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으로 집짓기

 

 

협동조합주택인 구름정원사람들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협동조합으로 집짓기> 저자인 홍새라 작가의 주소를 받아들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구름은 풀빵처럼 부풀어 올랐고, 간간히 가을비가 뿌려졌다.
불광역에 내리자 대조전통시장이 맞아 주었다. 불광로 한길가에 길게 펼쳐진 시장골목길을 한바퀴 돌았다. 휴일이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곳은 불광로 19길이었다. 인터넷으로 대충 찾아본 것이 불광로 19길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직접 찾아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찾았지만 불광로 18길이 보이지 않아서 ‘구름정원사람들’ 하기홍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새라 작가는 가족모임이 있어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인 하이사장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하이사장은 여행생활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여행도 함께 하며 자주 어울려서 친한 사이였다.
대조전통시장 얘기를 듣더니 길을 잘못 찾았다며 불광초등학교 앞에 서 있으라 했다. 갑자기 북한산으로부터 밀려 내려온 바람이 거세게 밀려와 두 번 남짓 우산이 뒤집어졌다. 빗방울이 어깨며 얼굴에 쏟아졌지만 게의치 않았다. 그렇게 용을 쓰며 비를 피하면서 한참을 기다리자 하이사장이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불광로 18길은 독바위역에서 내려 걸어오면 되는데 불광역에서 잘못 내렸다는 것이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트럭은 불광중학교를 지나고 북한산 둘레길인 구름정원길 초입으로 달렸다. 언덕길 끝자락에 구름정원사람들, 전국 최초로 협동조합으로 지어진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언덕위의 하얀집이었다. 그런데 집 모양이 약간 굴곡져 보였다. 땅의 주어진 조건에 맞춰 집을 짓다 보니 자연스런 모양이 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하얀집에 유독 발코니 하나가 튀어나와 있었다. 홍새라 작가가 책에서 밝혔듯이 발코니의 필요성을 고집해 생겨난 것이었다. 이렇게 구름정원사람들 집은 입주자의 조건과 요구에 맞게 세밀하게 설계된 것이었다.

 

