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톱깎기

글. 김경순
 
앞산에 진달래 눈이 부시고
우물가 살구나무 백설이 되면
이랴앗 이랴앗!
앞 논빼미에서 소 모는 소리
아버지 못자리 다듬는 소리
 
한낮에 매미 소리 온동네 흔들고
훈훈한 여름밤 별똥별 셀 때
위-잉 위-잉
동력기 돌아가는 소리
아버지 벼논에 약치는 소리
 
온 산이 주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들판에 황금물결 넘실거릴 때
서어걱 서어걱
풍년을 거두는 소리
아버지 땀 줍는 소리
 
풍성했던 들판은 텅 비어 있고
잿물에 담긴 아랫목의 감
맛이 들어 갈 때
쓰윽삭 쓰으삭
툇마루에서 낫 가는 소리
아버지 손톱깎기 다듬는 소리
 
칠십 평생 논밭에 묻혀 사신 그분
손마디와 손바닥은 소나무 껍질 같고
손톱은 해마다 두꺼워져서
아버지 손톱깎기는 낫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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