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입던 옷, 쓰던 학용품과 장난감, 편지, 기념이 될 만한 티켓 등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를 못했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물활론적 사고(모든 물질이 생명, 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연관)에서 비롯된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이랄까? 그럼에도 망각이 내 기억과 추억을 걸러내는 것처럼 공간의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차마 버리고 비우지 못했던 것들을 꾸준히 걸러 오긴 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것들은 추억과 측은지심 이상의 또 다른 의미들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 중반을 넘어선 지금도 위와 같은 이유로 내가 쓰던 물건부터 남편과 아이들이 쓰던 물건까지 쉽게 버리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올해 4월 우리 막내가 태어나면서 공간을 만들어 낼 필요가 생겨 다시 한 번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잘 안 입는 옷가지들, 쓰지는 않지만 버리긴 아까웠던 생활용품 등을 남편과 의논하며 걸러내다 그동안의 추억이 될 만한 물건들을 한 곳에 담은 종이 상자 두 개가 눈에 띄었다. 내 삶의 조각들이 주저리주저리 담긴 일기장과 다이어리부터 바비인형, 각종 팬시 용품, 노트, 편지, 공연티켓 등 기억에서만 새록새록 하던 추억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설레고 생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