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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
콩나물신문
197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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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잎과 난잎 사이엔 눈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눈이 있다. 지푸라기에도 눈이 있고, 돌덩이에도 눈이 있다. 눈이 있어 날카로운 사금파리에 손이 베이는 것이다. 그 눈이 우리를 보고 있다. 한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한없이 정지된 얼굴로, 한없이 흔들리는 얼굴로, 한없이 가라앉아가는 얼굴로 보고 있다.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새의 눈동자에 하느님의 눈동자가 겹친다.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날쌔게 빙어를 낚아채는 촉새의 눈망울엔 우수가 어려 있다. 난 치는데 용의눈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늘 용눈을 만들어야 한다. 가끔씩 봉황눈을
언니네글밭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6.03.1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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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의 세계(世界), 용안(龍眼)에 푹 빠지다 오년 째 꽃을 피워본 적이 없는 난화분이 있다. 어떻게 꽃을 피워내야 하는지도 몰라 그저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끔씩 물이나 주고 있다. 물만 먹고 사는 난초가 초라하다. 잎이야 늘 싱싱하지만 이상하게 내게 꽃은 보여주지 않는다. 난화분 처음 살 때 화려한 향기를 선보인 뒤로는 영 꿩 구어 먹은 소식이다. 나름대로 난꽃 피우는 방법을 연구해보고, 여기저기 자문도 구해보고, 인터넷이 알려준 대로 해보기는 했지만 며칠을 견뎌내지 못했다. 천성이 게으른 탓이다. 봄볕 아래 꼴마리를 까놓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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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 (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2016.03.0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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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붉게 타오르는 열정이 아직 스러지지 않은 탓이다. 자꾸 핏발만 세운다고 이 땅에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봄바람에 빙하(氷河)가 녹아 지구의 수위가 높아지듯이 마음속에 갈무리져 꽁꽁 얼어버린 분노 같은 것을 녹여내야 한다. 단전호흡부터 시작해서 난초그리기에 도전해야 할까 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자갈이 구른다. 자갈과 자갈이 서로 부딪혀 파열음을 낸다. 구석기시대 벌거벗은 사내가 만들어내는 주먹도끼처럼 날카롭다. 이 주먹도끼를 들어 누군가를 향해 달려들고만 싶어지는 날들이 많아진다. 찢기고 찢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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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 (시인, 향토역사 전문가)
2016.02.2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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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향기 담아 이른 봄, 찻잔 속에 감기어 드는 휘파람새 아지랑이 눈꺼풀 속으로 스며들어라 아가의 입김 매화 꽃송이 향기에도 물비늘 털며 눈주름으로 화답하고 봄볕에 가슴 데우는 사랑, 이름 지어달라는 몸짓 매화꽃 두 송이 품에 안네 깨복쟁이로 서 있는 봄 그림자 우주를 덮고 뿌리 없는 꽃에게 가는 길 멀고 멀어라 제웅 닮은 사내 하나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곳, 해토머리에 자갈돌들이 튀어 오르면 이름 없이도 몸짓 없이도, 물그림 속에서 붉은해 한 마리 날아오르네 동희 최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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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작가의 특별한 문인화
2016.02.0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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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동 계곡으로 가는 길 나무들이 마음의 불을 켜 길이 환하다 잎사귀 마다 달고 있던 등불이 겨울이 되어 몸뚱이로 침잠(沈潛)한다 그 등불을 따라 조릿대며 수크령이 커간다 이들도 조심히 등불을 켜지만 얼음조각이 등줄기를 쓰다듬을 땐 뿌리에다 등불을 단다겨우내 땅밑은 온통 뿌리들이 내는 불빛으로 환하다 그 환한 불빛을 받으며 두더지는 자신의 생을 건 모험을 시작한다 봄이 되어 파헤치는 길이 산골짜기에 가득하다 두더지는 새로운 길을 내는 천재(天才)수렴동 계곡으로 가는 길은 그래서 조심스럽다 두더지가 낸 길이 무너질까봐 한 발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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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신문
2016.01.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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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마음의 불을 켜 길이 환하다 잎사귀 마다 달고 있던 등불이 겨울이 되어 몸뚱이로 침잠(沈潛)한다 그 등불을 따라 조릿대며 수크령이 커간다 이들도 조심히 등불을 켜지만 얼음조각이 등줄기를 쓰다듬을 땐 뿌리에다 등불을 단다겨우내 땅밑은 온통 뿌리들이 내는 불빛으로 환하다 그 환한 불빛을 받으며 두더지는 자신의 생을 건 모험을 시작한다 봄이 되어 파헤치는 길이 산골짜기에 가득하다 두더지는 새로운 길을 내는 천재(天才)수렴동계곡으로 가는 길은 그래서 조심스럽다 두더지가 낸 길이 무너질까봐 한발 한발 내 딛는 힘이 줄어든다 산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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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 조합원
2016.01.2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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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묻어 둔 새무덤 주위에 보랏빛 등불 단 쑥부쟁이꽃 피었네. 한밤중 눈송이 내려와 포근히 덮여도 손톱의 반달만큼 환하게 비추네. 그때, 사르락사르락 눈 밟으며 다가오는 노루. 쑥부쟁이꽃 근처에서 길을 잃고, 사냥꾼도 길을 잃어 허방에 빠졌네. 이마에 꽃등을 단 대장장이 딸, 노루 숨겨주고 사냥꾼을 살려주었네. 사냥꾼은 흰눈을 털며 한양으로 가고, 쑥부쟁이 그리움만 첩첩산중 돌무덤으로 쌓였네. 쑥부쟁이 꽃등이여! 낭군 가는 길 환하게 비추소서. 굽은 산길 곧게 펴게 하고, 질척한 들길이여, 마른 황토길 되라. 천길 낭떠러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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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연 박옥자
2016.01.1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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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이 돛을 올린다. 낮별의 발자국을 따라 꽃의 항해가 시작된다. 사랑의 보물 찾아 떠나는 길. 바람도 볼우물을 만들며 빙그시 웃는다. 매화 돛에 올라탄 동박새 두 마리. 항구에 붙잡힌 등대를 향해 손을 흔든다. 뚜우뚜 뱃고동 소리가 발등에 파문을 일으킨다. 언제쯤 동박새는 보물섬을 찾을까. 이때, 통통거리며 산머리 돌아오는 경운기. 눈주름 가득한 여인의 눈엔 한세월 함께 보낸 사내의 뒷통수가 달력처럼 걸려 있다. 귀밑머리 핏줄기 속으로 번개처럼 회한(悔恨)이 스며든다. 낮별의 무릎에 진한 파스 한 장 붙이리라. 매화 돛이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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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범
2015.12.29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