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콩나물신문 박병학 기자입니다. ‘일간신문 거들떠보기’라는 꼭지를 새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흔히 5대 일간지라 불리는 ‘한겨레, 경향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주요 화젯거리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살펴보려는 목적으로 이 꼭지를 기획했습니다.

이번에는 2015년 4월 20일자 일간지들이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였습니다. 4월 18일 서울시청 광장과 광화문에서는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범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경찰은 광화문 방면에 경찰버스들로 만든 차벽을 겹겹이 둘러쳤고 분노한 시민들은 경찰과 충돌하며 늦은 밤까지 광화문을 떠나지 않았는데요. 경찰은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의 지휘 아래 유가족들과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캡사이신(최루액)을 뿌렸습니다.

극과 극을 달린 1면

4월 20일자 일간지들을 보면,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1주기 범국민대회를 1면에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다루는 방식이 180도 달랐습니다.

 

 

한겨레 1면입니다. 한겨레는 경찰이 세운 차벽이 길게 늘어서 있는 사진을 1면에 박고 경찰의 ‘과잉 진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다루었습니다. 기사 끝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국제엠네스티의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집회를 주최한 세월호가족협의회·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등은 “참사 1주기에 폭력 진압으로 추모와 헌화조차 못하게 막은 경찰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평화적인 집회와 행진을 하는 유가족과 시민을 공권력을 동원해 막는 정부의 모습은 과거 군사정권과 하등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앞서 17일 국제앰네스티도 추모제 진압 과정에서 최루액을 뿌리고 유가족의 갈비뼈가 부러진 상황과 관련해 “평화적인 집회와 행진을 진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최루액 살포는 폭력행위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평화적인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하기 위한 것으로 국제 기준에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1면입니다. 일단 <태극기 불태운 시위대>라는 제목부터가 무척 자극적입니다. 세월호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시위대’라 싸잡아 부르는 것도 모자라 시민들이 경찰에게 어떻게 ‘폭력’을 행사했는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교묘하게 감싸준 대목을 보겠습니다.

“특히 시위 참가자 중 일부는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경찰이 이를 저지하자 경찰이 설치한 경찰버스·트럭 등 차벽을 부수고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 과격양상을 보여 경찰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발사했다.”

한겨레와 조선일보는 1면 말고도 따로 지면을 마련하여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를 다뤘고, 1면에 내지는 않았지만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중앙일보도 범국민대회를 다뤘습니다. 먼저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보겠습니다.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한 한겨레와 경향신문

 

 

 

 

한겨레 30면 ‘한겨레 프리즘’과 31면 사설을 보겠습니다. 칼럼인 한겨레 프리즘에선 문화부 이유선 기자가 “국가를 대행한 공권력은 시위대에게 ‘해산’을 명령했다. 사회적 연대를 해체하는 이날의 물대포 앞에,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며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했습니다. <구조엔 무능, 진압엔 잔인한 정권>이라는 제목을 단 사설은 경찰을 넘어 박근혜 정부까지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10면(사회면)에 <주말 세월호 집회, 물대포로 밀어붙인 공권력>이라는 제목으로 경찰들이 어떻게 과잉 진압을 했는지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31면 칼럼 <다시 돌아온 ‘불통의 차벽’>과 사설 <세월호 민심, ‘근혜 산성’으로 덮을 수 없다>에서는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경찰과 박근혜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을 '폭력 시위대'로 규정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의 분노는 하늘을 찌릅니다. 10면 기사 <선 넘은 세월호 집회… 경찰차 71대 파손, 100명 연행>를 보면 “좌파단체 등 800여곳 참여한 ‘세월호 국민대책회의’가 범국민대회 행사 주도”, “어둠 내리자 시위 과격해져”, “광화문 코앞에서 시위, 문화제 훼손 우려도”와 같은 대목들이 눈에 띕니다. 시민들을 “태극기 태우고 경찰버스 부순 시위대”라 부르는 건 1면과 비슷하지만 재미있는 건 “불법 시위에 아슬아슬한 광화문”이라며 문화재가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기자는 정작 걱정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 것일까요?