하이사장의 안내로 하얀집 안으로 들어섰다. 1층 끝자락은 카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리마을 세 분이 공동으로 카페를 운영한다고 했다. 세 분 모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서 구름정원 둘레길을 도는 등산객들이나 동네 주민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파는 동시에 구름정원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맛있는 수다를 떠는 참새방앗간 같은 공간이었다. 카페 옆으로 동네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길을 내 놓았다. 건물 아래를 쪼개 길을 튼 것이었다. 동네사람들이 둘레길을 가려고 나설 때 서로 마주치는 일상적인 만남이 이뤄지는 특별한 길이기도 했다.
구름정원사람들이 자리잡은 곳은 북한산 족두리봉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족두리봉을 수리봉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홍작가는 족두리봉에 반해 여러 번 올랐다고 했다. 족두리봉이 아득하게 감싸주는 집, 그게 반해 선택했다고도 밝혔다. ‘수리’라는 뜻은 ‘아주 높은, 으뜸’의 뜻을 가진 땅이름이다. 보통은 수리, 독수리로 부른다. 북한산 정상이 아주 멀어서 보이는 않고, 족두리봉은 눈앞에서 바로 보이는 가장 으뜸산인 셈이었다.
하이사장의 집이 있는 4층으로 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에서 홍새라 작가를 만났다. 홍작가는 가족들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참이었다.
“손님 배웅을 한 다음 저희집에 모실께요.”
홍작가의 말을 뒤로 하고 엘리베이터는 놔두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면서 찬찬히 집 구조를 확인해보라는 하이사장의 배려였다. 복도를 오르면서 깔끔하게 디자인을 해서 페인트칠을 한 복도벽이 눈에 띄었다. 단색으로만 칠해진 아파트벽하고는 달리 층층마다 색깔을 다르게 칠해놓아 이채롭게 생각되어졌다.
전 세대 보일러가 한곳에 밀집해 있는 보일러실을 둘러보았다. 각 집집마다 설치되어야 할 보일러실을 한 곳에 모아놓아 그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이익이 있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으로 집짓기 책에서도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해 놓았다. 보일러실 옆에는 공동 베란다가 설치되어 집집마다 된장, 고추장 항아리들을 놓아두고 있었다. 항아리들도 밖으로 빼놓아 그만큼 집안 공간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하이이사장이 사는 4층에 들어섰다. 길쭉하게 이어진 복도를 지나면서 왼편에는 아들방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들방에 들어서자 책상이 놓여 있고 이층에 침대가 놓여 있었다. 좁은 방을 넓게 쓰는 지혜가 담겨 있었다. 오른편엔 화장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밖이 훤히 보이는 곳에 거실겸 서재를 두었다. 가운데에 거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본격적으로 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족두리봉이 눈앞에 보였다. 건물 앞이 공원으로 새단장되어 있고, 키가 큰 신갈나무가 창문까지 다가와 손짓했다. 노랗게 물이 들어 최고의 풍경을 자랑했다. 화장실 윗부분을 위층으로 만들어놓아 방처럼 꾸며 놓았다.
손님을 마중해 보낸 홍작가가 4층으로 올라왔다. 서재 창문이며 거실 창문, 안방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경치가 기가 막히다고 찬탄을 했다. 한 일년 입주해서 살아오고 있으면서도 주변 풍경에 감탄을 아끼지 않은 그 마음에 나의 놀라움까지 더해졌다. 홍작가의 협동조합으로 집짓기 책에는 집을 짓는 과정을 소설처럼 쓰면서도 꼼꼼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것들이 하나하나 눈앞에 펼쳐졌다.
“창문으로 바라보는 경치가 기가 막히지요. 저멀리 족두리봉이 보이고, 족두리봉 산자락에 안개라도 끼면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 기막힌 곳에서 더 좋은 것은 이웃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지요. 모두가 한 조합원이니까 가족이나 마찬가지에요. 이 건물에 사랑방이 있어서 옛날 시골동네 사랑방처럼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
“홍작가의 집에서 봐도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이 건물 전체 어디서나 경치가 아름답지요.”
하이사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차 한잔을 더 마시고 이층으로 향했다. 이층은 4층과는 또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작지만 아담한 거실이 바로 있었다. 거실 옆에는 언제든지 차를 끓여 마시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주방이 설치되어 있었다. 주방에 늘어뜨린 조명이 이채로웠다. 조명에 신경을 썼다고 하더니 역시였다.
거실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왼쪽에 화장실이 있고, 오른쪽에는 안방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방창문을 열면 밖의 풍경이 그대로 가슴에 안겨왔다. 안방 못 미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길게 이어졌다. 계단 위에는 천창이 조그맣게 만들어져 있었다.
“저 천창으로 정말 빛이 들어오나요?”
“물론이지요. 지금은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어둡지만 밝은 날 햇빛이 은은하게 계단으로 쏟아집니다. 이 햇빛으로 인해 집 전체가 더 환해지지요. 제가 천창을 고집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층에 오르니 홍작가가 소설을 쓰는 작업실이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옆에는 집에서 살지는 않지만 가끔 오는 딸을 위한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책에서는 딸이 인천에서 이사오는 걸 반대했다고 되어 있었다. 터파기 작업을 할 때 함께 왔을 때도 둘러보지 않고 자동차에 그대로 있기까지 했다고 했다. 하지만 집이 완공되고 자신의 방이 아담하게 꾸며지자 그렇게 좋아한다고 했다. 딸의 방에서 밖을 보면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숲의 향기를 제대로 맡을 수 있는 방이어서 휴일이면 어김없이 온다고 했다. 이 이층에서는 또한가지 독특한 것이 있었다. 밖으로 외출할 때 거실 현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문을 달아놓은 것이었다. 소설 작업을 하다가 밖을 나갈 때가 있으면 문을 열고 나갔다가 바로 들어오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집에 현관문이 2개가 있는 셈이었다.
