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설 명절의 연휴가 끝나자 월 말이어서인지 조금은 사무실이 조용하다. 특별한 일도 없고 날씨마저 겨울로 회귀하는지 매서운 칼바람이 더욱 봄날을 그리워하게 하는 저녁 퇴근길.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을 나와 전철을 탔다. 퇴근시간이 빨라서인지 전철마저 한가하여 두 세 명만 서서 갈 정도였다. 아무 생각 없이 손잡이를 잡고 창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앞에 앉은 꼬마공주의 말 한마디 “할머니 저 초등학교 입학하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할머니, 엄마, 아빠께 효도할거에요.”라고 하며 같이 앉은 할머니께 맹세하듯 말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많이 들었던 단어여서인지 귀에 쉽게 들어왔다. 순간 귀엽기도 하고 깜찍하기도 하여 꼬마공주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몇 살 이니?” 돌아오는 대답이 “저는 여덟 살이에요. 3월 2일 날 초등학교에 입학해요.” 라고 하면서 다짐이라도 하듯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이 될 거에요.’라는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나 역시 과거 초등학교 입학할 때 그런 마음을 먹었는데.......

 

훌륭한 사람…….훌륭한 사람…….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고 어떤 삶이 훌륭한 삶인지? 가끔 시간이 날 때 논어(論語)를 읽고 있는 나는 논어 학이편(學而篇) 일장의 마지막구절 「人不知而 不溫 不亦君子乎」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 평가해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섭섭함이나 원망스러워하는 마음을 마음속에 갖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야 말로 진정 훌륭한 사람이고 군자가 아니겠는가? 라는 말로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서 공부의 목표를 군자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자시대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군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공자시대의 군자, 오늘날의 훌륭한 사람’

이 말은 시대가 희망하는 좋은 뜻의 단어인 것은 분명한데 지나치게 추상적 이여서 선뜻 이해가 와 닿지를 않는다. 이러다보니 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습관적으로 뱉으면서 자녀들에게 바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훌륭한 사람」 : 모든 면에서 누구나 함께 공감할 수 있어 어느 한곳도 나무랄 것이 없는 사람.

「군자(君子)」 : 이성으로 감성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남의 감정에 자신의 감정이 휩싸여 무분 별하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

 

우리들은 꼬마공주가 말한 것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보자. 직장에서의 직급은 무엇인지? 연봉은 얼마인지? 자동차는 무엇을 타는지? 몇 평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등등..........................................

주변 환경이 곧 자신의 삶의 척도가 되어버린 것이 대다수 우리들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진정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처지나 환경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이끌려가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조금 심하게 말한다면 주체적이며 능동적인 삶이 아닌 기계적이며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기 일쑤다. 이것이 과연 훌륭한 사람의 삶이고, 이것이 과연 군자로서의 삶인가?

 

일주일에 단 10분만이라도 혼자 거울 앞에 서서 자신과의 대화를 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마음만이라도 훌륭한 마음, 군자의 마음을 음미하며 다잡아 보는 것도 지치기 쉬운 삶에서 좋은 청량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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