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 열전 7

 어릴 적부터 나는 입던 옷, 쓰던 학용품과 장난감, 편지, 기념이 될 만한 티켓 등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를 못했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물활론적 사고(모든 물질이 생명, 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연관)에서 비롯된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이랄까?
그럼에도 망각이 내 기억과 추억을 걸러내는 것처럼 공간의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차마 버리고 비우지 못했던 것들을 꾸준히 걸러 오긴 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것들은 추억과 측은지심 이상의 또 다른 의미들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 중반을 넘어선 지금도 위와 같은 이유로 내가 쓰던 물건부터 남편과 아이들이 쓰던 물건까지 쉽게 버리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올해 4월 우리 막내가 태어나면서 공간을 만들어 낼 필요가 생겨 다시 한 번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잘 안 입는 옷가지들, 쓰지는 않지만 버리긴 아까웠던 생활용품 등을 남편과 의논하며 걸러내다 그동안의 추억이 될 만한 물건들을 한 곳에 담은 종이 상자 두 개가 눈에 띄었다. 내 삶의 조각들이 주저리주저리 담긴 일기장과 다이어리부터 바비인형, 각종 팬시 용품, 노트, 편지, 공연티켓 등 기억에서만 새록새록 하던 추억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설레고 생생했다.

짐들을 좀 줄여보려고 열어본 상자인데 결국 추억만 아로새기고 다시 뚜껑을 덮어버렸다.

 

▲ 1985년 초등학교 1학년 때 선물 받은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바비인형 미미: 반짇고리를 인형집으로 삼고 안 신는 양말을 자르고 꿰매어 옷을 만들곤 했다.

 

▲ 가장 좋아했던 팬시용품 수첩 : 초등학교 때 문구점에 신상 수첩이 들어오면 꼭 하나쯤은 구입했었다.

 

▲ 27년 동안 사용하고 있는 수저 :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88년 엄마께서 시장에서 사오셨다며 자랑하듯 보여주셨던 수저,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다. * 한 때 약대 주공아파트(현재 아이파크) 끝자락까지 좌판이 늘어선 있던 신흥시장에서 사오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장에 갈 때는 엄마 손잡고 가는 게 재밌어서 올 때는 손에 들려있던 검은 봉다리들이 뿌듯해서 시장가는 날을 기다렸었던 것 같다. 하나뿐인 도장 :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들었던 이 도장이 내가 만든 유일한 도장이다. 이 도장을 만들던 날 현재 약대 오거리에 위치한 기업은행(당시엔 중소기업은행)에서 통장을 만들어 천원을 저금했었다.

 

▲ 중학교 때 쓰던 일기장과 대학 다닐 때 쓰던 다이어리 :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림일기로부터 시작된 일기쓰기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이어지다가 고3 무렵 다이어리로 갈아탔던 것 같다. 기록에 대한 집착이 심해 참 열심히 적고 또 적었다.

 

▲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와 수학의 정석: 저 문학교과서를 읽을 때 참 행복했었던 것 같다. 수학을 그토록 싫어했건만 정석은 왜 아직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ㅎㅎ.

 

▲ 우지원 선수 사진을 붙인 연습장 표지: 2013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나정이가 이상민 선수의 열성팬이었다면,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4년의 나는 우지원 선수의 열렬한 팬이었다. 지금도 우지원선수의 생년월일을 휴대전화번호 뒷자리로 사용할 만큼. 그땐 농구선수들이 현재 아이돌만큼 인기 있던 시절이었는데,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면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감독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tv를 켜고 경기를 보곤 했었다. 물론 응원하던 팀이 골을 넣으면 무음으로 환호하는 센스를 발휘하면서.

 

▲ 연애기간 동안 주고 받은 편지, 공연티켓, 기차표, 스티커 사진을 넣은 배지, 편지

 

▲ 연애기간 동안 주고 받은 편지, 공연티켓, 기차표, 스티커 사진을 넣은 배지, 편지 : 연애기간이 8년 이었던 만큼 편지와 티켓들이 얼핏 수백 장은 되어보였는데 그 중 눈에 띄는 몇 개만 골라봤다. 같은 과 선후배 사이었던 우린 하루 종일 붙어있던 것도 모자라 굳이 아침까지 같이 먹겠다며 7시에 학교에서 만나 하루를 같이 시작했던 나름 소문난 커플이었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