“소나무나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등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둘레길을 도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도 나고, 사계절 새소리·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제 집에 적응도 되고 살림이 정돈되니 복층집이 꽤 매력이 있습니다. 아래위층이 독립적이어서 한집인데도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지요. 아래층도 마음에 들지만 제가 혼자 작업하는 이 작업실이 너무도 맘에 듭니다. 이 작업실 밖에 발코니를 달아놓아 글을 쓰다 지루해지면 상큼한 공기를 마시러 잠깐 나가기만 하면 되지요.”
구름정원사람들은 2014년 10월 말 준공해서 입주를 한지 딱 일년이 지났다. 주택협동조합에 든 여덟 가구 주민이 설계 단계에서부터 직접 참여해 지은 집이다. 집 앞을 지나가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 구름정원길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름을 짓는 데에도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모아서 정한 것이다. 이제는 구름정원사람들이 꽤나 유명해졌다. 전국 여기저기서 협동조합으로 집을 지어보려고 자문을 구하거나 현장을 보기위해 내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협동조합으로 집짓기>는 이 집 주민인 작가 홍새라씨가 조합 들기에서부터 땅 사들이기, 설계, 집 짓기를 거쳐 완성된 집에 들어가 살기까지 과정을 쓴 책이다. 산이 가깝고 텃밭을 일굴 수 있으며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골 고향집 같은 곳을 꿈꾸던 중 협동조합주택 이야기를 듣고 바로 참여를 했다.
집 구경을 다하고 막걸리 한잔을 하기 위해 집 위에 있는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구름정원사람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공원산책도 했다. 집을 지을 때 이 공원공사도 함께 했다고 했다. 완공도 같아서 집 앞에는 아주 큰 나이를 많이 먹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를 배경으로 여기저기에 단정한 숲이 꾸며져 있었다. 길건너에는 솔숲이 펼쳐져 있어 신선한 공기는 건물 주위로 늘 가득할 것 같았다.
술집에 들어가 파전에 막걸리 한 항아리를 시켰다. 그런데 비가 오고 해서 그런지 포장마차에 비닐문을 내려놓아 밖의 경치를 감상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우리집 풍경을 바라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걸 보여주러 여기에 왔는데 벌써 비닐문이 가로막아 버렸네요.”
홍작가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집 공사가 한창 진행될 오월에 책을 쓰자는 얘기가 나왔지요. 조합원들 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밴드를 만들어 놓아서 자료 정리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내용이 부족한 부분은 조합원들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썼지요. 협동조합으로 집을 짓는 일은 흥겹고도 지난한 작업이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시골에다 전원주택, 황토주택, 조립주택 등을 짓습니다. 이들 집들은 모두 이미 설계가 되어 있고, 건축회사에서 건축을 해주고 이익금을 가져가는 형태가 진행되지요. 그렇지만 저희들이 지은 집은 최소한의 건축비로 집을 짓는 겁니다. 그게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정신이지요. 건물을 짓는 곳이 생기면 조합원들을 모집하고 조합원들이 직접 부지구입부터 설계, 시공, 내장공사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모으고 모아서 진행합니다.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어떨 때는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 늘 소통하면서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열정적으로 함께하면 금방 해소가 됩니다. 공동체로 살아가야할 집이니까 더욱 애뜻한 거지요. 그래서 사랑방, 보일러실, 공동세탁실, 지하실 등이 탄생한 겁니다. 거기에다 건축비에서 남긴 이익금에다 조금 더 투자를 해서 3개의 상가를 조성해 여기에서 나온 이익금을 공동으로 분배해가는 일석이조의 집이기도 합니다.”
포장마차 밖에서는 여전히 비줄기가 가늘게 떨어지고 있었다. 막거리를 마시면서 집짓는 얘기를 들으니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나도 시골로 내려가 집을 짓고자 마음을 먹은 지 오래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러 해 동안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생활해오면서도 정작 협동조합으로 집짓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현장이 와보니 홍새라 작가, 하이사장 등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우리들이 사는 아파트나 빌라 같이 획일적인 집에서 사는 것 보다는 이렇게 100% 자신의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집짓기가 아닐까? 각박한 도시적인 생활일지라도 조합원들간의 끈끈한 공동체적인 유대감이 묻어나는 그런 공간에서 산다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을 것이었다.
밤이 깊어 포장마차를 나와 구름정원사람들을 한 번 더 굽어보고 언덕길을 내려왔다. 집 아래가 6번 마을버스 종착지였다. 버스 한 대가 서 있었지만 그대로 수지마을 정류장까지 내려왔다. 곧 있어 마을버스가 왔다. 연신내역에 내렸다. 전철에 탄 뒤 가방에 넣어둔 <협동조합으로 집짓기>를 펼쳐보았다. 땅을 뚫고 죽순이 올라오는 것처럼 건물 한 채가 쑥쑥 자라났다.

 

 

한도훈
1961년 출생, 2014년 시와문화 시인상 등단, 시집으로 오늘, 악어떼가 자살을 했다. 홍시, 코피의 향기가 있고, 소설로는 벌거벗은 신들의 세상1,2, 동화로는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소라의 용못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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