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봉, <미안해요 베트남> 저자

‘사축’은 집에서 기르는 동물인 가축을 빗대어 요즘 회사에서 기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1월 19일자 경향신문의 주요 기사다. ‘저녁이 있는 삶’은 2012년 펴낸 손학규의 책 제목으로 정치인인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념이다.

응팔이 시대만 하더라도 직장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알며 살아왔다. 비정규직이란 말은 흔치 않던 말이었다. 거의 모두가 정규직이었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을 자본 위주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소득으로 생각해 노동자의 인건비 착취를 가장 쉬운 자산의 축적으로 삼았다. 그 결과 비정규직은 하염없이 늘어나고 정규직도 초과근무를 안 할 수가 없게 되어 직장인의 삶에서 자신을 위한 저녁은 사라졌다.

직장인들은 법정 노동시간이 지난 저녁시간마저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일함으로써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 앉아 저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게 되었다. 법적으로는 주 40시간이지만 이를 지키는 회사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은 시민의 행복을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회사 편에 서서 이를 묵인 또는 지지하면서 시민을 길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초과근무가 횡횡하는 이유는 비록 1.5배의 수당을 더 준다고 법으로는 규정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법을 부려 기존 직원이 초과근무하는 것이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건비가 절약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결과 실업률은 올라가 사회는 불안해 지고 시민의 행복권은 심각하게 침해를 받는다.

손학규의 ‘저녁 있는 삶’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그의 책을 읽어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그 문구에서 풍기는 그대로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을 보장하자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특정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초과근무를 원칙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법으로 규정하든지 아니면 초과근무시 징벌적 수당을 반드시 지불하게끔 해야 한다. 그러면 회사에서 필요한 시간이 풍선처럼 부풀어 취업률을 올리고 직장인들은 비록 임금이 좀 삭감된다하더라도 자신들을 위한 저녁을 되찾아올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시간은 자기개발을 위한 시간이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사회가 건전하게 돌아가는 동력이 된다.

노동시간 준수로 직장인은 사축이 되지 않고 개성 있는 자신의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자신이 행복을 느끼면 가족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하며, 사회가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더불어 사는 삶의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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