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터는 있을까? 있다.
덕을 쌓으면 복이 돌아올까? 온다.

1980년대를 경기도 양평에서 살았다.
그 시골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돈이 없어 집을 자주 옮기니까
어느날 아버지가 오셔서 500만원을 주셨다.
제대로된 전세방이라도 얻어서 살라고 하였다.

아내는 공돈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나는 부동산 사무실(그때는 복덕방)에 가서 500만원짜리 집을 사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시골이지만 그런 집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허름한 집이 눈에 띄었는데
대지가 200평이 넘고 집은 세 채가 들어서 있었다.

그래서 그 중 한 채를 잘라서 내게 팔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집주인도 돈이 급해 내놓았지만
그리 많은 돈이 급했던 것은 아니고 어차피 나머지 두 채는 안쓰는 집이라서 그럴 수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땅을 어떻게 자를지를 두고
중개인, 나, 땅주인이 몇 시간 동안 도면을 놓고 협상을 벌였다.
땅주인은 절반쯤 잘라서 팔았으면 했고, 나는 돈만큼만 땅을 사고 싶었다.

아내는 부동산 사무실에 따라왔다가 신경질을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좀더 넓직하고 깨끗한 전세방을 얻는 것이 아니라, 거지 같은 집과 땅을 사고팔겠다고
우리가 이리저리 도면에 선을 긋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

그래서 협상 끝에 얻어낸 것이 집 한채가 들어서 있는 55평쯤..
그러나 돈이 모자라도 많이 모자랐다.
공무원 신용대출로 몇 백만원을 빌려도 모자랐다.
근데 귀인을 만났다. 복덕방 중개인이 자기가 나머지 돈을 빌려주겠단다.
매매가 끝나고 등기가 나서 내게 소유권이 완전히 넘어간 뒤에
그집과 땅을 은행에 담보로 잡혀 갚으란다. 나를 언제 봤다고..
그런데 정말 그렇게 진행되었다.

그 집이 처음으로 내 이름과 아내 이름으로 문패를 단 집이었다.
거지 같은 집..
아내는 "전설의 고향" 세트장이라고 했다.
도배를 한다고 벽지를 뜯어내니 10겹은 되는 것 같았다.
한 겹에 3년만 처도 30년된 집이다. 알고보니 625전쟁이 끝난 뒤쯤에 지은 집이란다.
나와 나이가 같았다.

우리집은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집 대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집이었다.
담은 조립식 담이었다.
한 2미터 간격으로 시멘트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과 기둥사이에 넙적한 시멘트판을 끼워넣은 담이었다.
그 담이 깨지고 기둥이 기울어서 위험했다.
헐고 새로 담을 쌓아야 했다.

유영식 선생님이 지금도 대장동 마을에 있는 조립식 담을 찍어 페북에 올려놓았다. 

골목에 들어서기 전에 빈터가 있는데
우리집 뒤쪽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우리 골목으로 들어와 자기집으로 걸어갔다.
차로 들어가려면 우리집 대문 앞에서 바로 우회전하고 바로 좌회전해서 들어가든지,
우리집 대문 앞에서 바로 좌회전하고 바로 우회전해서 들어가야 한다.

말하자면 승용차가 들어갈 수 없고
농사짓는 집에서 경운기를 몰고 들어와서 이리저리 비틀어 겨우 들어가는 바람에
우리집 담에 부딪쳐 깨지고 시멘트 기둥이 기운 것이다.

그 담을 다 헐고 새 담을 만들면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우리 대문이 있는 앞쪽 담, 오른쪽 담, 왼쪽 담을 모두 1미터쯤 들여서 블럭을 쌓았다.
그리고 경운기가 커브를 틀 때 부딪치지 않도록 담 양쪽 모서리는 각을 죽여 블럭을 쌓았다.
 

내가 고치기전 양평집 상황을 보는 것 같다.

아내가 왜 그런짓을 하느냐고 물었다.
우리 담때문에 골목 뒷집 사람들이 불편하다.
우리가 하루종일 담 자락에 붙어있는 땅을 밟을 일도 없다.
이렇게 들여 쌓으면 우리 담에 차가 부딪치지 않는다.
어차피 땅은 등기 평수로 팔아먹지, 실측으로 파는게 아니라고 하였다.

새 담을 쌓은 뒤
우리집 그 골목으로 승용차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뒷집, 그 뒷집에서 대문을 넓히고 자가용 승용차를 자기네 마당에 세워놓았다.

우리집 담이 창문 밑으로 바짝 붙는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들 말소리가 안방에서도 들렸다.

"이 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 왔는데
골목 길을 이렇게 넓혀주는 바람에
우리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지난번 땅 주인하고는 담때문에 많이 싸웠거든.
참 좋은 사람들이 이사 왔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우리 부부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던 어느 날이었다.
(지금부터는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중년 여성이 대문으로 썩 들어서며 물 한 잔을 달라더란다.
지금 같으면 종교를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물을 시원하게 마시더니 "집터가 명당"이라고 하였단다.
아내가 천주교 신자로 성당을 다니던 때라,
속으로 "전설의 고향 세트장을 놓고, 어디서 개수작"하며 들었단다.

더구나 새 담을 보니
이 집주인이 길을 내놓아 남들에게 공덕을 쌓고 있어 앞으로 잘 풀릴 것이라고 하였단다.
내년에 직장을 옮길 것이고, 거기에 가면 큰 돈을 벌 것이라고 하였단다.

아내는 친정이 인천이라서 내년에 부천으로 갔으면 소원했으니, 그건 갈 수 있다 치고..
"공무원이 뭔 수로 큰 돈을 벌까?" 하며 믿지도 않았단다.

그밖에 올 가을 남편이 상갓집에 갔다가 크게 한 번 아플 것이니, 예방을 하려면 양말짝에 3만원을 넣어 뭐 어떻게 하라고 하더란다. 그게 귀찮으면 자기에게 주면 대신 해주겠다고 하더란다.. 그럼 그렇지. 이제 본색이 드러났군.

아이들은 잘 자라고 부모에게 효도할 것이고
특히 작은 아이는 크게 될 것이라고도 하였단다.

그렇게 끝났단다.
3만원을 주지도 않았고, 양말짝에 3만원을 넣어 액운을 예방하지도 않았다.
그해 가을 상갓집에 갔다가 돌아와서 며칠 뒤 시냇가에 놀러갔다가 나는 허리를 삐끗하여 몇 달을 고생하였다. 부천에 온 다음다음해 내가 쓴 책 "이렇게 해야 바로 쓴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생각지 않게 큰 돈을 벌었다. 

아이들은 잘 컸고 부모에게 효도한다.
크게 될 거라는 작은 애는 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돌아왔는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지금 백수 상태이다.
어떻게 크게 될지 지켜보고 있다.
최근 들어 몸집이 커지는 것 같기도 하다.

명당터는 있을까? 있다.
덕을 쌓으면 복이 돌아올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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