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공동체 딴 진 아웅 부회장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다문화 노동자들도 어렵다

 

미얀마 공동체 딴 진 아웅 부회장

미얀마 공동체 부회장인 딴 진 아웅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였다. <편집자 주>

Q 딴 진 아웅의 뜻은?

A 딴 진은 ‘깨끗하다’는 뜻이다. 아웅은 ‘모든 것을 해냈다’는 뜻이다.

미얀마에선 이름만 보면 어느 요일에 태어났는지 알 수 있다. 딴 진 아웅은 금요일 태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딴 은 금요일을 가리킨다.

Q 고향 미얀마는?

A 우리나라는 불교의 나라이다. 국민들이 70~80% 불교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다들 불심이 깊다. 부모님은 미얀마에 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일들은 안하고 있다. 내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부인이 있다. 원래는 한국여자와 결혼했지만 이혼을 했다. 부모님이 맞춰주는 여자하고 다시 결혼을 했다. 미얀마에서 살고 있다. 서로 떨어져 있다. 일년에 한 달 정도 갔다가 온다. 회사에서 한 달 정도 휴가를 준다. 회사에선 가족처럼 일한다. 일이 없을 때 간다. 일이 많으면 못 간다. 

 

Q 고향에 얼마나 부치나?

A 제가 지금 220만원 월급을 받는데, 그 중에서 100만원~150만원 정도 보낸다. 돈 있는 대로 보낸다. 미얀마에서 생활하기에 충분한 돈이다. 우리 부모님은 저축 같은 것은 신경 안 쓴다.

Q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되었나?

A 1994년에 한국에 왔으니까 한 22년 정도 되었다. 그때는 고등학생이었다. 미얀마에서 살길이 막막해서... 공부는 못해도 돈 벌려고 왔다. 고등학교는 졸업하지 못하고 왔다. 그때 스무살이었다.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치킨박스 포장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당시 월급은 30만원 정도였다. 하루 일당이 1만원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70만원 정도였다. 거기에다 밥값 15만이었다. 그것도 다른 외국인에 비하면 많은 돈이었다.

3개월 비자로 왔다. 관광비자로 온 것이다. 그 비자로 구로동에서 2년 정도 일했다. 돈 벌어서 부모님에 보내주고... 저축도 하고 그랬다. 그러고 보니 3개월 비자로 와서 세월이 많이 흘렀다.

Q 부천에선 얼마나 되었나?

A 20년 정도 장기근속하고 있다. 플라스틱 용기 만드는 회사이다. 부탄가스 용기 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제품이다. 바퀴벌레 퇴치용 스프레이 뚜껑 같은 것을 만드는 회사이다. 여러 스프레이 제품의 뚜껑 같은 것을 찍는 플라스틱 사출 회사이다.

처음에는 물병도 찍었다. 5-6년 정도까지 물병을 찍었다. 처음에는 밥값까지 포함해서 70만원을 받았다. 지금은 220만원 받는다. 보너스는 많이 없다. 30만원이나 50만원 정도 받는다. 4대 보험에선 건강보험만 받는다. 이 건강보험도 받은 게 2년밖에 안 되었다. 현재 미얀마 친구들은 비자를 받아 오기 때문에 건강보험 같은 것은 다 되어 있다.

 

Q 부천에 미얀마 출신 노동자들은?

A 부천에서 직장에 다니는 미얀마 분들은 2백명 정도이다. 다른 지역보다 적다. 부천엔 필리핀, 베트남 사람들이 많다.

미얀마 분들은 부산, 김해에 많다. 배 만드는 공장에만 이백명씩 있다. 보통 3D 업종에서 일한다. 김해 회사 같은 곳은 3대 교대 250만원 받는 분도 있다. 3백만원 받기도 한다. 부천에선 150만원에서 2백만원 정도이다.

Q 기숙사 생활을 하나?

A 기숙사 생활하는 노동자들이 옛날 보다 많지 않다. 보통 작은 회사에 다니는데 보증금은 회사에서 내고 월세를 산다. 주로 밖에서 생활한다. 방 하나 빌려서... 옛날에는 회사에 친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혼자이다.

미얀마 공동체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다른 미얀마 분들을 위해 통역도 해주고 함께 생활하기에 심심하지 않다. 서로 많이 도와준다. 몸이 아파 병원에 못 가는 분들을 조치해 주기도 한다. 미얀마 가족 중에서 불행한 일들이 생기면 도와주기도 한다.

 

Q 부천에 미얀마공동체 본부가 있나?

A 우리나라 전체에 미얀마 노동자가 4만명 가까이 된다. 본부가 부천에 있다. 지역마다 지부가 있다. 이 지부들을 부천에서 총괄한다.

미얀마 축제는 매년 4개 정도 열린다.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띤잔 물축제가 열리는데 가장 크다. 벌써 16년째이다. 부천시에서 지원도 해준다. 미얀마에선 4월 달이 더우니까 4박 5일 동안 물축제를 한다. 하지만 부천에선 일요일날 모여서 축제한다. 전국에서 1,500명 정도 모인다. 큰 축제이다.

보통 물을 뿌리면 한국 사람들은 화를 낸다. 하지만 미얀마에선 물이 몸속에 안 좋은 것은 다 떠나게 만들어 준다. 몸을 깨끗하게 정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물축제 이외에 축구대회도 있다. 이 축구대회도 부천시에서 지원해 준다. 전국에 20개 축구팀이 있는데 하루만에 경기다 다 끝나야 한다. 부천시에서 나머지는 친구들이 모아서 한다.

Q 부천의 경제가 힘드는네?

A 부천에서 2백명 정도 일한다. 분야는 요즘에는 도로공사 같은 것도 많이 한다. 돌도 깎는 공장에 들어가기도 한다. 요즘에는 직업이 다양해 졌다.

옛날엔 불평등이 심했다. 지금은 옛날 보다 조금 나아졌다. 그러더라도 합법적으로도 해결 안 되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몸이 자꾸 아프다. 그러면 다른 회사로 옮겨야 하는데 사장이 돈을 안준다. 다른 회사 못 들어간다.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없다. 지금도... 회사 사장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사장쪽에만 법이 만들어져 있다. 이런 면이 불평등하다.

Q 비자 문제는?

A 현재의 비자를 따려고 아주 힘들었다. 변호사 통해서 비자를 얻었다. 5년 동안 싸워서 비자가 나왔다. 비자가 없을 때는 3개월마다 체류 연장을 해야 했다. 그때마다 공장에서 보증을 서줘야 했다. 3개월마다 출입국에 가서 비자 연장을 했다. 5년 동안 그랬다.

 

Q 요즘에도 미얀마에서 취업하러 많이 오나?

A 요즘에는 미얀마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나온다. 최종적으로 시험을 보고 나온다. 우리 때는 가나다라 정도밖에 몰랐다. 이것, 저것 밖에 몰랐다.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에 오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하지만 요즘엔 한국도 경제가 안 좋다. 부도난 회사도 많다. 그러면 나라에서 임금을 돌려받는다. 이때 변호사 선임해서 해결한다. 변호사비로 10% 정도 뗀다. 무료변론은 없다. 다른 곳에선 50% 뗀다. 직접 안 가도 되니까 좋다.

몇 개월째 일거리가 없는 회사도 있다. 큰 회사에서 일거리를 안주니까 기본급만 받고 있기도 한다. 한국 경제가 힘드니까 다문화 외국인인 우리도 힘들다. 그렇더라도 한국경제와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 같다. 한국 경제가 나아졌으면 좋겠다.

글 정리 | 콩나물신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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