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꿈을 내려놓고 지는 자가 아니라
허공에 일생 감춰두었던 색 하나를 마지막으로 꺼내 입는 자
목숨의 끝까지 단장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마지막을 뜨겁게 인수하는 자
다른 세계를 시작하는 자

단풍은 푸르렀던 꿈을 내려놓고 죽음에 이르는 자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시작하는 자다. 마지막에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닫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직전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토록 붉고 선연하게 스스로를 장식하며 떨어질 리가 없다.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생명의 태초로 돌아가는 의식이 장엄하고 화사하다. 노을 진 저녁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산을 내려오는 아이들의 붉은 노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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