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술인 한선화 씨가 말하는 행복

 

▲ 1월 5일부터 일을 시작한 박병학 기자가 신년운세를 보고 있다.

2015년 새해의 첫 화요일, 부천 북부역에 있는 어느 철학관을 찾아가 역술인 한선아 씨를 만났다.
 
삼층에 있는 철학관 문을 여니 깨끗하게 치워진 안쪽이 환하게 드러났다. 천장에는 주홍빛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맨 안쪽으로는 위패와 향로, 촛불 등이 놓인 제단이 말끔하게 차려져 있었다. 한선아 씨가 따라 준 우엉차는 따스하고 구수했다.
 
역학에 흠뻑 빠지기까지
 
“지금 내가 칠십이 넘었는데. 부천 요 자리에서만 35년째 하고 있어. 부천 오기 전에는 인천 신포동에서 좀 있었지. 부천은 나한테 고향이나 다름없어. 어렸을 때 시흥에 살았거든.”
 
한선아 씨는 시골에서 부자 소리 듣고 사는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좋아해 집안일을 끝내고 나면 눈에 불을 켜고 책에 달려들었다고 했다.
 
“집안 식구들도 많았고 머슴도 많았으니까 그거 다 먹여살리는 게 다달이 큰일이었어. 낮에는 일을 해야 하니 책을 못 봐. 저녁 되면 보리쌀 씻어 놓고 모기장 속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데 한자를 하루에 30자씩 외웠어.”
 
더 넓고 깊은 무언가를 공부해 보고 싶었던 한선아 씨는 한자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해서 ‘사주 풀이’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역학 공부가 주는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된다.
 
“한문이 많은 책을 봐야겠다 싶어 사주 책을 보는데 이게 재미가 있는 거야. 그래서 나중엔 종로에 있는 천문대 학원에 찾아가 역학을 혼자 공부했지. 거기서 한 3개월 배우고 나와서는 철학관에 찾아가 거기 사람들을 어떻게 봐 주나 보러 갔어. 근데 거기서 철학관 선생님 사주를 봐 주며 내가 ‘숨겨 놓은 자식 있죠?’라고 물어보니까 그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는 그렇다는 거야. 대체 어디서 공부를 했길래 그렇게 잘 맞히냐고 되려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했지. (웃음)”
 
마침내 철학관을 차리다
 
인천 신포동에서 계속 역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뭔가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어져 중앙시장에 고추방앗간 대리점을 차렸지만 1년 만에 한선아 씨의 표현대로 ‘털어먹었다’.
 
“이젠 내 사업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부천 남부역에 자리를 잡았지. 근데 떨리는 거야. 그래서 밤에 몰래 나가 문에다 간판을 걸었어. 첫손님을 받긴 받아야 하는데 너무 떨리니까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다음날 아침이 되니까 손님이 왔어. 그래서 봐 줬는데 잘 맞는다고 탄복을 하는 거야. 그때 난 햇병아리였는데. (웃음)”
 
그때부터 부천에 들어앉은 한선아 씨는 차츰 이름을 알리며 역술인으로 홀로 서는 데에 성공한다.
 
“광고 한 번 안 냈는데 알아서 잘들 전화하고 잘 찾아와.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주로 이쪽에서 많이 오지. 오히려 이 근처에선 내가 이걸 하는지 잘 몰라. (웃음) 와서는 사업 문제니 궁합이니 택일이니 몸이 아프니 많이들 물어보지.”
 
▲ 45년 된 한국역리학회 회원증
 
책 읽고 시 쓰고 춤추는 역술인
 
손님이 없을 때는 무엇을 하며 지내시냐고 물으니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공부지. 공부밖에 없어. 내가 시골이 아니라 도회지에 살았다면 교육자로 나갔을 거야. 예나 지금이나 항상 책 속에서 사니까.”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진 한선아 씨는 두툼한 서류철 한 권을 들고 나왔다. 한선아 씨가 그동안 틈틈이 써 둔 시를 모아놓은 서류철이었다.
 
“지금도 시간 있으면 책방에서 살아. 이마트 7층에 있는 교보문고. 책이 내 애인이라는 시가 이거야.”
 
