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할미꽃
벼랑에 붙은 바람만 먹었다
붉은 얼굴을 버리고서야 목이 자랐지만
발목은 돌 속을 걸어가
봄의 뿌리에 닿았다

 

단아야, 아빠다. 밥은 먹었나? 미안하다. 바람만 먹고 자란 꽃이 저토록 예뻐지 않냐고 그런 자발없는 말은 하기 싫구나. 꽃이 지고서야 꽃대가 자라고 뿌리가 튼튼해지는 동강할미꽃처럼, 화사한 밖을 버리고서야 안이 강해진다고도 말하기 싫구나. 우리가 지금은 콘크리트 같은 어둠 속을 힘들게 걸어가고 있지만 꼭 배고프지 않은 봄의 뿌리에 닿자고, 그러자고 말하고 싶구나. 아빠한테 날아오는 카드 내역을 보면 1500원 짜리 봉구스밥버거만 사먹더구나. 그러지 말고 더러 2300원 짜리 김치떡갈비밥버거도 사먹어라. 또 미안하다. 너 보고 싶어서 그림 그렸다. 아프지 말고 견뎌내고, 살아서 부귀영화를 노리자. 새벽이 되었구나. 아빠 이제 좀 자도 될 거 같다. 잘게. 너도 잘 자. 


김주대 시인은?
시를 팔아야 먹고 산다는 괴짜 시인. 자칭 시팔놈. 시집  '그리움의 넓이', '도화동 사십계단', '꽃이 너를 지운다', '그대가 정말 이별을 원한다면 이토록 오래 수화기를 붙들고 울 리가 없다', 나쁜 사랑을 하다'를 펴냈다.


<이 작품은 김주대 시인 창작품이므로, 다른 용도로 쓰시려면 반드시 작가와 상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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