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주민 청구 방식으로 제정한 <시흥시청년기본조례>

‘헬조선(hell(지옥)+조선(대한민국), 한국이 지옥과 같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회라는 뜻)’, 2016년 이 시대 청년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의 괴로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청년들은 잔혹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을 진학하고 대학 졸업을 해도 취업 합격통지서가 아닌 학자금대출 고지서만 받아들게 된다. 일자리를 얻어도 장시간 저임금에 비정규직인 경우가 허다하다. 높은 집세로 월급의 대부분은 사라지고, 내집마련은 꿈조차 꿀 수가 없다.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자신의 교육수준, 삶의 형태가 결정된다. 청년들에게 한국 사회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이다.

‘헬조선’을 넘어서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지역에서부터 만들어나가기 위해 최근 지방정부 단위에서는 정책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2014년 12월 서울시 청년기본조례가 전국 최초로 발의 되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 청년들을 위한 조례 만들기가 한창이다. (서울특별시 청년 기본조례(2015년 1월 2일 제정), 전라남도 청년발전 기본 조례 (2015년 7월 23일 제정), 경기도 청년 기본 조례(2015년 8월 13일 제정), 광주광역시 청년정책 기본조례(2015년 12월 28일 제정), 대구광역시 청년 기본조례(2015년 12월 30일 제정), 성남시 청년배당 지급 조례(2015년 12월 18일 제정), 청년 일자리 창출, 청년 문화 활성화 관련 조례를 포함하면 총 63건)
그리고 부천의 이웃도시 시흥에서는 지난 1월 7일 <시흥시청년기본조례>가 공포되었다. 최근의 흐름 속에서도 <시흥시청년기본조례>는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 집행부나 시의원의 발의로 제정된 다른 지방자치단체와는 달리 청년 문제의 당사자인 청년이 직접 주민청구방식의 조례제정 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국 최초로 이루어진 성과이다.

▲ 서민영(시흥청년아티스트 대표)

 

▲ 조은주(시흥시청 정책기획단 사무국장)

시흥을 떠나지 않으려

<시흥시청년기본조례>를 만들어 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시흥청년아티스트’는 20~29살 사이의 시흥 청년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오랜 기간 시흥에서 성장해오면서, 지역사회 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시기를 나눔자리문화공동체, 청소년 수련관, 시흥시 장애인 복지관 사회복무요원, 청소년 문화의 집 등 다양한 영역에서 깊숙이 지역사회를 경험한 것이다. “이 친구(서민영) 같은 경우에는 나눔자리 임원진 활동을 했었어요. 거기가 약간 봉사하는 시스템이 달라요. 조직이나 임원들도 다 청소년들이고, 봉사활동도 자기네들이 다 계획해서 하고요. 봉사라고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정책제안이나 주민참여예산 같은 것도 포럼을 열어서 진행했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고요.(조은주, 시흥시청 정책기획단 사무국장)”
이렇게 지역사회과 함께 성장한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지역에서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서울로만 나가려고 하는 (지역)청년들의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지역 안에서 뭔가를 조금이라고 할 수 있도록, 안 떠나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보고 싶어서... 그래서 우리끼리라도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서민영, 시흥청년아티스트 대표)”
그 시작으로 청년기본조례 제정을 삼게 된 것은 ‘시흥시 청년들의 고민과 청년활동에 대한 욕구조사활동’을 통해서였다. “시나 정치에서 보면 청년 보고 참여하라고 하잖아요? 근데 솔직히 그걸 참여할 수 없는 여건을 만들어놓고 참여하라고 한다는 것에 대한 반발을 접하게 되었죠.”
또한 청년 대상의 간담회를 먼저 제안할 정도로 청년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데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 김윤식 시흥시장의 행보는 시흥청년아티스트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대표성에 대한 불안

구성원 중 누구 하나 전문가는 없었지만, 그 점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신촌대학교 등 만들고자 하는 조례 내용과 관련된 전문가들을 초빙해 스터디를 하고 타 시도의 조례를 분석하며 시흥시의 특성을 반영한 내용을 다듬어 갔다. 연구활동과 더불어 중요성을 놓지 않은 활동은 ‘테이블 토론과 공청회’였다. 시흥청년아티스트가 시흥 청년들을 대표할 수 없다는 불안함은 더 많은 청년들을 만나기 위한 원동력이 되었다.
“조례의 내용을 구성하기 전에 우리 말고도 다른 청년단체들을 모아 우리 이런 걸 하려고 한다. 잘 모르지만 삐질삐질 땀 흘려가면서 설명했어요. 각 단체마다 특성이 있거든요. 문화, 공연, 예술 이런 쪽도 있고, 선배로서 청소년들을 이끌어주는 쪽에 관심이 높은 데도 있고... 그런 청년들의 니즈(Needs, 필요)를 알아보려고 테이블 토론을 했었고요. 청년들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결국 잘 자리를 잡고 정책으로 반영 되려면 지역 사회의 시민, 어른들한테도 잘 인식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들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른들도 모시고 청년들도 오게 해서 공청회를 했어요. ‘어떤 내용이 들어갔으면 좋겠는지, 어떻게 수정했으면 하는지’ 이런 것들을 노력했었어요.(서민영)”

