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끌려가던 13살 힘없는 소녀에서 여성인권과 평화운동의 희망이자 모범이 되고 계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명예와 정의를.”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졸속적 합의

작년 2월 28일 한일정부는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졸속적으로 합의했다. 일본정부는 범죄사실 인정과 국가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은 채 한국정부가 설립하는 피해자 재단에 10억엔을 기부하겠다고만 했다. 이 번 합의가 최종적이며 다시는 이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불가역적 합의라고 했다.

 지난 25년간 실제 피해당사자들과 시민단체가 힘겹게 싸우며 알려내고 요구한 ‘법적책임과 배상, 역사교육 실시 등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이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을 짓밟은 굴욕적인 합의였다.  한일외교장관 합의 후 곧바로 아베총리를 비롯해 고위층들이 “일본군‘위안부’ 동원에 강제 증거는 없다”며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일본정부가 진정한 반성없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위한 눈가림용 합의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정부는 변변한 대응도 없이 피해자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서둘러 재단만 만들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분들과 시민단체는<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을 발족하고 공동대응을 하고 있다.
그 활동으로
재협상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
10억엔 위로금 대신 피해자분들과 국민의 힘으로 [일본군‘위안부’ 정의와 기억 재단] 설립을 위해 모금전개
전국 동시 다발 수요시위 전개
평화비(평화의 소녀상) 지키기, 평화비 추가 건립 등을 펼치고 있다.
 

 부천시에 설치된 기림비(소녀상)에 대한 아쉬움

부천시에서도 2월 3일 안중근 공원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비(소녀상)를 세우고 제막식을 하였다.
부천시 여성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기림비 건립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기금을 모았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림비 건립에 동참하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제막식에 참석하여 건립된 소녀상을 보면서 잘못된 용어 새김과 아쉬운 점이 있어 바로잡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쓴다.
 
먼저 기림비가 잘못된 용어로 표기되어 있어 바로 잡기를 바란다.
어떤 용어든 그 속엔 의미와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알고 써야한다. 특히 역사용어는 그렇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는 1993년 2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논의한 명칭이며 현재 일본군 성노예라는 용어와 함께 쓰고 있다. 국제기구에서는 일본군 성노예라고 표기한다.
따라서 공식용어는 위안부에 ‘ ’(작은 따옴표)를 넣어 일본군‘위안부’라고 표기해야 한다.
 
그런데 기림비설립추진위원회에서 제작한 동상 설명글에는 위안부에 ‘ ’(작은 따옴표)가 없이 그냥 일본군 위안부라고 쓰여 있으며 추진위원회 명칭도 위안부에 ‘ ’가 없다.
위안부란 용어는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쓰여졌고, 당시 강제로 끌려가 강압에 의해 성노예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이유는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가담해서 만든 것으로써 범죄의 사실이 잘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며 ‘ ’ (작은 따옴표)를 넣어 역사적 용어로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범죄의 주체자인 일본군과 역사적 용어인 ‘ ’를 넣어 일본군‘위안부’라고 쓴다.
기림비설립추진위원회가 공공 장소에다 역사적인 의미와 뜻을 담아 세운 기림비인 만큼 정확한 용어로 새겨놓길 바란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군‘위안부’ 기림비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기림비 설명문에도 ‘슬픈 과거이긴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역사! ’ 라고 쓰여 있고,
동상도 머리를 곱게 딴 소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며 앞서가고 있는 소녀들을 바라보는 뒷모습으로만 표현하고 있다.
 
현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분들은 결코 일제 강점기의 피해소녀로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92년부터 지금까지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24년 간 참여하며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국내외에 알리고 계신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후손들에게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위해서 시위에 참여하다고 말씀하신다.
일본의 검은 로비에 맞서서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되는데 살이있는 역사교과서 역할을 하셨다.
또한 전시 하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고통받는 아동과 여성들에게 자립기반이 되도록 나비기금을 만들어 전달해 주고 계신다.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베트남으로 전달되었고 앞으로 더 많은 피해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평화의 날개짓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현재 전국적으로 평화나비들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피해자 할머니들은 더 이상 13살 어린나이에 끌려가던 나약한 소녀가 아니라 여성인권과 평화 운동의 모범이 되고 희망이 되어주고 계신다.
따라서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과거의 역사로만 생각지 말고, 과거사 청산을 위해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로 활동하시는 현재적 의미로서의 가치를 더 부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군의 ‘위안부’였다고 신고하신 할머님들 중 이제 46명 밖에 생존해 계시지 않는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동참이 필요할 것이다.
여하튼 민간차원에서 일본군‘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으니 부천시에서도 잘 관리하고 피해자분들의 뜻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역사교육과 여성인권교육 실시 등 제반의 후속활동 마련를 기대해 본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한일 일본군‘위안부’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in 부천] 두 번째 부천시민행동
일시: 2016년 2월 17일(수) 정오
장소: 부천역 남부광장
문의: 부천시민연대회의(사무국 032 325 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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