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변하지 않는데, 어떻게 맛이 변해”

 
미세먼지와 황사소식으로 ‘봄이구나!’ 한다. 도시의 일상에서는 봄이 왔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몸에 와 닿지 않는다. 환경의 변화에 점점 둔감해지는 몸도 변함없는 맛으로는 깨어나기 마련. 아이들이 들이닥칠 하교시간을 피해 모교인 부천남초등학교 근처 ‘현호 분식’을 찾았다.

‘현호분식’의 떡볶이는 국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1000원 짬뽕을 시키면 흥건한 떡볶이 국물에 쫄깃한 떡, 바삭한 군만두, 푹 삶아진 달걀이 담겨 나온다. 아껴먹었던 예전 기억을 되살려 마지막으로 달걀을 으깨 먹으니, 달달한 국물에 풍미가 더해진다. 정말 맛이 그대로이다.

맛이 변하지 않았다는 감탄에 주인아저씨는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말씀하신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데, 어떻게 맛이 변해? 사람이 그대로 사니까 안변하지. 껄껄껄~”

변하지 않은 것은 맛뿐이 아니었다. 질박한 분식집 외관부터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는 탁자와 의자, 가격도 그대로인 메뉴판, 작은 텔레비전, 마당으로 나가는 파란 문, 스텐리스 쟁반, 물통 등의 세간들도 예전 그대로이다. 주인아저씨의 손길이 더해져서 가꾸어진 세간들은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 서로 모여 있는 우주 공간’이라는 단어의 본 뜻을 품어내고, 주인 부부의 소박하고 정갈한 성품을 뿜어내고 있다.

  어린 참새들의 방앗간이자, 다 크고 돌아오는 철새들의 안식처

 
“분식점을 어떻게 시작하셨냐?”는 뻔한 질문에 아주머니는 수줍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현호는 아들 이름인데, 이거 하기 전에는 부천 근교에서 현호 백숙 집을 했었지. 3-4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닭백숙이 6000원이었고, 도토리묵은 2000원에 한 접시 무쳐 팔았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을 임대해서 우리 바깥양반이 매일매일 삽으로 땅 파고, 흙 디디고 기반을 잡았어. 거리나가 손님 끌어오고, 몇 년 고생해서 장사 잘되니까 주인이 나가라 하더라고. 너무 허무하고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때 빚 얻어서 산 집이야. 이 장사 한지 적당히 30년 정도 되었지.”

아주머니는 분식점을 열기 전에는 한 번도 떡볶이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갖은 실험을 하며 찾아낸 맛으로 30년간 해온 떡볶이 장사는 학교급식 이후로 예전만 못하다고 하신다. 그래도 재미있는 일은 어릴 적 꼬마 손님들이 성장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라고.

“화성에서도 오고, 대전에서도 오고 옛날에 왔던 사람들이 많이 와. 꼬마였던 애들이 임신하거나, 유학 갔다가 돌아오면 많이들 오더라고. 이 근처에 해외출장을 자주 가는 사람이 있어. 어릴 적부터 우리 집 다닌 사람인데, 공항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떡볶이 사가. 한 군데서 한 장사를 오래하니 인연들이 늘어나는 재미가 있지. 우리집 기억해주니 고맙지.”

 보이는 것과 안에 품은 이야기가 같은 음식이 ‘좋은 음식’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도시 생활을 하고 있고, 어릴 적엔 ‘불량식품’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분식집을 몰래 다녔던 나는 마트에 가면 ‘좋은 음식’으로 포장된 식품들을 만난다. 건강, 웰빙 열풍이 불고 나서부턴 ‘순수’ ‘천연’ ‘자연식품’ 등등 좋은 말들이 더 보태진 식품들이 즐비하다. 보이는 것과 안에 품은 이야기가 완벽히 다른 것들을 먹고 사는 셈이다.

맛 집을 가면 누구나 묻듯, 떡볶이의 비법을 물었다.

“주방에 화학조미료 안두고, 국산 고춧가루만 써. 다른 좋은 거는 더 못 넣어도 그것만은 꼭 지키지.”

30년간 같은 식재료를 유지하며, 보이는 것과 안에 품은 이야기가 같은 음식을 만드는 솔직한 손이 변함없는 맛, 기억하게 하는 맛의 비법이리라.

현호분식의 쫄깃한 밀가루 떡볶이와 짭조름한 오뎅 국물로 이제야 봄이 오는 소리가 쫄깃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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