공 변종인 신도비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서 있다. 아주 큰 향나무지지만 오른쪽에만 잎들이 조금 살아있고 나머지는 죽은 가지를 달고 있다. 지금은 밀양변씨 제실인 흑량제(黑梁祭)의 뒤쪽 담안에 가두어 놓았다.향나무 아래는 많이 패여 있다. 밀양변씨 집안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기 위해 쪼개다 써서 그렇게 되었다. 공장공 변종인 신도비 주인공인 변종인이 강상골에 살 때 심었다고 전해져 오는 향나무이다. 변종인이 태어난 해가 1433년도이니까 2019년을 기준으로 무려 5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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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9.01.1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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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마루도당우물제로 이름이 바뀌어야...멧마루 마을인 원종동에 우물제가 일 년에 두 번씩 열린다. 멧마루가 현대화되기 이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거행해온 마을 공동 축제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마을 축제는 우물제, 도당제, 당산제, 산신제 등 다양한 제사 형태로 거행되었다. 부천만해도 장말도당굿, 깊은구지도당제, 조마루도당제, 소새대동산신제, 춘덕산산신제 등을 제사 지내고 있다.멧마루에서는 도당제나 당산제 보다는 우물제가 진행되었다. 멧마루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당산나무는 오정초등학교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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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12.2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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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꿀의 의미가리꿀은 거칠개 나루터 동편으로 원종2동주민센터에서 평화주택, 보령주택, 청실 빌라 등이 위치한 골짜기를 일컫는다. 현재는 원종 141번지, 성오로 127번길 일대이다. 능미 줄기가 이곳까지 뻗어와 만든 골짜기이다. 능미가 경인고속도로 건설로 원종, 성곡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원래는 한줄기였다. 능미 자락을 깊게 파서 다른 지역과 평평하게 고속도로를 만든 것이다. 지금 같으면 터널을 뚫어 공사를 진행했겠지만 1968년도 완공한 시절에는 그저 산을 깎아내려 속전속결로 만드는 게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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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12.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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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일제가 세운 신사(神社)와 신사(神祠)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설립한 신사에 대한 강요된 참배가 있었다. 우리민족 고유의 불교나 유교를 배척하고 일본인들의 신앙을 믿도록 강요하는 일이었다. 한민족의 뿌리인 근본적인 종교, 사상까지 바꾸려고 강요하고 억압한 정책 중의 하나였다. 일본신사는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로 나뉜다. 신사(神社)는 일본의 왕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모신다. 태평양전쟁 패전 이전까지 일본이 국교로 내세운 신도(神道)의 사당이다.일제는 불교나 유교 같은 종교적인 의미로 교(敎)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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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11.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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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만니들(乾滿野)멧마루에 건만니들(乾滿野)이 있다. 이 들은 조선지지자료에 부평군 하오정면 원종리에 있다. 한자로 건만야(乾滿野), 우리말로는 건만니들로 표기되어 있다.건(乾)은 뜻으로 읽지 않고 소리음을 취한다. 그러기에 ‘건’은 우리말 ᄀᆞᆷ에서 유래한다. ᄀᆞᆷ은 대부분 산을 뜻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청동기 시대 이후에는 마을을 다스리는 족장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ᄀᆞᆷ에서 ‘감, 검, 곰, 금’으로 변천을 해왔다. 한자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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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10.2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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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마루 지역의 들판멧마루 지역 들판은 일제강점기 1925년 김포 신곡리에 양배수장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황무지에 불과했다. 이 양배수장이 1925년도 을축년 수해에 파괴되었다. 부평수리조합에서 부서진 양배수장을 걷어내고 다시 시공을 해서 완공한 해가 1929년도였다. 이후 부천 전역의 들판에 한강물을 공급해주는 동부간선수로도 완공되었다. 이 동부간선수로에서 뻗어나온 수로가 멧마루까지 연결되어 갈대밭 천지였던 곳이 하나 둘 농지로 바뀌어 나갔다.일제강점기 1912년도에 출간한 토지조사부에는 멧마루인 원종리의 토지현황이 상세히 기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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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10.1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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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마루 성터골 이야기성터골은 멧마루에 있는 계산(鷄山)의 원종1동에 위치한 골짜기를 말한다. 