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4시, 그닥 복잡하지 않은 지하철 6호선. 갑자기 어떤 여성의 짜증섞인 통화소리가 울려퍼진다.
 "아니. 아니라니까! 은행에 전화해서... 주민등록번호 대면 돼. 아니 참..."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난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지만 다 들린다. 앞에 앉은 할머니가 혼잣말로 불평을한다. 짜증내는 통화는 계속된다.
불안하다. 사람들이 곧 폭발할 것같다. 이제 그 여성에 대한 나의 짜증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짜증에 더 민감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한 40줄 되보이는 남성이 책읽다 한소리한다. 마찬가지로 40줄 되보이는 전화녀는 되려 소리친다. "아 나도 지금 짜증나 죽겠는데 왜 그래요? 노인네가 귀가 어두워 잘 못듣는데 어떡하라구". 건너편에 앉은 40줄 되보이는 남성이 거든다. "아 내려서 하라구요!" 여기저기서 다 조금씩 거든다. 실랑이는 계속되고 두 남성의 비교적 엄격하지만 차분한 불평은 계속된다....

주위를 의식한 전화녀가 짜증내며 내렸다.
안도감이 아닌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그 남성들이 화를 낼 때, 실랑이가 이어질 때, 왜 난, 혹은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그 여성에게 다가가서 웃으며 말하지 못했을까? "에구, 곤란한 일 생기신 것 같은데 어떡하나. 그래도 사람들이 불편해하니 내려서 통화하면 어떨까요?"

우리는 예의를 정의감으로 여기며 무기로 삼는다. 그러면서 사실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심판한다. 가난해 보였던 그 여성, 일은 바쁜데 귀어두운 어머니가 카드를 분실하신것 같았고, 그래서 신고며 처리하는 방법을 일러주는데 어머니가 영~ 말귀도 못알아먹고 잘 듣지도 못하시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짜증나는 시츄에이션인가!
사람들은 그 짜증을 공유하기 싫은거다. 그러면 지하철에서 큰소리 내지 말라는 그 화난 큰 소리는 과연 정당한지 묻고싶다. 왜 낮은 소리로 조용히 친절하게 요청하지 못할까? 남이라도 왜 다정하게 말하지 못할까?

모두가 모두를 힘들게 여기고 불편해한다. 사람이 사람을 보기 싫어한다. 몸에 닿는 것도 싫고, 쳐다보는 것도 싫고, 말섞기는 더욱 싫어한다. 삶이, 공간이, 사회가 사람들이 서로 싫어하게 만들고 있다. 동정없고 연민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다정한 말걸기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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