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담쟁이 문화원에서 한 글쓰기 수업에서

아침

노천사 

 거울을 보고 얼굴을 토닥이며 화장을 하고 더 예쁘게 꾸미려던 때가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주름입니다. 
 화장품을 바른다고 해서 펴질 주름이 아니라는 것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젊어서 화장 보다는 책을 더 가까이 하고 한 권의 시집을 더 샀을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푸르고 향기나는 내 인격의 모습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내 얼굴의 주름살을 보면서 흐르는 시간이 아쉬운 어느 아침입니다. 

 

 

 식물은 제 전부입니다 

 윤정희

 아침에 눈뜨면 항상 6시다. 
 먼저 생각나는 것이 앞뜰에 있는 식물들이다.
 얘네들을 보는 걸로 하루가 시작 된다.
 
 앞뜰에는 토마토, 고추, 호박, 오이, 옥수수, 초코 블루베리, 국화로 시작해서 각종 화초도 있어요.
 키우다 보면 정성이 있어야 하고, 사랑도 있어야 되겠더군요.
 아침 저녁으로 물을 충분히 주고 거름도 부족함 없이 주어야 되요.
 언젠가 아침에 나가보니 바람에 넘어져 흙이 패어 있어 깜짝 놀래 흙을 더해주고 토닥토닥 아파꾸나 하고 만저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녁에 집에 와보니 너무나 싱싱하게 서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식물들을 사랑합니다.
 
 언젠가 상추씨를 뿌려 사흘 안에 싹이 돋았는데 싹이 너무 여린 겁니다. 
 고운 체에 받쳐 흙을 고르고 새 싹이 다칠까봐 조심조심 곱게 심었어요.
 하나하나 고이고이 심었어요. 
 그런데 비가 내려서 팍삭 삭았어요.
 비닐로 비를 가려놓았어야 했는데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해 녹았어요.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저는요. 이번에 이사 기회가 있는데도 얘네들 식물 때문에 이사도 포기 했답니다.
 저는요. 애들로부터 받는 것이 있다면, 마음이 즐겁고 앞뜰에 사랑하는 애인인 것 같고 행복을 느낌니다.  저의 전부 입니다.

 

 공짜는 없다

 차영순

 나는 칠년 째 지금의 이 집에서 살면서 화분이지만 작은 농사를 짓고 있다.
 베란다에는 분꽃과 방울 토마토.
 계단 10칸에는 작두콩과 나팔꽃.
 계단 아래 마당에는 초코베리와 수세미넝쿨과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런데 이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물을 양동이에 들고 내려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래서 큰 통을 현관에 놓고 상추 씻은 물, 나물 씻은 물, 야채 삶은 물을 다 모아서 퍼다가 먹였다. 

 그런데 팔이 아파서 마당에다가 큰 아이스박스 한 개와 스티로폼 통 한 개를 놓고 빗물을 받으려고 하였다. 열시 오분 전 일기 예보를 듣고 비소식만 있으면 물통을 꺼내 놓기를 수십번, 자다가도 빗소리만 들리면 나가본다.
  비는 왔지만 통 속에 물은 10cm도 고이지 않는다. 물이 고이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공짜를 바라는 헛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마당 경사가 있는 웅덩이에 고인 물을 쓰레받기로 퍼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은 너무도 고마워서 마당에 고인 물을 퍼 담는데 우산을 쓰고도 바지, 속옷까지 다 젖도록 신나게 쓰레받기로 물을 긁었다. 

 시간도 밤 11시 전에만 하고 아침에도 7시 이후에만 했다. 왜냐하면 아랫층 식구들이 잠든 시간에는 소음으로 들릴까봐. 그 시간에도 고이는 물이 아깝지만 참았다.
 아직도 물통에 물이 80% 밖에 차지 않았는데 그래도 빗물 받은 것보다는 쓰레받기로 퍼 담은 물이 훨씬 많다. 역시 인생에 공짜는 없다. 

 

 

 세월 

 노천사 

 세월은 나에게 작은 발자욱 소리도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색도 없었고, 향기도 없었으며 
 한 번도 내 앞에 자랑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그가 쉼없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향하던 그는 보이지도 않고 잠시 머무는 기색도 없었으며, 
 말도 없이 조용히 세월은 그렇게 가고 있었습니다. 

 애타게 소리쳐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더군요...
 그 소리에 한번쯤 뒤돌아 볼만도 하건만 어찌 그리 냉정하던지요...
 두리번 거리며 세월이 갔을 길을 찾아봅니다. 

 어떤 날은 어린 시절 거닐었던 한적한 오솔길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정신없이 달리던 고속도로 같기도 하더군요. 
 기차를 처음 타고 수학여행 가던 길 같기도 하고, 
 말없이 노를 저어 강을 건네주던 주름진 늙은 사공의 뱃길 같기도 하더라구요. 

 내 삶의 끝자락 가고 있는 모습처럼, 
 나와 늘 함께 가고 있었지만, 세월은 나를 보지 않고, 나 역시 세월을 보지 않습니다. 
 남은 내 삶의 한 자락을 담보 삼아 
 가는 세월을 멈추게 할 작은 "빨간 신호등"을 세워 두고 
 잠시 멈추어 그와 함께 행복을 그리고 싶습니다 .

 그가 갑니다. 
 오늘도 뒤돌아보지 않고 세월은 쉬임없이 가고 있습니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