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 한도훈 조합원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 한도훈 조합원

    콩나물신문사 편집위원장인 한도훈 선생님(55세) 은 부천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 나도 한도훈 선생님을 안 지 2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언제나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다니던 모습만 떠오른다. 부천 향토사와 부천 지명에 해박해서 역사 전공자로 생각했으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니 신기하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동아출판사 국어교과서 (이삼형 저)에 글이 실릴 만큼 필력도 뛰어난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한도훈 선생님을 잘(?) 모른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내 글이 실렸는지 몰랐어요. 저작권 협회에서 연락이 오고, 온북 TV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인터뷰를 요청해오면서 알았어요. 교과서 인세는 1년 뒤에나 준다고 해요. 물론 기분이 좋죠.”

    교과서에 글이 실린다는 것은 김소월, 이광수, 피천득과 같은 유명한 문인들 몫인 줄 알았는데, 내 이웃에 그런 교과서 필자가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더구나 소설가 황순원의 <소나기> 뒤편에 이어 글이 배열되었다니, 말하자면 수준이 황순원급이라는 거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와 아들 이카로스 이야기에요. 다이달로스 는 미노스왕의 명으로 크레타섬에 미궁을 만들어요. 원래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려고 만든 겁니다.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올수 없는 곳이죠. 그런데 나중에 왕이 그 미궁에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가두죠.

    다이달로스가 그 미궁에서 탈출 하려고 날개를 만들어 어깨에 달고 절벽에서 뛰어내립니다. 그렇게 탈출에 성공했는데 아들 이카로스가 아버지 부탁을 잊고 태양 가까이 날다가 뜨거운 햇볕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으면서 이카로스가 바다에 떨어져 죽죠.”

    “이게 신화의 큰 뼈대입니다. 그런 과정에 상상력을 보태 소설로 창작하였구요. 다이달로스는 미궁을 탈출하여 자유를 찾는 이유였던 그 아들이 죽으면서 날개를 스스로 떼어버린다든지, 나중에 미노스 왕을 죽여 아들의 복수를 한다든지 식으로 스토리를 만들었죠. 원래는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우리나라 팔도 사투리를 쓰는 식으로 구상했어요. 하하하.”

    기발하다. 아주 재미있다. 1994년이면 대부분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도 없던 시절인데 그렇게 쓴 소설 “벌거벗은 신들의 세상 1, 2 (한산 지음)”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 이후 그리스로마 신화 출판 붐에 불을 지폈으니 대단했다. 사투리 버전이었으면 그리스로마 신들을 우리나라 신으로 만들면서 더 많이 팔렸을지도 모른다. 후후후.

    젊을 때는 일이 무섭지 않았어요

    “20대 후반이던 1989년 후반엔가 부천에 왔어요. 도당동에 공간을 얻어 ‘일사랑터’라는 단체를 만들고 주로 노조 활동을 지원했죠. 도서관 및 회의실이 있어 이런저런 강좌를 열었어요. 노조 결성도 돕고 거기서 노조 결성식도 많이 했어요. 나중에 사설 도서관 ‘책사랑’ 도서관을 열어 운영하고요.

    그러다 1991년쯤 부천시민신문이 창간되면서 기자로 채용되었어요. 부천에 숨은 일꾼을 찾아서 인터뷰하는 게 주로 하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부천실업고등학교 선생님을 취재한 것이 인연이 되어, 몰래몰래 그 학교 야간 국어교사로 1주일에 두 번씩 강의했죠. 나중에 신문사에서 그걸 알게 되어 신문사를 그만 두고, 아예 부천실고 교사로 들어갔어요. 말하자면 시민신문 기자로 1년쯤 일한 거네요. 내가 운동을 해서인지 원칙론자였고 꼬장꼬장했다고나 할까, 신문사에서 불편해 했을 겁니다.”

    “그때 김야천 화가도 봉사자로 부천실업고에서 미술을 가르쳤어요. 내가 야천 선생님 학원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지요. 하하하. 그러다가 지인 소개로 부천 어느 초등학교 여교사와 만나면서 1998년에 결혼하고 부천실업고를 그만 두었어요. 글만 쓰면서 먹고 살고 싶었는데, 아내가 동의해주었지요. 물론 지금은 엄청나게 후회합니다만. 하하하.”

