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지 6명 학생을 위해

 

 


지난 연말부터 부천에 과학고등학교를 유치하겠다는 이야기가 공론화 됐습니다. 모 시의원의 시정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나온 이야기지만 사실 2014년 김만수 시장의 선거공약에 포함됐던 일입니다. 과학고 설립의 배경과 진행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시장의 시정질문 답변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2015년 12월 22일 시의회에서 한 발언입니다.


<<우리 시에는 일반고 23개, 특성화고 4개, 예술계 특목고인 경기예고가 있고 중학교는 32개 학교가 있습니다. 우리 시 고등학생들의 학력은 2002년 고교평준화정책 이후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최근 기초학력과 대학수능시험 성적에서 경기도와 전국 평균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관내 교육기관의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중학교 졸업생 중에 500여 명이 매년 관외 지역에 소재한 특목고 등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부천의 학부모 등으로부터 관내 고등학교의 학력향상방안 마련과 함께 학력을 선도해 갈 특목고 설립 요구가 늘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기도 상황을 보면 외고, 과학고, 국제고 등 특목고가 수원에 4개, 성남에 2개, 고양시에 3개, 안양시에 2개교 등이 설립되어 있지만 우리 시에는 예술계 특목고인 경기예고만 있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정서가 있습니다.

특목고는 1974년에 시행된 고교평준화정책 이후 수월성 교육을 위해 설립되었지만 특목고가 입시기관처럼 되고 초등학교, 중학교의 과열 과외를 유발하는 등 부작용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에서는 특목고의 설립을 공식적으로는 검토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학고의 경우 인구 300만여 명의 인천시에 현재 인천진산과학고, 인천과학고와 내년 3월에 개교하는 인천과학예술영재고 등 3개 학교가 있습니다. 또 서울·부산에 3개 학교, 대전과 대구에 각 2개 학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구 1300만여 명의 경기도에는 경기 북부지역인 의정부시에 경기북과학고 한 곳밖에 없고 경기 남부지역인 수원시에는 경기과학영재고가 있습니다. 그 결과 경기도가 우수한 이공계 지역 인재육성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이에 지역별로 균형 있는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 중서부 지역에 과학고 건립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우리 시는 경기서부권역의 중추도시로서 과학고 추가 설립의 최적지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 시가 정부의 이공계 인재 육성정책과 부합하면서 시흥, 광명 등 인근에 충분한 교육배후 수요와 지리적인 이점이 있어 과학고 설립에 충분한 입지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는 창의와 인성을 겸비한 지역인재 육성을 위하여 현재 지원 중인 문화, 예술, 교육 외에 과학고를 설립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추진한 사항으로는 지난 11월 23일 경기도교육청에 과학고 설립 건의서를 제출하였고 현재 경기도교육청에서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도의원, 교육청, 학부모단체 등 대표성 있는 분들로 과학고 설립 사전검토준비단을 구성하여 경기도교육청과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입니다. 또 이 준비단을 통해서 토론회, 조사, 연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과학고 설립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를 조성해 나가겠습니다. 과학고 설립 추진 방안에 대해서는 이런 절차가, 협의가 진행되는 대로 구체적으로 보고해드릴 예정입니다.>>


시장의 발언을 요약해보면 평준화 이후 우리시 고등학생들의 학력은 하위권을 맴돈다. 특목고 등을 가기 위해 매년 500명 이상이 관외로 나갔다더라. 우리 시에도 학력을 선도해 나갈 특목고 설립요구가 늘,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목고가 입시기관처럼 기능하는 부작용이 있어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은 설립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과학고는 사정이 다를 것이다. 경기도에는 타 시,도에 비해 과학고가 적어서 신설할 여지가 있고 그렇다면 부천이 입지 타당성이 있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더 요약하면 ‘학력하향을 막기 위해 특목고 설립을 원하는 여론이 있는데, 외국어고는 안되지만 과학고는 설립할 수 있겠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원인은 학력하향이고 결과는 과학고를 설립입니다. 인과관계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과학고도 외국어고, 예술고, 체육고, 국제고처럼 특목고의 한 종류입니다. 특목고는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따로 모아 교육함으로써 전문가를 조기양성할 목표로 설립된 고등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지적했듯이 외국어고는 좋은 대학에 쉽게 진학할 수 있는 통로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과학고도 이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전원이 한국과학기술원으로 진학했지만 지금은 서울대나 의예과, 치대, 한의대 등으로 진학하는 학생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고를 대신할 영재고를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외국어고든 과학고든 특목고가 하나 생긴다고 고등학생들의 학력향상을 선도할 수 있다는 논리도 무리입니다. 어린 학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에 시달릴 가능성만 더 높아집니다. 특목고는 입시성과가 좋다는 이야기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니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입시를 위해 우수한 학생들은 모아놓는 것이 특목고라면 평준화 교육의 취지를 전적으로 거스르는 것입니다.

