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평역 먹자골목의 밤

(이 글은 일상탐사를 목표로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2014>에 있는 기사입니다.
인터넷 주소 http://www.2014haru.com 
글쓴이 최성욱 기자의 허락을 받고 옮겼습니다. - 편집자 주) 


화요일 새벽, 인천 부평역 먹자골목에서 목격한 일상다반사
24시간 커피숍 새벽 3시면 'CLOSED' … "아침까지 안해요?"
새벽 4시 택시승강장 북적 … 청춘들 숙박업소 찾아 '두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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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 인천 부평역 앞마당. 친구와 급히 잡은 약속이 틀어졌다. 어차피 버스도 끊겼겠다, 하릴없이 조금 걷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먹자골목에 들어섰다. 밤을 잊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뒤섞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회포를 풀고 있었다. 불콰하게 취한 한 청춘남녀는 편의점 앞에서 바투 앉아 알아듣지 못할 얘기를 뱅뱅 돌리더니 이내 숙박업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반 식당아주머니들은 늦은 저녁 겸 이른 아침을 챙겨 먹었고, 나는 그 옆에서 나주곰탕 한 그릇을 시켰다. 맑은 국물이 맛있어 보이긴 했지만 몇 술 뜨니 느끼해서 다 먹진 못하겠다. 뽀얀 국물을 좋아하지만 확실히 맛있게 먹을 음식은 아니다. 고기국물에서 살짝 짠맛이 돌았는데 역시 ‘맛있는 맛’은 아니다.

평소 나주곰탕이 궁금했던 터라 호기심을 해소한 것에 8000원을 치르기로 했다. '이런 맛이구나'에 8000원이면 그리 비싼 건 아니다. 어찌됐건 허기도 채웠으니까.

새벽 3시 13분. 식당을 빠져나왔다. 배도 채웠겠다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탈까하다가 멈칫, 더 걷자는 생각이 스쳤다. 어찌됐건 이 시간까지 버틴 게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40~50분만 더 버티면 택시 심야할증요금에서 자유로워지고 1시간을 더 버티면 지하철 첫차도 탈 수 있다. 눈과 귀를 밤을 잊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열어보기로 했다.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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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배터리가 말썽이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취재(?)라 배터리를 챙겨둘 여력이 없었다. 24시간 커피숍에서 전원을 끌어다 쓰기로 했다.

새벽 3시 20분.

‘CLOSED’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봐뒀던 커피숍이 문을 닫았다. 왁자지껄 떠들던 손님들도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다. 먹자골목을 크게 한바퀴 휘이 돌았다. 고급 스피커를 쓰는지 음악소리가 짱짱한 크림맥주집의 전원을 끌어다 쓰기로 했다.

이 집이 특이한 건 감자튀김 대신 추러스(churros)를 주종목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에서 유래한 추러스는 숙취해소에 좋다는 다소 억지스런 설명까지 덧붙여 놓았다. 그런데 꽤 맛있다. 저녁시간엔 손님이 바글바글할 것 같다.

추러스가 ‘추러스인지 츄러스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추로스’가 맞다. 이런 정보는 잘 기억해두면 어디가서 잘난 척 할 수 있으니 메모해 두시라.

새벽 4시를 향해 달리는 이 시각. 먹자골목을 찾은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다들 먹을만큼, 마실만큼 마셨다는 표정이다. 확실히 20대 초중반이 많다. 아니, 가게운영진만 빼면 거의 전부인 것 같다. 하긴 오늘이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니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출근’이 그리 두렵지 않은 20대들!

집으로 향하던 세 사내들의 눈에 기왓장 격파 인형뽑기 게임이 들어왔다. 몸집이 가장 큰 사내가 떼를 쓴다.

"저 이거 하고 싶어요. 형!"

왜소한 체형의 형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단박에 거절하면서 덩치 큰 사내를 조용히 택시에 태웠다.

“야, 여자 없으니까 그냥 가자.”

역시 사내들 심리는 거의 비슷하다. 자기들끼리 힘들여 기왓장을 격파해 본들 무슨 큰 재미가 있을까. 이런 걸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한다. 딱 이런 상황이다. 더구나 상품으로 받은 인형은 대체 누가 가져갈 것인가 말이다.

세 사내가 젖먹던 힘을 다해 기왓장을 내리치는 순간, 뭔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을 테다. ‘남자 둘, 여자 둘’ 짝을 지어 와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돌아갔던 먼저 번 조에 비하면 확실히 칙칙한 건 맞다.

새벽 3시 59분. 이 시간에 먹자골목으로 들어가는 커플은 짐작이 대체로 맞을 듯하다. 부평역 먹자골목 일대는 ‘술집 반, 모텔 반’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숙박시설이 완벽(?)하다. 대로변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어디로 가든 숙박업소가 나온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하면 ‘기승전텔’(어디로 가든 마지막엔 모텔이 나온다는 뜻)이다.

이 일대 모텔 이용료는 숙박/평일 기준으로 3만~3만5천원에 형성되어 있다. 5천원 차이인데 시설이 많이 다를 수 있으니 기억해두면 용이하다.

