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편지

 

한도훈(시인,한국작가회의 회원)

눈 내리던 날, 콩 하나가 길거리에 뒹굴었어.
서러워서 눈물 찔끔 콧물도 찔끔
한참을 굴러가다 친구 콩 하나를 만났지.
서로 얼싸안고 눈물반 콧물반
둘이서 엎치락뒤치락 굴러가다 보니
저녁 그림자처럼 꼬랑지가 길게 이어졌어.
뒤돌아볼 틈도 없이 마구 구르다가
꼬랑창에 빠질 즈음
급하게 뒤에서 손을 잡는 느낌이 있었어.
하나 콩 뒤에 또 하나 콩
이렇게 수백 개의 콩들이 손을 이어잡은 거야.
맨 앞장 선 콩은 조금 머쓱한 채로
멍해진 표정으로 피식 웃었어.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국화꽃처럼 향기가 듬뿍 전해기기도 한 거지.
올림픽 때처럼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콩들이 하하하 웃어댔지.
그 덕분에 앞장 선 콩이
꼬랑창에 빠질 뻔 했어.
두 번째 콩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거야.
아이쿠야. 꼬랑창에 빠졌다면
등짝에다 날개를 단 악마들이
시퍼런 발톱으로 허벅지고 뭐고
사정없이 찍어대는 고통을 당했을지도 몰라.
그렇게 질긴 목숨줄 이어낸 콩들이
한그루 두그루 콩나물로 자라게 되었어.
어서 모여라 콩! 어서 물 줘라 콩!
콩콩거리며 콩나물을 키워냈지.
그 콩나물들이 언젠가는 저 우주까지 닿을 지도 몰라.
콩나물들 꿈은 별들이 뽀뽀하는 우주에다
떡 하니 우주정거장을 세우는 것이거든.
지상의 모오든 콩나물들아!
저녁노을로 부천이 환하게 물들고
오늘밤은 편하니 잠들도록...그래야 쑥쑥 자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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