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도 안 되는 퇴비장에서 얻은 깨달음

 지난 해 가을 이맘 때쯤, 집안에서 나온 고구마줄기 한 아름을 처리하기 위해 작은 퇴비장을 만들었었다. 햇볕이 가려 고구마뿌리는 선물로 받지 못 했지만 잎과 줄기가 성하고 그 순은 너무 싱싱해서 좋았는데, 가을이 되니 그 넝쿨을 내부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시골 같으면 소가 제일 좋아하는 식재료지만, 먹어줄 이가 없으니 쓰레기로 내보내야 할 판이었다.
담장 밑에 판자로 사각 진 울을 만들고 고구마 줄기를 시작으로 하여 일 년 내 이런저런 쓰레기들을 쌓아왔다. 그리고 성견 한 마리가 날마다 내놓는 개똥은 따로 통에 넣어 모아 왔다.
어제는 동네 대장간에 가서 만 원을 주고 호구(fork)를 사왔다. 퇴비를 뒤집기 위해서다.
아무리 작은 퇴비장이지만 삽으로 뒤집는 건 쉽지 않다.

크기라야 단 한 평도 안 되는 퇴비장이지만, 만들고 보니 여간 요긴한 게 아니다. 썩는 건 무어든지 던져두면 된다. 여름 한 철 옆집에서 넘어오는 장미나무 가지 잘라낸 거라든지 담쟁이 넝쿨 정리한 것, 해마다 여름이면 한 자루씩 보내오는 강원도 옥수수 껍질 벗긴 것, 파며 골파나 배추·총각무·마늘 다듬고 나오는 쓰레기, 과일 먹고 나면 나오는 껍질들, 오이 철이 끝나면 나오는 넝쿨, 상추 대공 몇 개, 수박과 참외 껍질, 고구마 순 껍질, 밤 껍질, 각종 꽃대들, 주방 쓰레기, 고추 대며 가지 대 몇 개, 호박넝쿨과 고구마 넝쿨, 어느 때는 총각무 단을 묶은 지푸라기도 예외 없이 퇴비장으로 들어간다. 엊그제 형님이 보내주신 땅콩에게서도 이제 또 껍질이 나오고 퇴비가 될 것이다. 가을 호박이 크고 있어 거두지 못 한 호박넝쿨은 아직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최근에 버려진 성근 것들을 거둬 내고 잘 부식된 속 퇴비는 제켜 놓았다가 성근 것들을 먼저 넣고 덮는다. 어느만큼 부식된 개똥을 간간히 넣으면서 속 퇴비로 덮고 밟는다. 이렇게 몇 차례 하기를 뒤집기가 끝났다.
봄에도 퇴비 두 포대를 사다 넣고 그것으로 올 텃밭 농사는 충분했었다. 손바닥만한 텃밭이어서다.
그런데 무슨 놈의 퇴비장을 만든단 말인가? 그렇지만 이유가 꼭 있어야 하나?
퇴비가 주는 유용성은 물론 좋다. 그러나 매일같이 이어지는 일상의 결과로 가차 없이 발생하는 쓰레기를 내부화 한다는 의도는 어떻게 보일까? 누가 뭐래도 흙이 퇴비를 원하고 쓰레기가 집안에서 퇴비로 전환되는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예전처럼 말이다. 나름 하찮은 자급적 순환모델 하나를 찾기라도 한 듯, 올 가을엔 퇴비 뒤집기로 우리 집만의 가을 이벤트를 마칠 수 있었다.

 

도시와 농촌의 삶이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고, 도시 안에서의 농사가 예외 같이 보이지 않을 날을 가끔 기대해본다. 쿠바의 아바나처럼. 자연의 주인이기를 포기하고 그 일부로 살아가는 우리라면 그 첫걸음을 작은 퇴비장에서 내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정리가 끝나고 반숙 프라이에 걸치는 막걸리 한 잔이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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