 

 

조선일보 35면 사설은 굉장합니다. <단골 시위꾼들 폭력 투쟁, 국민들 ‘세월호’에 더 고개 돌린다>. ‘단골 시위꾼’은 조선일보가 ‘단골’로 쓰는 표현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가 치밀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도 조선일보의 눈에는 ‘단골 시위꾼’으로 보이나 봅니다. 사설은 이렇게 끝납니다. “세월호 관련 집회·시위가 정권 타도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전문 데모꾼들의 기획·선동 때문이다.” 즉 세월호 인양과 참사 진상규명을 부르짖는 시민들 모두를 ‘데모꾼’들의 선동에 놀아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는 겁니다.

 

 

동아일보는 어떨까요? 동아일보는 아예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를 10면에서 딱 한 번 다뤘습니다. 그것도 주로 젊은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기자의 눈’이라는 꼭지에서입니다. <망가진 경찰버스, 깨진 유리창… 폭력 얼룩진 광화문>이라는 제목만 봐도 기사 내용이 짐작됩니다. 그러나 이 기사의 절정은 끝부분에 있는 대목입니다. “위험천만한 불법 폭력시위의 해산을 앞두고, 그 중심에 있던 유가족 단체와 국민대책회의 간부, 국회의원은 시위대에 ‘위험한 행동은 자제해 달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안전사회 건설’을 외치면서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고, 안전보다 자기 목적을 중시하는 이들의 행태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또 다른 참사였다.” ‘참사’라는 말을 이렇게 쓰다니, 이샘물 기자는 하늘이 두렵지도 않나 봅니다.

중앙일보를 보겠습니다. 중앙일보와 형제나 다름없는 JTBC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올렸습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논조는 180도 다릅니다.

 

 

 

 

10면 기사를 보면 제목부터가 살벌합니다. <태극기 태우고, 경찰 폭행… “폭력 시위에 외부세력 개입”>. 기사도 사진도 죄다 시민들의 ‘폭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사설은 한 술 더 뜹니다. <세월호 추모와 폭력시위는 구분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은 추모행사에 나선 시민들을 “희생자 가족들을 반정부 폭력시위로 끌어들여 일반 시민들과 이간질하는 불순한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날밤의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다섯 개 일간지를 거들떠보았습니다. 경향과 한겨레는 경찰과 정부의 ‘과잉 진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시민들의 ‘폭력’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묻기 전에 상황의 맥락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00여 명이 산채로 바다 밑에 가라앉았는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전히 세월호 안에는 실종자 아홉 명이 있는데 배는 언제 인양될지 기약이 없습니다. 더구나 참사 1주기에 맞춰 대통령은 나라밖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대통령도 정부도 참사 진상규명이나 세월호 인양을 위해 눈곱만큼도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4월 16일에 있었던 참사 1주기 추모행사에선 단지 분향소에 꽃을 두고 오려는 시민들을 경찰이 차벽과 폴리스라인으로 막았습니다. 감정이 있는 존재라면 마땅히 분노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 분노가 18일 범국민대회를 통해 폭발했습니다. 광화문 누각 앞에서 노숙을 하던 유가족들을 경찰이 강제로 연행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은 유가족들은 경찰들에 둘러싸여 고립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범국민대회에 모였던 사람들이 광화문 앞으로 달려갔고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그러나 말이 충돌이지 경찰은 차벽과 폴리스라인으로 굳건한 성벽을 쌓았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으로 시민들을 ‘공격’했습니다.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이라는 사람은 어딘가에 숨어 목소리로만 경찰들을 지휘하면서 ‘채증’과 ‘연행’을 부추겼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몇 시 방향’에 뿌리라고 직접 지시했습니다. 이에 흥분한 시민들은 경찰버스를 부수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맥락은 무엇일까요? 첫째, 정부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이 참사 1주기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해외 순방을 핑계로 증발했다는 것. 둘째, 정부의 무능과 대통령의 비겁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경찰은 차벽과 물대포로 응답했다는 것.

그렇다면 일부 시민들이 이른바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고 해서 그것이 그날밤 상황의 ‘본질’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폭력’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도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널리 퍼지지 않도록 은폐하기 위해서이고, 세월호 참사를 ‘조용히’ 추모하는 ‘건전한 시민’과 ‘폭력시위’를 일삼는 ‘불순한 시민’이라는 거짓 대립구도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박근혜 정부를 어떻게든 감싸 보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경향과 한겨레는 경찰의 과잉 진압을 부각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반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시민들의 ‘폭력’을 상세히 묘사하며 정부의 입장에 서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노력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지난 1년간 정부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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