특목고 유치는 정치권의 단골 메뉴였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이 영재라 믿으며 특별한 학교를 원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욕망, 특목고가 생기면 집값이 오른다는 근거가 희박한 이야기,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겠다는 정치인들의 허세가 작용한 덕분입니다. 부천에도 오래 전부터 특목고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었습니다. 여월정수장 부지에 특목고를 유치한다는 이야기는 부천에 고교평준화가 시행된 직후인 2002년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2004년에는 여월동에 외고를 설립하려 했습니다. 2006년에는 ‘정명고의 외국어고 전환’을 검토한 일도 있었습니다.

2014년 이전 김만수 시장은 특목고 설립에 아주 부정적이었습니다. 2011년 7월에는 ‘지역 내 인재를 최대 30%만 뽑을 수 있는 상황에서 특목고 운영을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예산투입보다는 차라리 그 예산으로 각급 학교의 학력향상에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습니다. 2013년 6월에는 ‘(특목고 유치를 주문하는 시민들이 많은데) 이것이 곧 교육환경 개선의 방법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강화하는 등 기회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이 부천시의 몫’이라고 말합니다.

그랬던 분이 2014년에는 과학고 설립을 공약했습니다. 당선 이후 한 인터뷰에서 “해마다 부천에서 700명의 우수한 중학교 졸업생들이 특목고를 비롯해 관외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있다. 굳이 이사 가지 않고 능력에 걸맞는 교육을 받도록 과학고를 세우려고 한다. 부천의 영재를 부천에서 키워 지역발전의 동력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도 있다”고 말한 것을 공약에 대한 설명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선거를 시점으로 말이 확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매년 관외 고등학교로 진학한다는 700명은 어떤 숫자일까요? 2015년에 부천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 9,615명 중 관외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828명이니 부풀린 숫자는 아닌 셈입니다(2014년 738명, 2013년 742명으로 지난해가 특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과거 실업계로 불리던 특성화고 진학(269명), 일반 인문계고 진학(187명)을 빼면 372명이 됩니다. 이들 중 135명은 공, 사립 자율형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47명은 외고나 국제고에 진학합니다. 정작 과학고(영재고 포함)에 진학한 학생은 17명뿐입니다. 이 중 경기북과학고에 진학한 학생은 단 6명입니다.

과학고는 모집단위를 광역시,도로 합니다. 지역학생들 30%를 우선배정하도록 허용하는 다른 특목고와는 달리 과학고는 부천학생 우선 배정을 요구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영재고는 전국 단위로 모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천에 과학고가 생기더라도 매년 5~6명이 더 진학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부정적 영향이 크고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니 포기했겠지만 외국어고나 자사고 유치를 선언했다면 적어도 지역학생들이 갈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은 들었을 것입니다. 5~6명의 학생을 위한 과학고 설립이 무어 그리 급하고 대단한 일입니까?

공짜로 되는 일도 아닙니다. 2004년에 부천시가 외국어고 설립을 추진할 때 경기도교육청은 설립비 440억 원 전부를 부천시가 부담하라고 요구하여 포기했다고 합니다. 지금 과학고를 추진해도 그런 요구가 있을 것입니다. 10년이 지났으니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과학고의 특성상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연간 운영비도 일부 부담해야 할 것입니다. 타 지역에서 들어올 학생들이 대부분인 과학고에 이런 예산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해야 합니다. 부천시 예산을 투입해 경기예고에 기숙사를 건축할 때도 이런 논란이 있었습니다.

과학고에 입학하는 5명 남짓한 지역 학생으로 ‘부천의 인재를 키워 지역발전의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부천에 살면서 부천의 특목고를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부천발전에 기여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부천에서 자기역량을 펼칠 기회가 있다면 외지 출신이라도 얼마든지 부천에서 일하려 할 것이고 그것이 부천발전에 기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좋은 기업, 더 좋은 연구소, 더 좋은 직장을 유치하는 것이 훨씬 더 절실한 일입니다.

과학고 설립 추진은 한마디로 여론에 편승한 인기몰이 정책일 뿐입니다. 설령 성사된다하더라도 큰 이익 없이 비용만 잔뜩 들어갈 일입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부천시의 건의에 대해 ‘부천지역 과학고 신규설립 의견에 찬성’한다는 답을 했다고 합니다. 경기도내 중학생 수에 비해 과학고 수가 적고 부천시가 적극적이라면 찬성한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예산분담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자는 입장입니다. 경기도교육청이 주체가 되어 과학고 증설을 추진하고 부천시가 이를 유치하는 일이라면 몰라도 지금 같은 방식이면 앞뒤가 크게 바뀐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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