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 부천궁이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같이 임금이 살던 궁궐은 아니다. 궁궐(宮闕)은 ‘집 궁(宮), 대궐 궐(闕)’을 쓴다. 부천궁(富川弓)은 ‘활 궁(弓)’이다. 부천만의 독특한 전통 활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부천궁이라는 말 대신 ‘부천맥궁(富川貊弓)’으로 부른다. 옛 고구려의 활 제작 전통을 그대로 살려온 맥궁이다. 이 맥궁은 고구려의 한 종족이었던 소수맥(小水貊)에서 생산한 활이었다. 단궁(檀弓)은 박달나무로 만든 목궁(木弓)이지만 맥궁은 쇠붙이나 동물의 뿔로 만든 각궁(角弓)이었다. 처음에는 사슴이나 멧돼지를 잡는 수렵에 사용했지만 고구려의 기상을 높이는 전투에 많이 사용하게 되어 만주 일대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고대사회 중국에서 우리 민족을 가리켜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불렀다. 보통은 동쪽의 오랑캐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 ‘오랑캐 이(夷)’는 ‘큰 대(大)와 활 궁(弓)’을 합친 말이다. 그러기에 동방의 민족으로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민족을 비하해서 붙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활의 역사는 고구려에서 꽃을 피운다.
고구려 활인 맥궁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중에서 안악 3호분 행렬도를 잘 관찰해보면 고구려 병사들의 무장 정도를 알 수 있다. 병사들이 무장한 모습 중에서 고구려 맥궁으로 무장한 병사가 수레 옆에 바싹 붙어서 있어서 고구려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였음을 알 수 있다.

▲ 안악 3호 고분 행렬도(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이 행렬도를 보면 귀족이 탄 수레 옆에 바싹 붙어 4명의 고구려 궁수들이 걸어가고 있다. 이들은 활이 재어진 상태에서 두손으로 각궁 끝을 잡고 왼쪽 어깨에 올려놓았다. 왼쪽 허리에는 화살통을 맸다.
이처럼 활로 무장한 궁수들은 원거리에서 다가오는 적을 살상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다. 거기에다 무리지어 달려오는 적의 대열을 순식간에 흩뜨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본래 산지 지형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산성을 중심으로 전투가 전개되었기에 궁수의 중요성은 더욱 컸다.

▲ 행렬도의 궁수

안악 3호분 행렬도에서 갑옷조차 입지 않고 창으로만 무장한 경마기병들이 있다. 이들은 언제든지 치고 빠질 수 있도록 무장을 가볍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행렬도 앞쪽으로는 창수들이 긴창으로 무장하고 있다. 긴창은 오른손에 들었다. 얼굴 옆쪽을 가리는 볼가리개가 길게 늘어져 있고, 털장식이 달린 종장판주 형식의 투구를 쓰고 있다. 이들은 찰갑갑옷을 입었다. 왼손에는 다양한 형태의 방패로 몸을 보호하고 있다.
행렬도의 앞쪽에는 찰갑갑옷조차 입지 않고 환두대도로 무장한 환도수들이 포진해 있다. 환도수들이 든 환두대도는 곧 손잡이 끝부분이 둥그런 고리 모양으로 되어 있는 '고리자루칼'이다. 환도수는 가장 가까운 적을 공격하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행렬 앞쪽에 배치했다.

다음 행렬도에는 도끼를 든 부월수들이 있다. 이들은 걸어다니는 보병들이다. 그들은 달랑 도끼 하나 들쳐매고 있다. 여기에 머리에는 붉은책(責) 만을 쓰고 있을 뿐 갑옷과 방패 같은 방어구는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아마도 이들은 갑옷을 갖춰 입은 창수, 환도수, 궁수 등에 비해 하급 계층일 것이다. 도끼는 적을 공격하는데 아주 위협적이고 무자비한 측면이 있다.
본래 도끼는 고대로부터 애용되던 무기 중 하나로, 창이나 칼에 비해 비교적 만들기도 쉽고 사용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특히 전시에 징집되어 온 농민들도 평소 자주 사용했을 도끼를 이용한 전투법에는 쉽게 숙달되었다. 또한 도끼는 보병들 간에 뒤엉켜 싸우는 난전, 공성전, 산악전 중에는 칼과 마찬가지로 창 못지않은 효율을 발휘하는 무기였다.

이처럼 안악 3호분 행렬도에서 보여주듯이 고구려의 맥궁이 다른 무기들에 비해 위력적임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부천맥궁도 물소뿔로 만드는 각궁(角弓)이다. 고구려에 비해 훨씬 견고하게 제작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전통활은 전부가 각궁이다. 그 중에서 부천활을 최고로 친다. 그만큼 다른 지역의 활에 비해 성능이 월등하다는 얘기다.

각궁이 생산되어지는 지역에 따라 그 명칭을 갖는다. 부천맥궁에서 시작해서 서울궁, 평택궁, 천안국궁, 제천궁, 조치원궁, 전주궁, 영주궁, 진해궁, 마산궁, 대구궁, 경주궁이 있다. 부천맥궁과 함께 전통 각궁으로 각광을 받는 곳은 경상북도 예천의 예천궁이다. 부천의 활만 부천맥궁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른다. 다른 지역에선 맥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만큼 고구려 활의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요즘에는 소뿔을 사용하지 않은 개량궁이 있다. 대나무만으로 만든 동이궁이 있고, 연무궁, 제일궁, 세천궁, 태극궁이 있다. 개량궁은 활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화된 활이다.
처음에는 개량궁은 FRP를 주로 사용해서 만들었다. 개량궁의 모습은 전통 각궁과는 차이가 컸다. 그 뒤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근래에는 카본을 이용해 주로 만든다. 현재는 각궁과 외형 차이가 거의 안 나게끔 발전했다. 동이궁처럼 성능을 보완하기 위해 대나무 등 천연 재료를 섞기도 한다.

부천맥궁의 전통을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부천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만약 전통이 사라진 부천의 모습을 진단한다면 겉은 화려하지만 속빈 강정 같은 모습일 수밖에 없다. 부천맥궁은 성주산 아래에 자리 잡은 성무정 공방에서 1년에 80장 정도 제작된다.

글ㅣ한도훈 조합원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