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전통문화재를 찾아서(2)

 부천 고리울에 있는 봉배산은 특별하다. 고리울 뒷산으로 아주 작지만 지금부터 3,000년 전에 청동기인들이 살았다. 이곳 산꼭대기에서 낮은 등성이까지 무려 21채의 움집이 오밀조밀하게 세워져 있었다.
부천 청동기인들은 이 움집들에서 기거하며 들판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사슴도 잡고, 토끼 같은 작은 동물들을 사냥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맑은 하늘을 통째 받들고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별 하나, 나 하나’ 그렇게 헤었을 지도 모른다. 배고파 칭얼대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은 뜻모를 자장가를 불러주었을 것이다. 남자들은 봉배산 아래 물가로 내려가 그물을 던져 물고기 잡았을 것이다. 그때 봉배산 아래까지 물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산밭이며 평평한 산등성이에 곡식의 씨앗을 뿌려 가을이면 반달돌칼로 거둬들이는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그렇게 부천 청동기 시대 선조들이 생명을 이어온 결과 현재의 우리들이 있는 것이다.

▲ 고리울 돌화살촉

부천 고리울 청동기인들은 사슴 사냥을 어떻게 했을까? 봉배산 청동기 유적지에서 나온 돌화살촉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이 돌화살촉들은 정교하게 다듬고 다듬은 하나의 조각 작품이다.
돌화살촉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돌화살촉 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몸통과 화살대와 결합하는 슴베이다. 슴베는 돌화살촉을 광대싸리나무 등에 단단하게 결합시키는 부분으로 둥글고 길다.
보통 돌화살촉은 슴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슴베도 ‘일단(一段)으로 되어 있느냐, 이단(二段)으로 되어 있느냐’로 또 구분한다. 일단(一段)은 슴베가 일자로 매끈하게 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일단경식(一二莖式)이다.

▲ 이단경식 돌화살촉

슴베가 나무줄기를 닮았지만 2단으로 깎여져 있는 것을 이단경식(二段莖式)이라 한다.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화살대 나무에서 잘 빠지지 않게 되어 있다. 봉배산 청동기 마을에선 이 이단경식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 돌화살촉이 당시에 유행된 것이다.
돌화살촉에 슴베가 없고 그 모양이 삼각형으로 쑥 들어간 삼각만입형(三角彎入形)도 봉배산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이 삼각만입형 돌화살촉은 몸통 중앙부에 양방향으로 구멍이 뚫려 있다. 화살대인 광대싸리나무에 대고 끈으로 묶어 사용했다는 증거이다. 이 형태는 여주 흔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삼각만입형 돌화살촉과 그 형태가 유사하다. 이처럼 슴베가 없는 것을 가리켜 무경식(無莖式)이라 한다.
이 무경식에는 몸통의 석촉 하부 중앙에 홈을 파서 만든 쌍각촉, 하부를 쑥 들어가게 만입시킨 삼각만입촉(三角灣入鏃), 하부가 직선으로 끊어진 삼각촉(三角鏃) 등으로 나뉜다. 슴베가 없는 돌화살촉엔 삼각형 모양이 대세를 이룬 것 같다. 제법 굵은 광대싸리나무를 정교하게 깎아서 돌화살촉을 묶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는 돌화살촉의 형태로 구분했다면 돌화살촉의 모양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부천 고리울 봉배산에서 발굴된 돌화살촉 모양은 버들잎을 닮은 버들잎형이다. 한자로는 유엽식(柳葉式)이다.
봉배산 꼭대기에 있는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인 적석환구유구(積石環溝遺構)에서 나온 돌화살촉은 그 모양이 독특하다. 몸통 부분이 뱀머리를 닮아 뭉툭하고 자루 부분은 아주 길다. 한자로는 창의 머리 부분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져 창두형(槍頭形)이라고 한다.
보통 돌화살촉의 모양에 따라 버들잎 닮은 유엽식(柳葉式), 삼각형, 마름모꼴인 능형(菱形), 돌바늘처럼 날카로운 석침형(石針形)으로 나눈다. 그러니까 청동기시대 장인들이 만든 조각 작품으로 그 모양이 다채롭고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돌화살촉을 끼워 넣는 화살대는 나무로 만들었다. 주로 광대싸리나무였다. 봉배산 청동기유적지에선 화살대는 발굴이 되지 않았다.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서 발굴된 화살대로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이 화살대는 도로를 뚫다가 발굴이 되었는데 뱀머리 모양인 창두형 돌화살촉 11개하고, 화살대가 원형 그대로 발굴이 되었다.
이들 화살대의 길이는 35~40 센티미터 정도이고 두께가 0.5 센티미터였다. 나무를 아주 정교하게 가공해서 만들었다. 이로 미루어 봉배산 청동기인들이 사용한 화살은 나무로 만들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화살대로 대나무를 주로 썼다.
부천 봉배산 청동기인들은 밤새워 돌화살촉을 갈고 다듬어서 나무로 만든 화살대에 정성껏 끼워 넣는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숭고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예술가의 풍모를 지녔을 것으로 짐작된다. 몇 번이고 사슴 같은 짐승을 쏘아 맞추고도 빠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고정을 했을 것이다.
날이 밝으면 고리울 봉배산 청동기 마을 장정들은 활과 화살을 매고 원미산으로 성주산으로 사냥을 떠났을 것이다. 멀리 떨어진 개화산, 계양산까지 사냥을 가서 저돌적으로 돌진해온 멧돼지를 어깨에 매고 의기양양 돌아왔을 것이다. 토끼 눈망울을 닮은 자식들이 오돌오돌 떨며 기다리고 있는 움집으로...

  글Ⅰ한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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