직접 발로 쓴 조항들

<시흥시청년기본조례>의 내용을 살펴보면 각 조항의 내용이 구체적이며 실행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청년정책위원회의 경우 정책을 심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결에 대한 권한이 있다. 시장이 호선하여 구성하는 청년정책위원회와 별개로 시민사회가 자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청년정책협의체를 두어 청년관련 정책결정에 참여하게 하여 시 행정으로부터 독립성을 만들어 냈다. 그밖에도 타 시도에서도 ‘고용촉진 또는 확대’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시흥의 경우 불안정 고용 상태의 청년의 근로환경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적극적인 요구가 추가 되었고, ‘생활안정’이라는 포괄적인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건강권과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내용, 학자금 대출이나 상속으로 인한 부채를 상환하기 어려운 청년을 위한 지원 대책 마련이라는 구체적인 요구가 덧붙여졌다.
청년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지역 내 상호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대학생 이외의 비진학 청년, 취업준비생,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는 청년 등 학습권으로부터 소외된 청년에 대한 학습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은 시흥시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조항이다.

“사실 테이블토론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어요. 불안정 고용 같은 상태에 대해서는 우린 다 대학생이니까 청년들의 그런 문제에 대해 잘 몰랐었어요. 그런데 설문조사를 보고 충격을 받게 되었죠. 주거 같은 경우도 ‘시흥은 주거문제가 크지는 않겠지?’라고 생각 했었는데, 불안정 고용 상황에 있는 청년들은 벌집구조로 된 집에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아차 싶었죠. 청년들은 가진게 몸이다 건강이다 하잖아요. 그런데도 설문조사에서 ‘청년으로서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 그런데 건강이라고 적은 답변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청년들의 건강문제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해서 들어가게 되었어요.(서민영)”
“‘동행하는 반딧불이’라고 산업단지에 있는 청년들의 퇴근길을 밝혀주는 반딧불 캠페인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친구들하고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2교대를 해야 겨우 먹고 살고, 2교대를 하니 집에서는 잠만 자고... 희망연봉이 1800만원이라는 말에 저희는 ‘뭐? 잘 못 들은거지?’... 그런 안타까움들을 친구들이 잘 흡수 했었던 것 같아요.(조은주)”

조례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했으니까

시흥 청년들의 주도로 1년에 걸쳐 진행된 <시흥시청년기본조례>제정활동은 조례 제정을 넘어서, 지역사회에서 ‘청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제조업 종사하시는 분들은 청년에 대해서 안 좋은 생각을 많이 가지고 계셨어요. 본인 사업장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안 하시고 청년을 탓하는 구조였지만 이 친구들을 보면서 놀라게 되었죠. 공무원 사회에서도 놀랐어요. ‘주민발의가 되겠어?’하는 분위기였는데 ‘아 청년들이 뭘 하면 잘 할 수 있구나. 이 친구들한텐 뭘 맡겨도 되겠다’하는 믿음이 형성되기도 했고요. 조례가 사실 크게 중요했던 것은 아니라서...(웃음) 조례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해가지고...(조은주)”
“사실 저희가 하면서 시흥 청년들을 만나고 싶고, 우리가 각자 관심 분야에 따라서 공익적으로 풀어보고 싶었던 사업이 몇 개 있었거든요. 서(書)개팅이라고 청년들끼리 모여서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청년들끼리 경기 뛸 수 있는 축구모임이나, ‘공원으로 간 청년’이라고 해서 공원을 청년이 리모델링하고 꾸며보는 활동도 해보고 싶었는데 저희 서명일정이 빡빡하다보니까... 그거 말고도 ‘알바를 알자’라고 해서 청년들이 시흥에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잖아요. 지역에 다니는 대학생이나 청년들이 우리도 잘 모르니까 교육을 받아서 알려주자 이런 프로젝트를 계획했는데 우연히 잘 진행돼서(2016년 주민참여예산으로 책정되었다) 올 한 해 사업으로 진행 하려고 하고요. 못했던 것은 다시 하면 좋겠고. 하나씩 하나씩.(서민영)”

시흥청년아티스트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대답은 ‘세포분열’이었다. 청년정책협의체의 구심점이 되어 또 다른 시흥 청년들이 협의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들과 함께 다양한 의제를 발굴해서 올리고, 잘 집행되는지 모니터링을 하는 등 시 행정의 동등한 파트너로 활약할 예정이다. 청년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도 외부에 연구 용역을 맡기기 보다는 청년들이 직접 ‘문제해결형 학습모임’을 만들어 진행한다. 이 모임에는 관련 부서, 부서장, 담당자, 필요하다면 시장도 함께 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실제 사례도 분석해보고 법률적인 부분을 검토하고, 행정적인 절차도 고려하여 실제 적용시켜보는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는게 플랫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청년들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시흥청년아티스트를 통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다양한 청년조직들도 도움이 필요한 것을 연결해주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원했던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서민영)”
시흥청년아티스트는 올해 각자의 관심분야에 따라 복지, 커뮤니티 개발, 디자인, 통계 등 다양한 갈래로 세포분열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들의 세포분열은 시흥의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할까? 시흥청년아티스트와 함께 성장해나갈 시흥의 내일이 기대된다.

 

 

 


글ㆍ사진 | 김이민경 기자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