    흐흐흐. 아내가 전교조 교사로 초등학교 풍물팀을 지도하였다니 알만하다. 충분히 이상적일 만큼 사고방식이 반듯했을 거고, 젊은 남편의 능력을 믿었을 테고, 이미 <소설 그리스로마 신화>로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이니 글로 먹고 살 수 있으리라고 믿었을 거다. 푸하하. 20년 전인데 신랑이나, 신부나 만만치 않았다.

    부천 중앙공원에서 결혼한 그때 그 사람

    “1998년 10월 결혼식도 아주 재미있었어요. 중앙공원 분수대 옆 동그란 소운동장에서 한 시간이 넘게 전통 혼례로 치렀는데요. 저도 가마를 탔어요. 부천 시민이 하객이었고요. 하객들 밥을 부천시청 식당을 이용하여 제공하였지요. 부천시민 500명 정도가 밥을 먹은 것 같아요. 아내가 가르친 초등학교 풍물팀이 공연을 했어요. 판소리 선생님도 오셨구요. 전문 풍물팀도 있었지요. 아~ 가야금 병창도 했어요. 저도 시 한 편을 써서 서약서처럼 낭송했어요. 돌이켜보면 그 이후 중앙공원에서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일종의 전통축제로 결혼식을 치렀어요.”

    “부천실업고 교사를 그만 두고. 부천문화원에서 시창작 강좌를 열어 10년 가까이 강의했어요. 그때 부천 향토사와 땅이름에 관심을 두고 사진기를 구입하여 노인들을 만나고 지명을 조사하고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요. 글로 먹고산다고 했으니 서울 구로에 지인과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 거기서 주로 집필해서 책을 많이 냈어요.

    그런데 첫 책만큼 잘 팔린 것은 없었어요. 아마 부천 사람이 나를 잘 모르는 것은 내가 나를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탓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젊을 때는 꼬장꼬장한 탓에 사람들이 불편했을 테고요. 더구나 혼자 하는 일이 많았지요.”

    작년에 콩나물신문 기사가 문제가 되어 수원 경기도 언론중재위에 동행한 적이 있다. 부천시 정부가 신문 기사를 걸어 정정보도를 요청하였다. 그때 부천시가 확실히 규명한 1건을 빼고, 10건 가까운 내용에 언론중재위는 완벽하게 콩나물신문사 손을 들어주었다. 그 1건도 부천시가 자료 제공을 거부하여 확인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오히려 그때 그 사건 때문에 콩나물신문은 성가를 높이고, 독자에게 신뢰를 구축하였다. 취재원 대화를 녹음하고 팩트를 확인하는 것이 몸에 밴 한도훈 선생님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이라는 것을 의아해 하며, 어떤 사람은 부천시민신문 경력을 스펙 전부로 본다.

    “아니에요. 2006년인가 고양 어느 신문사에서 일했고, 2007년에는 서울 어느 경제신문에서도 일했어요. 그러다가 2008년에 지인과 인천에서 미추홀신문을 창간하여 주간 종이신문을 찍고, 월간 잡지도 발행했어요. 기사를 혼자 쓰다시피 했지요. 하루에도 몇 꼭지를 써야 했어요. 그뿐 아니라 인천문화 길라 잡이, 부천 장말 도당굿을 해설한 책도 내고, 다양한 단행본을 꾸준히 냈죠. 지금까지 소설을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에서 책을 20권은 낸 것 같아요.

    그러다가 신문사에서 과로에 지쳐 쓰러지면서,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의욕이 푹 꺾여버렸죠. 2011년에 그만 두었어요. 그때 이후 몇 년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충전했고, 틈틈이 시와 소설을 쓰고 취재를 핑계로 지역 축제에 다니며 전국을 여행했어요. 하하하. 네. 맞아요. 아내가 아직도 교사로 근무하니 그게 가능하였죠. 마누라를 잘 만난 덕분이에요. 이거 아내에게는 비밀입니다.”

    작년 언론중재위 제소가 말끔히 해소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콩나물신문은 기인을 만났다. 특히나 조직이 흔들리고 협동조합 시스템 구축에 방향을 모르던 시절에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신기하다. 이건 운명이다. 제 논에 물대는 식으로 해석하자면 국화꽃이 피려고 소쩍새가 울 듯이, 콩나물신문이 비약하려고 자유스러운 영혼 한도훈 선생님이 수많은 경험을 쌓고 제 발로 콩나물신문에 입성하였다. 아니면 말고. 흐흐흐.

 

                                                                          글·사진 | 한효석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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