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 열전 6

 

추억을 생각하면 다들 앨범부터 뒤적인다.
나도 추억의 한 부분을 앨범에서 뒤적이긴 하지만 사진이 모든걸 말해주진 않더라..
그러나 나에겐 추억의 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는 보물상자가 있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것 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앨범과 견줄 수 없는 보물.
모든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자식'과 '부모'이다.
내겐 어느 것 하나 비교 할 수 없지만 그 두 가지가 같이 들어있는 보물상자가 있다.
이곳에 정작 내 것은 없지만 다 내 것인 것. 바로 나의 두 아이들과 시부모님의 마지막 유품이다.

 

이곳에서 시시콜콜 남편의 가정사를 밝히는 것이 잘 하는 일 같지는 않지만, 나의 시부모님께서는 두 분 다 대학까지 나온 마산에서 잘 나가던 부유한 집안의 엘리트들이셨다.
시아버님은 신문기자로 일하시며 술을 많이 드셔서, 남편이 어렸을 적에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한다. 그 후로 시어머님도 홀로 서울로 상경해 사업을 하시다 병을 얻고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다시 마산으로 내려오셨고, 당시 중학생이던 신랑은 작은 아버님 손에 맡겨지게 되었다 한다.
어머님은 그 후 홍익재활원이란 곳에서 내가 결혼 후 두 번 찾아 뵙고 생을 마감하셨다.
시어머니는 마산에 첫 번째로 만들어진 버스 회사 사장의 딸이었고, 시아버님의 집안이 황해도 쪽의 역장까지 지내신 분이라 하니 두 분 모두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젊은 시절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두 분 다 자식(내 남편)이 장성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지 못하셨다.

 

시어머님까지 돌아가시고 난 후 작은 아버님께 받은 사진 몇 장과 아버님이 쓰시던 책 세 권.
이 것이 아버님의 유일한 흔적이다.
오래된 책 냄새가 아버님의 체취 같아 다시 꺼내보아도 아련하게 가슴이 저려온다.
'그 어려운 시기에 신문기자로 활동하시며 무엇을 쓰고 무엇과 싸웠을까? 얼마나 술을 많이 드셨으면 이렇게 일찍 돌아가셨을까?'
그냥 내 머리 속에서 아버님의 일상을 그릴 수 밖에 없는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이렇게 얼마 안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유품 속에 그분들의 자식에 자식이 태어나며 탯줄부터 배냇저고리, 산모수첩, 영아수첩, 육아일기... 하나 둘 그 보물상자를 채워가고 있다.
소중한 자식의 커가는 모습을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하고 자료를 남기며 생각해본다. 먼 훗날 나의 자식이 커서 내가 이걸 물려주게 되었을 때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추억하고, 본인들의 어렸을 적의 흔적들을 반가워할까?
‘내 노력은 나를 위한 것이었나? 내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한 (자식이 기뻐할만한)일이었나?’
물론 부모가 그런걸 바라고 이런 건 아니다.

 

내가 육아일기를 채워가며, 어린이집에서 꼼지락꼼지락 만들어온 손 편지와 카네이션 등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며, 이 아이들이 커서 본인이 어렸을 적을 추억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릴 적에는 소중함을 모르고, 다 찢고 버리고(나도 철없을 적 초등학교 앨범을 낙서하고 찢어서 사라졌기에 지금 후회하고 있는데..)보관하는 방법을 모르기에 부모가 대신 하는 것이다.

커서(아마도 아이들이 결혼하게 되면 모든 것을 줄 예정이다)이걸 받으며 기뻐하든 시큰둥하든 그건 그 아이의 몫일 테다.
점점 커가면서 육아일기? 이젠 육아가 아니지만…
다시 한번 우리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본다.
나보다 훌쩍 커버린 고1, 고2의 내 자식들을 고등학교 졸업하는 날까지 대신 기록해주려 한다. 엄마의 입장에서 본 우리 아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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