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임 목사를 찾고 있는 교회의 장로에게

이 장로!

살면서 철 없는 인간들이 목사라고 시건방 떠는 꼴 많이 보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목사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더군요. 그나마 나는 목사가 밥 벌어 먹는 수단이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매질을 하기라도 했지만. 나는 또 어떤 덜 떨어진 인간이 이 장로네 교회에 목사라고 와서 허송세월을 할까 하는 걱정이 많습니다.

목사 청빙 과정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단순히 설교 듣고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옛날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설교 들어보고 결정을 했었지요.

그러나 사람을 한 번 만나서 말로 감동을 주는 것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사기성 많은 사람이 제일 잘하지요. 행동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어렵지 말로 감동을 주는 것이 어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차려놓은 무대에서 마음 먹고 하는데....
그것도 못하면 자질면에서 이미 목사로서의 직무에 맞지 않는 것이 겠지요.

그러면 생활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우선 이력서를 면밀히 검토해 보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요즘은 high technology 시대입니다. 우선 그 목사 이름을 검색해 보아서 아무 곳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그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즘 세상에 온라인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다음으로 구태어 비싼 비행기값 들여서 왔다갔다 할 필요 없습니다. 스카이프(skype)를 통하여 화상 통화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그런 것 못한다? 그런 사람은 이 시대의 목사로서 자격미달이지요.
아마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화상 통화를 한다면 교인들의 참여도가 저절로 높아지고 의견을 들을 수 있으니 민주적인 절차가 자동적으로 될 것이고 뱔 것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젊은이들이 동원되면 더욱 새로운 목회자 청빙에 관심이 높아져서 좋을 것이구요.

 

참고로 지금은 세계의 어떤 기독교 회의에 가도 여성과 청년의 참여를 보장 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목회자 청빙 과정에 반드시 청년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속으로는 객관성이 전혀 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로는 그럴듯 하게 객관적으로 포장하는 기술들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위선적이 되기 쉽지요. 교회에 와서 진실하고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에서 보다 더 위선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책임 큰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사고를 할 줄 아는 목사를 만나야 성도들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들 가운데는 나이는 젊은데 생각이 늙은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것이 축복이 아니라 넓고 깊게 생각할 줄 아는 목회자를 만나는 것이 축복이고 마음 속에 자기도 모르는 도둑을 키우는 목회자를 만나면 성도들이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예수의 정신에 철저하게 서 있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신자들을 영적으로 좁고 얕은 시냇물가로 아니고 넓고 깊은 대양으로 인도할 수 있는 목사도 있습니다. 잘 찾아 보세요.

호주 시드니에서 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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