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장관에 보내는 공개서한

제가 18대 국회 후반기부터 국회 외교통일위원으로 활동했으니 꼬박 6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외교통일위원으로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안타깝게도 뿌듯함보다는 답답함과 절망스러웠던 기억이 큽니다.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대북정책인 만큼 지속성을 갖고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얻어나가야 함에도, 오히려 우리 사회 일각의 경직된 이념에 근거하여 성급하게 냉온탕을 오가는 모습이 서글펐습니다. 여야 국회의원이 입을 모아 정부정책의 변화를 촉구해도 대북정책에서 국회의 제언과 견제가 스며들 공간은 부족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북한, 국제사회의 기대와 요구마저 무시하는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정부당국의 어려움을 이해 못하는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우리 정부는 북한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대북정책의 방향과 전략을 확고히 해서 북한을 대화의 틀로 이끌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주로 취해 온 방식은 법적 근거조차 모호한 5.24 조치를 무작정 유지하면서 입으로만 남북 간 ‘신뢰’와 ‘통일 대박’을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북한을 제대로 아프게 하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감정만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국 대북정책은 대범한 전략도, 전술적 실천도 없는 제재와 압박 일변도로 전락했으며, 마지막 남은 남북 간 통로인 개성공단마저 폐쇄시키는 악수를 두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로 개성공단 폐쇄 100일을 맞았습니다. 매일 작은 통일이 이뤄졌던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 한순간의 결정으로 천덕꾸러기가 됐습니다. 외교통일위원으로서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통일부 장관께 마지막 당부를 드립니다. 

그동안 역대정부에서 실시해온 대북정책의 2가지 전제는 모두 한계를 노출했습니다. 하나는 ‘경제협력과 교류가 북한을 변화로 이끌 것’이라는 전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협력 대신에 경제제재・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이는 다음의 두 가지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정책과 무관하게 북한은 변화하지도, 핵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경제협력과 교류는 계속 이어가고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별개의 수단으로서 정치・외교적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통일부 장관으로서 어떤 정책을 펼치시겠습니까? 북한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비관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참입니까? 아니면 북방경제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북핵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외교력과 정치력의 공간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까? 

정치 공세를 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개성공단 재개하라, 북한과 대화 재개하라, 대북정책 전환하라’고 당연하고도 공허한 주장만을 펼쳤겠지만, 저는 장관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최소한의 조치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이 공단 내 자산을 몰수 하겠다고 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북한이 개성공단 설비와 원자재들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북한이 남한에 보내는 미약한 시그널입니다. 당장 개성공단 전면 재가동은 어렵더라도, 정부의 한마디에 몸만 겨우 빠져나와 지난 100일간 1조 5천억원 규모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기업인들이 시설점검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길 바랍니다. 장관의 소신 있는 작은 결정 하나가 남북 간 경색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20대 총선 결과 국민께서는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새로운 정치를 하라는 의미일 겁니다. 물론 그 안에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어가라는 요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회 남북관계발전위원장으로서, 외교통일위원으로서의 활동은 끝났지만 합의에 기반 한, 100년을 지속할 대북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20대 국회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지속하겠습니다. 

제 자리, 제 역할을 찾는 통일부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2016. 5. 20

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국회의원 원혜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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