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천 이야기 ⑫

▲ 여월정수장이 가동되던 시기의 안골과 오른쪽의 아미산(부천시제공)

 부천에 아미산(蛾眉山)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부천군 하오정면 여월리 아미산(蛾眉山)으로 못 박고 있다. 아미산은 성곡 뒷산에서 시작해서 여월초등학교 서쪽에 위치한 새경골, 도당동 백만송이장미원을 포함하고, 개롱지를 거쳐 안골 동북쪽에 걸쳐 있다.
그런데 부천 사람들은 아미산을 전혀 모른다. 지도에도 표시가 되어 있지도 않다. 성곡, 점말, 은데미 등지에서 살았던 토박이 분들만 안다. 아미산을 어렸을 때 자주 불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때던 시절에는 아미산에 올라 나무도 해오고 버섯도 따고 말벌집을 따오기도 했다. 이렇게 부천토박이 분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고, 부천에 엄연하게 아미산이 우뚝 솟아있다. 하지만 현재 이름 없는 매봉재 한 봉우리로 취급되고 있다. 철저하게 잊혀진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아미산을 부활시켜 줘!
여월농업공원이 있는 안골에서 부천향토역사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기점으로 해서 동쪽을 아미산, 서쪽을 매봉재로 부른다. 우산방죽골에서 시작해서 매봉재 아래를 가로지르고 백만송이장미원 위쪽으로 연결된 둘레길이 있다. 이 둘레길 서쪽은 도당동에 속하고 매봉재 안골, 아미산은 여월동에 속한다. 아미산의 절반 정도를 사이좋게 갈라 도당동, 여월동이 나눠가진 셈이다.

▲ 도당동, 여월동으로 나뉜 아미산(네이버 지도 캡쳐)

아미산의 어원

경복궁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쪽에 조그마한 언덕이 있다. 그 언덕에는 돌 장식물도 있고, 육각기둥의 명품 굴뚝이 세워져 있으며 봄이면 화사하게 꽃피는 영산홍 등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이 작은 정원 이름이 아미산(蛾眉山)이다. 아미(蛾眉)는 ‘누에나방의 눈썹처럼 가늘고 길게 굽어진 아름다운 미인의 눈썹’을 가리킨다고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쓰촨성에 있는 아미산이 신선이 노니는 곳으로 중국 도교와 불교의 명승지라는 것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미산의 의미를 한자 그대로 해석한 명백한 오류이다.
전국에 아미산이 참 많다. 그 중에서 충청남도 당진군에 아미산이 있는데, 아미산(娥嵋山), 아미산(蛾眉山) 등으로 한자 명칭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미(眉)’ 자가 ‘산이름 미(嵋), 눈썹 미(眉)’로 쓰고 있다. 경상북도 군위군에도 아미산(蛾眉山)이 있다. 부산 서구 아미동에선 현재 아미산(峨嵋山)로 쓰고 있는 산이 있다. 예전에는 ‘아미산(峨媚山). 아미산(峨眉山), 아미산(娥媚山), 아미산(蛾眉山)’ 등으로 혼란스럽게 써 왔다. 이렇게 ‘높을 아(峨), 예쁠 아(娥), 아첨할 미(媚), 눈썹 미(眉)’ 같은 한자를 새롭게 각색해서 쓴 것이다.
이렇게 아미산에 대해 여러 한자를 혼란스럽게 쓴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아미산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다.
아미산에서 ‘아’는 ‘작다’는 뜻의 ‘앗’이 그 어원이다. ‘앗’은 작음, 버금, 새로 등의 뜻으로 쓰인다. 그 중에서 땅이름으로 쓸 때는 작음으로 많이 쓴다. 부천의 아미산도 이 ‘작다’는 의미가 쓰여졌다. 전국의 산이나 하천 중에서 아차산(峨嵯山), 아현(阿峴), 아기산(鵝岐山), 아무산(阿武山), 아천(兒川) 등은 ‘작다’는 의미로 쓰였다.
아미산에서 ‘미’는 산이라는 뜻이다. 부천의 대부분의 산이 이 ‘미’를 쓰고 있다. 멀미, 할미, 소개미, 살미, 상살미, 시르미, 간데미, 은데미, 능미 등이다. 그러니까 아미산을 ‘아미’라고 해도 무방한데, 뒤에 산을 덧붙인 것이다. 언덕은 주로 ‘마루’를 붙여 멧마루, 조마루, 대추마루, 붕어마루, 오정마루 등으로 쓰였다. 뒤에 붙은 산은 사족(蛇足)이다.
이제부터는 아미산을 ‘아미’로 부르고 ‘작은 산’이라는 설명이 붙었으면 한다. 실제로 아주 작은 산이다. 어쩌면 산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산이다.

