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 열전 8

 

우리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개성에서 남하한 분이다. 금방 귀향할 거라고 예상하고 입은 옷 그대로 남하해서 영영 고향에 못 간 채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송고직물’ 이라는 직조공장에 다니셨다고 했다. 그래서 남에서도 ‘송고라사’ 라는 양복지 도매상을 내셨다. 당시에는 경남모직이니 제일모직이니 하는 회사에서 만든 양복지와 양장지를 양복지 도매상에서 양복점과 양장점에 판매했다.
남성들은 양복점에 가서 각자 맞춤 양복을 만들고 여성들은 ‘ 양장점’ 에 가서 옷을 맞춰 입었다. 그러면 양복점과 양장점에서는 옷감을 끊어다 주문자의 취향에 맞는 옷을 제작해서 납품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버지는 50 여년 전에 ‘송고라사’ 를 시작하여 장사를 하시면서 저 주판을 쓰셨다. 아버지가 저 둔탁한 주판알을 튕기면서 계산하던 광경이 어젠 듯 떠오른다. 아버지는 ‘에스에스패션‘같은 기성복이 80 년대에 마구 공급되면서 결국 장사를 접으셨다. 일명 부도!

어쨌든 2000 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저 주판을 쓰셨다. 저 주판으로 덧셈과 뺄셈, 승산과 제산을 하면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셨다. 모갯돈은 안 쓰고 외상 거래를 당연시 하는 장사꾼 특유의 성격을 갖고 계셨는데 이 주판은 다시 사용하진 않겠지만 아버지를 기억하는 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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