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대란을 둘러싼 양비론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

 예전 군대 농담에 고약한 말년 병장이 신임병한테 PX 심부름을 시키는 내용이 있었다. 신임병에게 1,000원을 주면서 과자도 사고 라면도 사고 치킨도 사오고 500원 거슬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돈을 주고 심부름을 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이 이야기인데, 이와 상통하는 의미로 ‘업무와 예산은 같이 움직인다’는 모든 조직에서 통용되는 말이 있다.

예산을 배정하면서 업무를 주지 않는 경우는 없고, 반대로 업무는 주었는데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면 조직이 돌아가지 않는다. 특히, 정부조직은 엄격한 예산 제약하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예산과 업무가 대응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의 모든 계획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업무), 거기에 필요한 돈은 얼마이며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예산)의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업무분담이 바뀌는 경우에도 예산의 배분기준이 변경된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가 하던 업무를 지방정부로 이관하게 되면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하거나 국세 중 지방정부에 배부되는 비율을 상향조정 해왔는데, 이게 상식에 부합한 업무처리이다.

누리과정 도입시 제도의 정착단계에서 연간 4조원 소요된다고 추정해

중앙정부는 관계부처 합동계획 발표라는 형태로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만 3~5세 누리과정 도입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그 동안 유치원(지방교육청 담당)과 어린이집(보건복지부 담당)으로 나누어 있던 것을 누리과정으로 통합하여 지방교육청에 맡겼다. 이렇게 재정지원 체계를 하나로 통일하는 한편, 2012년에는 만 5세, 2013년에는 만 4~5세, 2014년에는 만 3~5세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에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아래 표와 같이 2015년 기준으로 약 4.5조원 정도의 금액이 필요하다고 예측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재원조달은 2014년까지는 국비 등으로 일부 지원하되 2015년 이후에는 지방교육청이 관리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육교부금")을 통해 해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앙정부는 거두어들인 내국세 중 일부(20.27%)와 교육세 전액을 교육교부금이라는 이름으로 지방교육청으로 교부한다. 즉, 이 돈은 지방교육청이 일을 잘한다고 늘어나는 돈도 아니고, 중앙정부가 증가시키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마음먹은 대로 늘어나는 돈도 아니다. 경제성장율이 높고 세수가 잘 걷히면 계획대로 늘어나지만, 경기가 안 좋으면 예상보다 덜 늘어나거나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는 금액이다.

업무배분은 바뀌었지만 배분 기준은 그대로

업무와 예산이 같이 움직인다는 상식에 근거하여,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누리과정 예산 부담이 늘었다면 교육교부금 교부율이 변동되었을까? 업무는 새로 생겼고 그 업무를 지방교육청에 맡겼으면, 예산 배분기준이 바뀌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교육교부금 교부율은 2010년 이후로 변동되지 않았다. 계속 20.27%이다. 교육교부금 배분기준이 되는 내국세 금액이 200조원 내외이니 2% 정도 변동시켜 주면 4조원이 확보될텐데, 그 교부율은 요지부동이었다.

교부율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2011년과 2012년 계획을 세울 때 세수증가율이 매우 높을 것으로 중앙정부가 예상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매년 향후 5년 단위로 걷어들일 돈과 쓸 돈을 계산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작성한다. 계획수립 시점인 20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2012~2016년 계획) 상 교육교부금의 추이는 아래와 같다. 즉, 교육교부금이 2014년 이후에는 교부율 변동 없이도 매년 약 4조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다 보니, 2011년과 2012년 합동부처 누리과정 도입계획에 정착 단계에서 4조 정도 소요되는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교부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던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1월 5일 담화에서 '4조원을 포함해서 교육교부금을 내려보냈다'라고 발표했다. 작년 12월에는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이 '2012년 이후 교부금을 단계적으로 확대 지원했다. 2016년에는 1조 8천억원이 증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당초 계획을 세울 때 예상했던 것처럼 교부율은 변동되지 않았지만 교부금액은 늘어나지 않았을까?