나의 파트너/그 이름은 무명인(冊)/내가 사랑하는 애인이다//당신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삶이 고달프고 지쳤을 때/끈기와 힘을 주었던 당신/지금은 내 남편으로 자리잡고/당신이 반겨주는 교보문고/날 부르는 소리 들린다.//틈만 나면 달려가/당신을 안고 사랑에 빠진다/당신이 있기에 업그레이드되어/지금은 당당히 살고 있다/고마운 당신… (<나 2>)
 
한선아 씨는 서류철을 넘겨 어느 대회에서 상을 탔다는 시를 보여주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네 쪽이나 되는 길다란 시였는데 거기엔 온갖 병을 치른 몸으로 힘들게 손녀딸을 낳은 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를 읽어 주던 한선아 씨는 딸이 유방암에 걸리는 대목에 이르자 더는 못 읽겠다고 하며 뒤로 물러앉았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책방에선 주로 어떤 책을 보시느냐 물었다. 책 이야기만 나오면 한선아 씨의 눈빛은 초롱초롱해졌다.
 
“역학이나 불교 서적들을 많이 보는데 책방 갈 때마다 종이와 볼펜을 꼭 챙겨 가. 그 많은 책들을 다 살 순 없으니 내게 필요한 내용들만 종이에 깨알 같이 적는 거야. (웃음) 온종일 그렇게 지내면 눈도 가물거리고 허리도 아픈데 한 번 종이에 적어 오면 한 달이 즐거우니까. 그게 사는 거지.”
 
그게 사는 거라고 웃으며 말하는 한선아 씨에게는 독서 말고 또 다른 취미가 있다. 사주 풀이로 이름이 알려졌음에도 어떤 이들은 한선아 씨에게 춤을 배우러 찾아온다고 한다.
 
“내가 댄스를 해서 인기가 많아. (웃음) 지난번엔 손님 하나가 오더니 나 보고 춤을 가르쳐 달래. 어떻게 알고 왔냐고 했더니 누가 소개해 줬다는 거야. 저 사람한테 가서 배우면 제대로 배운다고. 그래서 손주들 없을 때 저 안채에서 가르쳐 줬지. 손주들 있으면 춤출 때 내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그러면 행복이지 더 뭘 바라겠어?”
 
손님 맞이하랴 책 읽으랴 시 쓰랴 춤 추랴, 언뜻 생각하면 전혀 역술인답지 않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듯하여 한선아 씨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역술인을 어떻게 대해 줬으면 좋으시겠어요?
 
“어떻게 대하고는 별로 안 중요해. 그렇잖아. 사람이 자기가 편안하고 잘 살면 이런 데 안 오게 돼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런 델 오는 거야. 편안하면 안 와. 마음이 답답하고 아파야 조언을 들으러 오는 거지. 우리가 몸이 아프면 조언을 들으러 병원에 가잖아. 그런 거야.”
 
지금 역술인들이 처한 현실은 어떻고 역학이란 또 무엇인지 많은 말을 쏟아내리라 짐작했지만 한선아 씨의 대답은 짧고 명쾌했다. 철학관은 그저 마음을 치료하는 병원과 같은 곳이고 자신은 의사처럼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뿐이라고 한선아 씨는 말하고 있었다.
 
“역술인이든 뭐든 난 내가 어떻게 불려지길 바라지는 않아. 지금의 내 생활이 가장 행복해. 즐거우면 즐거운 거고 행복하면 행복한 거야. 옛날엔 신랑이 돈을 못 벌어서 애들 학비다 뭐다 내가 살림에 신경을 써야 했으니 허구한 날 위장이 안 좋았어. 병원에선 신경성 위염이라 그랬지. 근데 지금은 벼락이 친다 해도 편하게 마음을 먹어. 그 어려운 일들도 다 겪어 왔는데 지금은 밥은 먹고 살지 않느냐 이거지. 그러면 행복이지 더 뭘 바라겠어?”
 
내일도 태양은 떠오른다
 
따라 놓은 우엉차는 어느 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잔을 비우고 마지막으로 한선아 씨에게 콩나물신문 독자들을 위한 한 말씀을 부탁드렸다.
 
“열심히 살아야지. 자기 일 꾸준히 하면 되지 다른 건 없어. 자기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면 복이 되는 거야. 어떻게 살면 복이 온다 하는 건 사실 없어. 부지런하면 돼. 그러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올해 나의 화두가 그거야. 좌절을 하지는 말자는 거지. 내일도 태양은 뜬다 이거야.”
 
무지개처럼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갔을 계단을 밟고 내려오면서, 평생을 역학에 바친 역술인의 말을 곱씹게 되었다. 어떻게 살면 복이 온다 하는 것은 없다. 꾸준히 자기 일을 하며 열심히 살면 복은 찾아오게 돼 있다. 사주 풀이 책에 나와 있는 그 어떤 내용보다도 더 신통하고 영험한 이야기를 들려준 한선아 씨는 말 그대로 진정한 역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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