취했지만 어딘지 경쾌한 발걸음, 여유있는 걸음걸이. 기대감 가득, 야릇한 사내의 눈빛까지. 월요일 밤부터 참 젊다!

그러고보니 먹자골목에 바이킹이랑 디스코팡팡이 안 보인다. 없어진 건가, 밤이라 문을 닫은 건가, 이쪽이 아닌가. 한때 부평역 일대를 풍미 했었는데, 못보고 가니 아쉽다.

대신 더 재미난 볼거리가 저기 있다. 연신 ‘쿵쿵’ 소리가 나는 곳. 실내 야구•사격장 앞에 한판 싸움은 아니고 펀치기계에 청년들이 오골오골 모여 있다. 술을 그렇게 먹고도 넘치는 기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청춘들이다.

쿵!
팍!

여기도 사내 넷이다. 지나가던 여성 관객이 보랍시고 주먹을 날린다. 사내들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일행이 아닌 여성 관객들은 등을 돌린채 인형뽑기에 열중하고 있다.

띠띠띠리리리리~
띠띠띠리리리리~
빠바방~

역시 남자 관객은 없다. 저들이 같이 어울려서 놀면 재밌을 텐데, 이들 두 팀의 청춘남녀는 헛힘(?)만 빼고는 터벅터벅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가을이라 그런지 젊은 여인들의 머리엔 알록달록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긴 생머리에 알록달록한 염색이 유행인가보다. 둘셋 중 하나는 짙거나 밝은 톤의 염색머리다.

5시 동트기 30분 전. 띠욕띠욕~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닳았다. 재충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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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44분. 이 시간에 남자 둘, 여자 둘이 먹자골목에 들어서다니! 일행들은 모두 얼굴이 울긋불긋하다. 취했는데 술을 더 마시러 가는 눈치다. 얼굴에 홍조 띤 한 사내가 영업사원처럼 만면에 웃음을 띠고 조심조심 말을 건네는 걸 보니 쌍쌍이 커플은 아니다.

그렇다. 먹자골목의 '밤잊사'(밤을 잊은 사람들) 막바지 헌팅에 성공한 모양이다. 내가 있는 추러스집만해도 곧 문을 닫는다고 하니, 저들은 적어도 아침 7시까지는 문을 닫지 않는 전집이나 포장마차형 술집을 찾아갈 게 분명하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 두 커플..은 아니고 '썸플'(썸남썸녀 커플) 두 팀이 시야에 잡혔다. 이들은 일행이었는데 곧 남녀 쌍쌍이 찢어졌다. 사내들은 모두 멀쩡한 반면 여자들은 거나하게 취했다. 한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진득한 눈빛을 보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또다른 여자는 한 외국인 행인에게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왜 집에 안 가냐"고 시비 아닌 시비를 건다. 그러더니 대로변으로 사라졌다. 택시를 타러가나보다.

새벽 4시 55분. 추러스집엔 나 혼자 남았고 종업원이 걸레질을 하고 있다. 매장엔 바이브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 울려퍼진다. 매장이 문을 닫을 시간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 더 방문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읽었다. 술집 폐점곡치곤 센스깨나 있어 보인다.

I need you baby, Bye~ Bye~Bye~♪
♬가야만 하니 Why~ Why~ Why~

첫차까지 45분여 남았다. 이제 부평역에 가면 첫차를 기다리는 취객들 틈에서 ‘밤을 잊은 부평역’ 마지막 취재를 조용히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왜 부평역의 밤거리를 있는 그대로 묘사했는지, 그저 본대로, 느낀대로, 들은만큼 실시간 글쓰기를 시도했는지 따위를 쓰려고 한다.

부평역 앞 삼거리. 4차선 도로 양쪽으로 택시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택시를 지나치니 인적도 드물고 조금 깜깜하다. 그 길목에서 한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방금 전 외국인에게 시비를 붙이던 아가씨였다. 일행은 어디 갔는지 혼자 서 있다.

비틀비틀, 휘청휘청. 찜찜한 느낌이 스쳤다. 돌아보지 말자, 그냥 가자, 괜히 긁어부스럼 만들지 말자, 근처에 일행이 있겠지. 그러면서도 고개는 이미 돌아가 있었다. ‘일행이 없으면?’이라는 생각이 스친 탓이다. 아가씨 주변엔 노숙인과 술 취한 사내들이 하이에나처럼 그 아가씨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기에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10여분이 흘러도 아무도 없었다. 일행은 없고 아가씨는 병든 톰슨가젤마냥 한 걸음 걷고 쓰러지고 한 걸음 걷고 주저앉았다.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일단 벤치에 좀 앉읍시다."

일행도 없었지만 가방도 없었다. 물론 정신도 없었다. 주변을 뒤졌다. 가방을 찾았다. 꾸벅꾸벅 졸기에 벤치에 눕혔다. 셔츠를 벗어다가 덮어줬다. 가을바람도 차고 훤히 드러나 있는 다리도 다소 민망했다. 띄엄띄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불편했다.