▲ 도당동에서 바라본 아미산이 왼쪽에 위치해 있음( 부천시제공)

여월농업공원이 있는 안골

안골은 아미산 동남쪽, 매봉재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구렁목고개에서 길게 뻗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 안골에서 백만송이장미원으로 넘어가는 고개길

 구렁먹고개는 안골의 초입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 고갯길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구룡항현(九龍項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홉 마리 용의 모가지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긴 고개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고개의 실제는 구불구불 얽혀있는 고개가 아니다. 예전에는 빽빽한 숲을 헤쳐가는 소로길이었다가 일제강점기 때 신작로가 뚫려 현재의 원미로하고 똑같다. 일제강점기 때 부천역에서 구렁목고개를 거쳐 멧마루로 향하는 자동차 길이 뚫린 뒤로 이 빽빽한 숲이 사라졌다. 이 도로를 내면서 숲을 사정없이 베어냈기 때문이다. 조금 굽어져 있지 아홉 마리 용의 모가지처럼 그렇게 구불구불하지는 않았다. 이게 구렁목고개에서 변형된 땅이름이다.
지금은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멧마루로 향하는 소사로가 큼지막하게 뚫려 있지만 예전에 이 길은 없었다. ‘구렁’은 ‘구렁텅이’에서 온 말로 구렁목고개는 ‘수렁처럼 나무숲이 빽빽하게 차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이 안골이 점말로 이어지고 베르내로 연결되어 넓은 평원을 만들었다. 오래도록 성곡, 점말, 양지말 사람들의 생활터전이기도 했다. 넓은 평원을 개간해서 밭으로 논으로 활용했다. 워낙 숲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개간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그 뒤 부천시가 안골 아래쪽은 여월정수장으로 사용했다. 여월정수장은 한강물을 끌어다가 정수를 해 부천 시민의 식수를 공급하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한강에서 인천으로 상수도물을 끓어다 쓴 것을 중간에서 송수관을 연결해 부천시에 급수를 이루어졌다. 이때가 1967년도였다. 그러다가 1981년도에 부천시 자체적으로 여월정수장을 만들어 하루 1일 5만 톤급의 정수장시설을 갖추었다.

 

▲ 안골, 여월농업공원으로 변신한 여월정수장 시설

그 뒤 까치울정수장이 완공되어 이를 폐쇄한 후 한동안 부천지하철 자재창고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시민들에게 텃밭으로 개방하고, 야간에는 텐트를 칠 수 있도록 시설을 만들어놓은 여월농업공원으로 변모를 했다. 여월정수장 시설을 활용해서 야외수영장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수장 시설은 모두 흙으로 메워버린 상태이다.
안골 입구에는 소규모 공장들이 난립해 있다. 원미로 281번길을 타고 오르면 서쪽에는 전주이씨 사직공파 묘역이 있다. 이곳에 화유옹주, 황인점묘도 특별하게 조성되어 있다. 매봉재가 전주이씨 사직공파의 선산인 셈이다. 조금 더 가면 오른편에 부천승마공원이 나오고 왼편에 동불사 절이 나온다. 이 절은 지금은 폐쇄되었고, 그 자리에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안골 위쪽에서 빙 돌아 소사로 593번 길로 되돌아 나온다. 이쪽이 안골 계곡물이 흐르는 곳이다. 이 계곡물은 현재도 맑게 흐르고 있다. 하지만 점말 휴먼시아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서 복개되었고, 이 물이 베르내로 합류한다.

▲ 안골에 있는 동불사 절, 지금은 음식점으로 바뀌었음

안골이 공동주택, 단독주택으로
개발되는 것을 막아야...

이 안골이 부천종합운동장역 일원 종합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지식산업단지. 복합상업, 공동주택, 문화 체육시설, 학교 등을 짓기 위한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안골 전체가 개발지역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부천시의 녹지율이 13.9%에 불과한데 이 안골마저 개발의 광풍에 휩싸이면 아미산의 존재, 매봉재의 존재는 형편없이 찌그러들고 말 것이다. 이 안골 지역은 개발제한구역이지만 이것을 풀어 개발하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면서 매봉재하고 멀미(원미산)과의 녹지축을 연계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안골 대부분에 공동주택, 단독주택이 들어서는 걸로 계획이 짜져 있다. 물론 이 계획이 실현되려면 많은 토론과 논의가 필요하지만 부천시에 계획안이 만들어져 있다면 실시계획에 따라 착착 진행될 것이기에 안골이 사라지는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 여월농업공원에서 바라본 아미산

이 안골은 절대적으로 개발을 해서는 안 된다. 안골 전체를 공원으로 지속적으로 가꾸어 다시 숲이 빽빽하게 우거진 곳으로 재탄생시켜야 옳다. 그래야만 부천시민이 좀 더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부천시가 녹지율이 10%도 안 되는 최악의 도시는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편, 장미공원 개롱지에서 절고개를 넘어 오면 바로 안골이다. 중간에 매봉재에서 아미산(蛾眉山)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 아미산 자락에 있는 백만송이장미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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