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대기를 정리한 ‘펄벅의 살아있는 희망’ 단행본 출간

깊은구지에서 고아, 혼혈아들을 위한

소사희망원을 연 펄벅 선생

그 일대기를 정리한 ‘펄벅의 살아있는 희망’ 단행본 출간

‘박성표, 김우균, 이창호, 서종건 작가 인터뷰

2016년 지역예술활동 지원사업인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 문학 분야로 박성표, 김우균, 이창호, 서종건 작가가 선정되어 ‘펄벅의 살아있는 희망’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이를 기념하는 인터뷰를 박성표 작가를 중심으로 콩나물신문사에서 진행했다.(편집자 주)

 

Q 부천이 고향인지...

A 부천남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주중학교, 부천고를 졸업했습니다. 부천이 고향이 맞습니다. 처음엔 깊은구지(심곡) 극동아파트에서 살았고, 부천고 뒤에 있는 현대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부천하고 연고가 깊습니다.

Q 펄벅 선생하고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A 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2년 전에 고향에 돌아와서 우연히 제가 살았던 곳을 산책하게 되었습니다. 극동아파트 뒤편에 펄벅기념관이 있더군요. 그래서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펄벅 선생이 깊은구지에서 ‘소사희망원’을 열고 3년 기간 동안 생활을 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펄벅 선생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자료들을 찾아보고 소설책도 읽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부천 친구들하고 소설읽기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펄벅 소설을 읽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서 흔쾌히 수락을 받았습니다. 펄벅 소설읽기에 푹 빠졌지요.

 

Q 펄벅 선생의 일대기를 간단하게 조명한다면?

A 펄벅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선교사여서 3-4개월만에 중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중국 친구들과 비교해서 피부가 다르다느니, 말이 다르다느니 하면서 따돌림을 당했지요.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이때에도 중국식 차림이 촌스럽다고 미국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이래저래 따돌림을 당하고 보니까 ‘나는 어디에 속한 존재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뒤 선교사를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첫째 딸을 정신지체 장애인을 낳게 되었어요. 펄벅 선생은 그때부터 정신적 상처를 깊게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딸을 보유원에 맡겨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어서 책임감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장 보육료를 마련해야 해서 돈이 필요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Q 대지가 펄벅 선생의 첫작품인가요?

A 아닙니다. 동풍서풍이라는 작품을 먼저 냈습니다. 그 뒤에 대지를 썼지요. 대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3부작까지 연달아서 집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지라는 작품으로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지요.

대지라는 작품은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경험한 생생한 체험을 녹여서 쓴 것 같습니다.

 

Q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는데...

A 지금처럼 큰 조망을 받고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야 유명세를 탔지만 중국에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정세가 극도로 정치적 혼란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길 가다가 맞아죽을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펄벅 선생에게 목숨이 위험한 상황까지 몰린 30대 후반에서 중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별다른 평가가 없어 조용했습니다.

비평가들도 펄벅 선생님 작품에 대해 그다지 깊이 있는 해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채로운 스토릴텔링으로 이어진 소설들이어서 주목을 받지 못한 거지요.

Q 한국, 깊은구지에 오게 된 계기는?

A 이런 저런 상황 속에서 사회복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중후반에 깊은구지 소사희망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요. 펄벅 선생이 개인적으로 유한양행 창업주하고 인연이 닿아 땅을 기부받게 되어 새로운 삶을 열어젖힌 겁니다.

사실 펄벅 선생은 소사희망원에 붙박이로 상근을 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나 다른 곳으로 왔다갔다 근무를 했지요. 원장으로 행정적 업무까지 총괄하는 총책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의 자료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시기이고 우리나라 사회복지 역사에 있어서도 소중한 자료인데 안타깝습니다.

Q 소사희망원이란?

A 당시 부평에 미군부대가 있었지요. 부천에도 오정하고 오쇠리에 미군부대가 주둔했습니다. 미군들하고 한국 여인들 사이에서 난 혼혈아가 많았습니다. 전쟁고아도 많았구요. 이런 친구들을 보살피고 삶을 책임져줄 기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소사희망원이 한 겁니다.

사실, 당시 자료들이라곤 미용이나 목공 교육을 했다는 것하고 비용을 ‘어디 어디에 썼다’ 정도만 나와 있습니다. 나머지는 베일에 싸여 있지요. 당시 주무 기관 자체가 분산되어 있어서 자료를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앞으로 연구과제가 될 것입니다.

 

Q ‘펄벅의 살아 있는 희망’ 책 내용을 소개하면?

A 펄벅의 삶과 문학, 대지, 살아있는 갈대, 한국과 펄벅의 사회산업에 대한 글 모음입니다. 펄벅의 삶과 문학은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자신의 경험이 충분하게 녹아있는 문학을 했다는 것입니다.

소설 여기저기에 장애인들이 등장하는데, 자신의 딸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일 수도 있고, 당시에 사회사업을 하기 전에 이런 문제들을 절실하게 느껴서 썼을 겁니다.

자신의 남편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등도 소설 속에 진솔하게 녹아있습니다.

대지는 삼대가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염상섭의 삼대라는 소설과 비교해서 연구했습니다. 서로 비슷한 점을 모으고 다른 점들도 비교 분석했습니다.

대지 소설 속에 녹아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중국공산당과 장개석 등과의 관계,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이야기 등등입니다.

대지의 주인공 왕이가 결혼을 하기 위해 신부를 데리러 가는 장면이 첫장면인데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부집에 가서 데리고 올 때까지 치밀하게 묘사가 되어 있지요. 부잣집 마님이 소작인을 대하는 태도 등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많습니다.

메뚜기떼가 습격하는 부분도 충격적이었고요. 향토적이고, 지방적인 색채들을 잘 그려냈지요.

‘살아있는 갈대’는 한국의 개화기에서 해방 후까지 이야기입니다. 삼대, 사대 이야기지요. 여기서 약산 김원봉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내용들을 분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펄벅의 사회사업’ 장에서는 펄벅의 우리나라 사랑에 대해 진하게 느꼈습니다. 정말 바쁜 분인데도 우리나라 방문할 때마다 우리나라에 대해 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많이 받았답니다. 그래서 독립운동 이야기, 억압 받는 존재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사회사업도 그 연장선상에서 하게 된 겁니다.

한국전쟁 때 미국이 참전했지만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해 한국을 알리려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 픽션이지만 뭐가 옳은지, 뭐가 허구인지를 가려가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현재도 펄벅재단에서 다문화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사회복지가 없던 때인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펄벅 선생의 정신을 떠받들어서 다문화 등 사회복지를 확장해야 겠지요.

Q 책을 발간한 소감은?

A 펄벅 선생이 소사희망원 사회사업을 하면서 혼혈아들이 당시 지역사회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측면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펄벅 선생이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했지요. 하지만 개인적인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사재를 다 털어서 사회사업을 했지요. 그런데 그게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부천은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펄벅 축제를 하더라도 펄벅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내용을 알고 진행한다면 그 의미는 남다를 것입니다. 대지를 읽고 독후감 쓰기, 살아있는 갈대 읽고 독후감 쓰기, 펄벅 여사 일대기에 대해 토론하기 등등으로 심층적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펄벅 선생의 소설들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이고,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들입니다. ‘펄벅 선생의 살아있는 희망’이라는 이 책이 부천내 도서관, 초중고 도서관에 배포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펄벅에 대한 붐이 일었으면 하는 게 작은 소망입니다.

글 : 한도훈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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