골짜기이지만 성재(城峴)를 기점(起點)으로 해서 길게 집들이 이어진 마을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 성터골을 마을이라고 하지 않은 걸 보면 멧마루, 새기, 새텃말, 은데미 같은 마을에 비해 그 크기가 작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멧마루에서 가까워 통칭 멧마루로 통합해서 부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하지만 이 성터골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었음은 일제강점기 1919년도 지형도를 보면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이 지형도를 보면 오정초등학교에서 오쇠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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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9.2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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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개는 나루터인가?멧마루(원종2동)에 거칠개가 있다. 발음이 조금 거칠다. 이 거칠개라는 땅이름이 있는 관계로 원종2동에선 해마다 거칠개주민대축제를 연다. 대명초등학교 교정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그럼 이 거칠개의 의미는 무엇인가? 거칠개의 의미를 단순하게 아주 거친 땅이라고 표현하면 한자로 황현(荒峴)이면 된다. 그러면 뒤에 붙은 개는 의미가 없어진다. 황현(荒峴)은 거칠고개이다. 이 거칠고개는 것친고개로 표기한다. 부천에서 두 군데에 있다. 일제에 의해 작성되어 1911년도에 출간한 우리나라 땅이름을 총망라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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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 (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8.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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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기 마을에 대한 기록 역사새기 마을에 대한 어원적 풀이는 참으로 어렵다. 우리나라 땅이름은 한자어, 순우리말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다. 이처럼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이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 호구총수,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같은 지리서, 1911년도에 출간한 조선지지자료, 일제강점기 1919년도 부천지형도, 현대지도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그리고 마을에 정착해서 살았던 분들의 묘지 등이 기록되어 있는 족보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총 섭렵해서 마을의 역사를 유추 해석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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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 (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7.1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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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기 마을의 위치 새기라는 마을이 있었다. 쇄기라고도 한다. 어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 싣는다. 멧마루인 원종마을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계산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새기하고 멧마루 사이에는 새터말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한자로는 신허리(新墟里)이다. 새롭게 터를 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1919년 지형도를 보면 새터말은 둥그렇게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새터말이라는 말로 미루어 멧마루나 새기 보다는 늦게 마을이 생겼음을 유추할 수 있다. 현재의 지도에 보면 새기 마을을 간단하게 찾을 수는 없다. 다들 빌라나 아파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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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6.2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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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마루 봉안산(鳳鞍山)이 길마재(?) 멧마루에 봉안산(鳳鞍山)이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산이 있었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봉안산(鳳鞍山)은 은데미에서 계산을 거쳐 길게 뻗어 내려온 끝 부분에 위치해 있다. 멧마루 북쪽에 길게 뻗어 있던 산이다. 현재는 해주1,2차아파트, 태백맨션, 동문아파트, 대풍푸른들아파트, 삼풍주택, 욱일6차 아파트, 원종동세창짜임 1차아파트, 럭키파크가 있다. 봉오대로가 봉안산 자락을 잘라 먹고는 그 끝머리에 조그만 솔산을 남겨 놓았다. 봉오대로에서 원종동으로 들어오는 톨게이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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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6.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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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마루(遠宗洞)인가? 먼마루인가? 멧마루는 원종(遠宗) 마을로 봉안산(鳳鞍山) 중턱에 자리잡은 동네이다. 한자로는 원종리(遠宗里)로 쓴다. 조선 지지 자료에도 원종리(遠宗里), 먼마우로 표기되어 있다. 먼마루라는 표기는 없다. 한데 먼마루가 대세가 되어 멧마루를 밀어냈다. 