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나마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묻.지.마. 대출에 감사합니다

 

올 3, 4월은 유난히 경조사가 겹쳐서 힘들다고 푸념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고1 재학 중인 아들이 수련회비, 교복대금 안내장을 임박하게 가져와 정말 난감해 하던 찰나였습니다.

언젠가는 필요할 수 있겠다 싶어 잘 보관해둔 콩나물 신문(2015년12월10 제40호 더불어사는사람들 기사보도)이 이렇게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 말입니다.

만원 한장 빌리기 미안한 세상에 무이자, 무담보, 무보증으로 빌려주는 대출이 있다기에 급한 마음에 전화상담을 했습니다. 상담에 통과하고 대출금이 입금되기까지 속는 게 아닐까 대출이 성사 않될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아들 수련회비 납부 마지막 날 ‘착한대출’은 나에게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기쁨의 도가니였습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금융감독원에 전화확인 하려고 했던 점이랑 주민등록초본-주민번호 뒷자리 지우고 보내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친절하게 팩스비 절감하라고 알려주었던 모든 것이 지혜로운 말씀 이였는데, 진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더불어 사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훈훈한 마음에 깊은 감동 받아 더 열심히 건강 지키며 이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훈훈한 이야기를 실어준 콩나물신문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조금이나마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콩나물신문 제40호 1면 기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 빌려주는 무이자 대출!

   (사)더불어 사는 사람들

 세상에 별난 대출도 다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보증, 무담보로 대출을 해준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돈을 빌려주는데 이자가 한푼도 없다. 돈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무이자로 선뜻 건네주어 한목숨 살려내는 것이다.

(사)더불어 사는 사람들. 주인공이 이들이다. 주인공을 만나지 않고 어떻게 믿을 수 있으랴.

상임이사 이창호씨와 대출을 받으러 온 부천의 모씨(신원보호를 위해 모씨로 지칭함)를 콩나물신문사에서 만났다. 모씨의 간단한 서류 작성을 도와주며 이창호는 상임이사는 싱글벙글이다. 돈을 빌려주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으니 모씨의 운명이 가혹하기만 하다. 모씨는 강원도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젊고 의지도 강해 모아놓은 돈도 상당했다. 그런데 아이의 돌잔치가 끝난 뒤 돌연 아이엄마가 사망을 해버렸다. 함께 자다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아이 엄마를 죽였다며 경찰서에 잡혀가 모진 고초를 다 겪었다. 당시에는 경찰들의 막무가내 몽둥이찜질은 예사였다. 밀실로 끌려가 두들겨 맞기를 수없이 했다. 그러던 것이 당시 장모님이 ‘사위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며 적극 변호했고, 부검결과 심장마비로 밝혀지자 그때서야 놓여났다.

모씨의 인생고난이 시작됐다. 돈은 있었지만 집사람이 죽고 나자 함께 죽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를 곁에 두고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돈이 떨어지자 아이를 위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부천으로 와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조건으로 청소업체에 입사했다. 그렇게 18년을 살았다. 하지만 몸이 자주 아프고 힘들어서 청소업체에서 그만 두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그만두니 취직을 할 데가 마땅찮았다. 간신히 막노동을 하면서 버텼지만 생활비가 쪼들렸다. 몸이 아파 병원도 가지 못하고 먹을거리조차 떨어졌을 때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SOS쳤다. 주변에 병원비조차 꿀 때가 없었다. 인생 헛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냉혹했다. 그때 모씨의 손길을 잡아준 것이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었다. 선뜻 30만원을 빌려줬다. 그걸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먹을거리도 사고해서 일어설 수 있었다.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해 매달 꼬박꼬박 갚아 나갔다. 다 갚아서 이제 돈을 빌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딸의 대학등록금이 걱정되었다. 청소업체로 데리고 다니던 딸이 어느새 고3이 되어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을 하게 된 것이다.

아니다다를까 대학등록금이 당장의 현실문제로 다가왔다. 여러 은행을 돌아가며 대출을 문의했지만 단칼에 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또다시 더불어사는 사람들에게 대출신청을 했다. 이번에도 흔쾌히 대출 허락을 해주었다. 그런데 대출 방침상 50만원밖에 대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위에 아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겨우 50만원 빌려 놓았다. 그렇지만 아직 100여만원이 부족하다.

등록금으로 부족한 금액은 이번에 취직한 슈퍼 사장에게 부탁을 해볼 작정이다. 슈퍼 사장님이 안 된다고 하면 또 난감한 지경에 빠진다. 그렇게 등록금 납입 기간이 점점 다가와 피가 바싹바싹 말라간다.

“아이가 학자금 대출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아이가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는 걸 너무나 원해서 몸이 부셔져서라도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50만원이지만 대출을 받으니 날아갈 것 같습니다. 아이의 희망을 살려주는 것 같고, 아비 노릇도 조금은 하는 것도 같고,,,아이가 대학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꼭 학비는 벌고, 대출금도 갚고, 아빠에게 용돈도 줄 것이라고 말하니 이제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창호 상임이사는 후원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돈을 정말로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서민들에게 대출을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후원자들이 내주는 단돈 천원이라도 감사히 받는다고 했다. 어떤 분은 선뜻 일천만원을 후원해 주기도 했다. 현재 1억원이 넘는 자산을 확보해 소액이지만 조금씩 서민들에게 따뜻한 대출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대출을 해주는데 한가지 조건이 있다.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간제 일을 하든 조금씩 갚아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1년 안에 갚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창호 상임이사는 “우리 주변에 신용불량을 당한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대출난민이 1200만명을 넘는다고 하지요. 우리나라 1가구당 1명이 신용불량자란 얘기에요. 저희들은 일은 하고 있지만 신용불량으로 금융거래가 불가능한 분들에게 자활의 의미로 소액이지만 대출을 해주고 있지요. 한번 빌린 뒤 70% 정도 갚은 뒤에 또 빌려 달라하면 빌려줍니다. 믿음과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대출금을 갚지 않고 전화번호도 끊고 잠적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도덕적인 문제이지요. 저희 대출금을 떼먹고 다른 곳에 가선들 어디서 돈을 빌리겠습니까? 악순환이 반복될 따름이지요.”라고 말했다.

이어 이창호 상임이사는 “저희가 대출해주는 분들의 생활도 보살피는 연결책 역할도 자임합니다. 몸이 몹시 아픈 어머니에게 MRI 한번 찍어 병명을 알아봤으면 하는 고객이 있었어요. 곧바로 무료로 MRI 찍어주는 의사선생님을 연결해서 무료로 진찰까지 마치고 건강을 회복시켜 드린 적도 있습니다. 의료보험 비급여인 틀니를 하고 싶은 분에게 무료 치과를 연계해 드린 적도 있지요. 안성두레생협과 결연을 맺어 대출자들에게 농산물이 듬뿍 든 선물을 전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서 기름보일러에 기름을 넣지 못하는 분에게는 기름도 넣어드렸지요. 이렇게 수많은 도우미들을 연결해서 자활의지를 더욱 북돋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저희들이 하고 있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끝으로 이창호 상임이사는 자신에게 부천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70년대 역곡에 있던 농사시험장에서 일을 했고, 소새에 있던 한미농원에서 일을 했다고 했다. 지금도 한미농원에서 일하던 때의 옛사진, 팜플렛, 앨범 등을 간직하며 부천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고 살고 있다.

**후원계좌 농협 351-0466-90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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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1005-281-007080

**모씨 후원계좌 신협 131-015-400890

**대출안내 : 홈페이지 http://mf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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