실제로 교부된 금액도 증가하지 않아

아래 표는 실제 교부금액과 20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상 교육교부금이다. 안타깝게도 실제 교부금액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전년대비 늘어났다는 2016년도 2013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매년 3~4조원이 발생하는 업무는 교육청에 맡겼는데 교육청에 내려 보내는 돈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엉터리 국가재정운용계획에 근거한 교육교부금 증가 추정

국가재정운용계획은 향후 5년간의 기간에 대한 추정을 한다. 예를 들어 201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현재 예산이 집행중인 2011년이 1년차로, 예산안을 작성중인 2012년이 2년차로, 2013부터 2015년이 3~5년차로 들어가 있다. 1년차는 작년에 편성한 당해연도 예산이고, 2년차는 현재 편성중인 내년 예산안이기 때문에 엉터리 숫자를 넣을 수가 없다. 그런데, 3년차부터 5년차까지는 검증이 어렵다. 2015년에 대한 예상치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번 등장하게 되는데,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3년차부터 5년차를 얼마나 잘 추정했는지 보기 위해 그 5번의 추정치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살펴보겠다.

 

 

2015년 교육교부금 추정치에 대해 2011년에는 49.4조원(5년차 예측)으로 예측한다. 다음해인 2012년에는 비슷한 수준인 49.1조원(4년차 예측)으로 예측한다. 그런데 그 숫자가 2013년에는 43.2조원으로, 2014년에는 39.5조원으로 뚝 떨어진다. 2015년 예측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의 예측치도 매년 예측할 때마다 뚝뚝 떨어지고 있다. 2011년, 2012년 계획을 세우면서 이러한 엉터리 국가재정운용계획에 근거해서 교육교부금으로 누리과정 소요예산이 충당 가능하다고 했던 것이다.
지금도 중앙정부는 2017년에는 44.3조원이(2016년 대비 3조원 증가) 배부될 테니 올해만 대충 넘기자고 하는데, 검증 안 되는 3년차 예측에서 검증이 되는 2년차 예측으로 바뀔 때, 약 4조원의 예상치 감소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암담한 이야기이다.
그러면 3년간 지방교육청은 살림을 어떻게 했을까? 빚을 내서 충당했다. 2012년말 2조 수준이던 지방교육청 채무(지방교육채 기준)가 2015년말에 10조로 5배 증가했다. 한편으로는 3년 동안 '이러면 큰일난다. 대책을 세워달라' 중앙정부에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빚을 내면서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채무비율이 한계에 도달했다. 법에서 정한 채무발행한도를 바꾸어 가면서 버티고 있는데, 이렇게 채무가 증가하다가는 그 이자도 감당을 하지 못해 교육청이 원래 해야 하는 교육사업에 쓸 돈도 부족한 상황이 곧 오게 될 예정이다.

규정을 바꾸었으니 내려보낸 셈이다?

그러면 최경환 부총리는 무슨 근거로 4조원을 내려 보냈다고 했을까? 실제로 주지 않으면서 주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마법이 있을까? 더구나,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주는 돈은 보조금과 교부금으로 구분되는데, 보조금은 항목을 지정해서 주는 돈이지만 교부금은 항목을 지정하지 않고 총액을 주는 돈인데도 말이다. 없을 것 같은데 중앙정부에서 만들어 냈다. 작년 10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지방교육청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의무지출 항목에 이 누리과정 예산을 포함시킨다. 총액을 보내주고 예산은 지방교육청이 알아서 편성하지만, 누리과정 예산은 꼭 포함해서 예산을 편성하라고 규정을 바꾼 것이다. 실제로 내려보낸 금액도 그대로지만, 관련 규정을 개정했으니 준 셈이다라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내려 보내는 돈은 그대로인데 규정을 바꿔서 돈을 주었다고 주장하고 그 말을 안 따르면 법적, 행정적, 재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겁박하는 중앙정부의 모습이 고약한 말년병장의 행태와 닮아 있지 않은지? 심부름을 시키든 일을 시키든 돈은 주고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방교육청의 반응은 자기 돈으로 심부름 값을 메우던 신임병이 도저히 버틸 방법이 없어 살려달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글ㅣ홍순탁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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