먼마루 벚꽃축제, 먼마루도당우물제, 먼마루감리교회, 먼마루어린이공원, 먼마루상가, 먼마루숯불구이, 먼마루꿈나무학당 등이다. 대신 멧마루를 쓰는 상호는 없다. 멧마루는 언제부턴가 일상화되지 않았다. 부천시 행정이 적극적으로 멧마루를 밀어내고 먼마루를 선택해서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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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5.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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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마루에 세워진 장승들 조선시대에는 춘의레포츠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등 4군데에 장승이 서 있었다. 그 중에서 한 곳은 그 위치를 알 수가 없다. 북쪽에 세워진 장승이다. 춘의레포츠 공원입구에서 남쪽 길은 부천순복음교회에 위치한 할미당으로 올라가는 곳이었다. 동시에 춘의 주공아파트 위쪽에 자리한 할배당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산길이 있었다. 장승은 길을 안내하는 동시에 마을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할배당에서 조마루도당제(朝宗里都堂祭)를 시작했다. 이 할배당엔 오래된 소나무가 있었다. 이 노송이 조마루를 지켜주는 도당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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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 (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5.1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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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마루에는 조씨가 많이 살지 않았다. 조마루에 조씨가 많이 살지 않았다. 1912년도 경기도 부평군 옥산면 조종리의 토지조사부에 따르면 조씨는 조기번(曺基番)씨 단 한 사람이었다. 조기번씨는 조마루 지번 중에서 58번지 68평, 94번지 457평, 116번지 480평을 소유했다. 총 1,005평이다. 조마루에 살지 않고 경성부에 살던 조덕승이라는 사람이 부재지주로 등재되어 있다. 경성부(京城府) 서부(西部) 반석방(盤石坊) 포동(布洞)의 조덕승(曺德承)은 지번 100번지에 논 2,256평. 167번지에 논 2,932평을 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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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 (시인, 부천 향토역사 전문가)
2018.04.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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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마루에 시작한 조마루길 조마루는 멀미 서남쪽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조마루로 끝부분인 구원미계량소 일대로 조마루로 양켠으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마루로는 벌말에서 오던 옛길을 확대 포장한 것이다. 조마루길은 일제강점기에 신작로로 포장되었다. 그전에는 논둑길, 밭둑길로만 있다가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수준으로 정비가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지형도를 보면 벌말에서 오는 연로(聯路) 끝자락에 조마루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연로 양켠에 마을 집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 조마루길인 1970년대에도 조마루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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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 (시인,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4.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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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우물인 밑우물이 있던 당아래, 당하리, 당아리, 양지마을을 찾아라!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hansan21@naver.com ◆ 당아래 양지마을에 밑우물이 있었다.당아래 마을은 부천종합운동장역에서 조금 서쪽으로 위치한 곳에 있다. 당아래 지하차도 서북쪽에 당아래 마을로 들어가는 길주로 463번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한바퀴 돌면서 마을 구경을 하면 된다. 마을길이 구불구굴 한 걸로 옛마을의 윤곽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아직 집 몇 채는 그나마 단독주택으로 70~80년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린벨트로 묶여 개
내고향 부천이야기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3.2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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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신작로에서 시작해서 부천의 최초의 버스 소신여객자동차부까지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 신작로(新作路)의 의미(?) 겉저리 앞, 당하리 앞, 점말 앞, 성골 앞, 은데미 앞 도로를 가리켜 마을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새롭게 조성된 신작로라고 불렀다. 신작로(新作路). 새롭게 만들어진 도로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도로의 역사를 보면 조선 중기까지 엉망이었다가 조선 후기에 와서야 부랴부랴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 도로를 정비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일본에 다녀와서 일본의 도로 상황을 상세하게 살펴 본 김옥균(金玉均)이 문제를
내고향 부천이야기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8.03.11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