열차시간이 남았으니 옆벤치에 자리를 차고 누웠다. 대로변이지만 혼자 누워있지 않아 그런지 어색함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분 잠이 들었나보다. 옷까지 벗어준 터라 추웠다. 아가씨도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이 동네엔 24시간 커피숍이 없다. 대로변에 가면 뭐라도 있지 않을까. 아가씨를 깨워서 들춰업었다.

그렇게 낑낑거리며 몇걸음 가다가 버스 승강장 앞에 쉬어가기로 했다. 내 눈 앞에 롯데리아가 보였지만 아가씨는 더 전진할 수 없었다. 들춰업는 순간, 어깨를 타고 뜨거운 게 흘러내렸다. 그는 자신이 먹은 것들을 굳이 내게 확인시켜줬다. 몇 차례 등을 두들겨 주고 건너편 편의점에서 생수와 물티슈를 사왔다. 토사물이 머리에 묻으니 물티슈 갖곤 어림도 없었다. 생수 한 통을 들이부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곤히 잠들었다. 옆에서 나도 얼마나 엎드려 잤을까. 날은 이미 밝았고 ‘밤길의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출근길의 사람들’이 채웠다. 이내 은행문이 열렸고 더 있다간 쫓겨날 판이다. 이젠 정말 가야한다. 롯데리아! 그는 두세 시간만에 처음으로 걸음마를 뗐다.

따뜻한 코코아 한 모금에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나보다. 긴 생머리카락으로 발을 치곤 연신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한다. 가방을 꺼내어 소지품을 확인하고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 이제 각자의 길을 가는 거다.

핸드폰 말곤 잃어버린 게 없는 것 같다. 매장을 나오려는데 이 아가씨가 대뜸 집에 가는 택시비를 빌려달란다. 5분 전, 소지품을 확인할 때 현금이 나보다 훨씬 많았던 그다.

"아가씨, 안 되겠네요.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택시 같이 탑시다."

그는 택시 타고 가는 내내 고맙다고 했다. 사례를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더니...

우르르 쾅쾅!

그렇다. 화산이 폭발했다. 다행히 기사님은 알아채지 못했고 뒷처리만 깔끔하게 하면 아무 문제 없었다. 또다시 내 티셔츠와 물티슈가 긴급히 투입됐다.

집으로 가는 전철을 잡아타니 아침 9시 20분. 장장 4시간에 걸친 사투였다. 그래도 무사히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돌아서니 마음은 꽤나 경쾌했다.

부평역 먹자골목의 밤은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고, 곧장 오후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곳엔 다시 밤이 찾아올 것이고, 청춘들의 발걸음은 어제보다 더 빨라질 것이다. 욕망과 유혹이 넘실대는 청춘의 거리, 부평역 먹자골목이다.

-취재가 끝나고-

2014년의 20대는 1986년생부터 1995년생이다. 빠른 1987년생이나 만으로 따지면 1984년생까지도 포함된다.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이들은 10대에 갖은 고초를 겪은 세대다. 1997년 ‘IMF(외환위기)’로 가정경제가 급격히 기울었고,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땐 ‘세계경제공황’이 시작됐다. 그 파도는 밀려밀려 취업을 앞둔 지금까지 밀려들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밤이 특별히 더 어둡다고 본다면 비약이지 싶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즐거운 건 즐거운 거다. 그 고통과 흥의 조화를 어떻게 엮어갈 것인가는 개개인의 몫이다. 대신 이런 청춘들이 일상의 회포를 풀고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은 더 넓고 다양한 모습으로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공교로운 상황이 만든, 어찌보면 지극히 즉흥적인 취재였지만 나름의 원칙은 있었다. 본대로·들은대로·느낀대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자는 거다. 일종의 '로드무비(road movie)식 기사'다. 로드무비가 카메라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듯, 기자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했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작업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개인적인 저널리즘 세계에선 제쳐둘 수 없이 소중한 작업이다.

기름기를 빼려고 했다. 다만 사견은 조미료 같은 것이라서 딱딱하고 엄격하게 쓰지는 않으려고 했다. 취재기자 역시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앞으론 자료도 조사하고 짧막하게나마 현장에서 즉석인터뷰도 시도할 것이다.

'부평역 먹자골목의 밤거리'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 어디 첫술에 배 부르랴. 시작이 반이지.

하룻밤 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오히려 이런 거다. 흥겨운 여운을 안고 집으로 가는 청춘들은 괜찮았지만, 새벽 3~4시에 홀로 집으로 향하는 여인들은 어딘지 쓸쓸해 보이고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이 시각, 홀로 걸음을 재촉하던 한 여인이 종잇조각 하나를 떨구었다. 가서 보니 담배커버였다. 새 담배를 뜯은 거다. 버려진 새 담배커버 같은 느낌.

 

세 꼭지의 단편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저마다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특히 본의 아니게 기사에 등장하게 된 주인공들이 이 기사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아차렸을 때,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할 수 있다면 다음 기사는 한층 더 견고하고 묵직하며 빠르고 깊이있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ongugi@hanmail.net

2014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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