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호모 루덴스!!

 

‘숲’은 ‘놀이’여야 합니다

 

 

지난 호에는 숲을 즐기는 방법으로 무계획적이고 심심하게 숲에 가면 어떨지 권유해 드렸습니다. 무계획적이면 좀 더 쉽게 숲에 갈 수 있고 여유가 생기며 심심하면 수동적이기 보다 능동적으로 숲을 즐길 수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번호에는 지난 호에 이어 숲을 ‘어떻게’ 즐기면 좋은지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숲은 ‘학습’ 공간일까요?

우선 부모님들께 여쭙고 싶습니다. “숲에서 아이들과 공부하러 가고 싶으세요?” 아니면 “그냥 놀러 가고 싶으세요?” 모두가 그러시진 않겠지만 보통은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한다면 공부보다 놀기를 원하시겠지요.

그런데 아이만 보내는 숲은 공부나 학습에 목적을 둔 체험을 주로 보내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마도 놀이와 공부의 비중은 목적에 따라서는 건강이 목적이면 놀이로 교육이 목적이면 공부로, 나이에 따라서는 나이가 어리면 놀이로 초등학교를 진학했거나 3학년 이상이면 공부로 관심의 비중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체험을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숲은 어떤 곳이어야 할까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어릴수록 공부와 놀이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 차이를 아이가 발견하는 것은 공부, 학습, 숙제 등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틀로 인식하기 시작할 때 부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놀이로 건강하게 학습하고 성장하고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은 호모 루덴스!!

네덜란스 문화사학자 하위징아가 1938년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놀이가 문화의 상위 개념이라는 이야기로 인간의 문화는 놀이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호모 루덴스의 특징 몇 가지를 살펴보면 자발적, 집단의 안녕과 복지에 대한 봉사, 놀이 자체가 목적, 열광, 환상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적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호모 루덴스는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사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하위징아의 이야기가 모두 맞을 수는 없겠지만 놀이가 우리의 삶과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현재 우리는 고도화된 산업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놀이와는 상관없는 성장, 경쟁, 생산, 소비 등의 경제적 용어들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몇 해 전부터 시작된 인문학 열기는 우리 사회 곳곳에 창조와 창의, 상상력, 협동에 목말라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러한 사회흐름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과 이익만을 강조하는 곳보다는 아이들에게 ‘놀이하는 삶’을 선물할 수 있는 장소로 ‘숲’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미 호모 루덴스인 아이들이 규격화된 사회에서 벗어나 마음껏 상상하고 뛰어놀 수 있는 곳. 그곳이 숲이 아닐까요?

 

숲에서는 ‘지식’보다 ‘느낌’이 우선

숲에서는 ‘지식’보단 ‘느낌’이 우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귓가의 바람 소리와 흙의 감촉과 풀의 쓴맛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날씨와 색의 변화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내리는 이슬에 젖은 나뭇잎과 저녁에 해지는 석양의 구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땅바닥에 줄지어 가는 개미의 질서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며 지저귀는 새들의 자유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숲에서는 ‘공부’가 아닌 ‘놀이’로 성장하는 아이들이기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숲에서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길 바라봅니다.

 

 

 

관련기사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