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이에 초록은 온다

틈을 일군 너의 발목을 존경한다

살지 못할 사이는 없다

네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너를 내려다 보는 것이 돼버려

미안하지만

사랑했다,


여린 풀들이 콘크리트를 밀고 힘겹게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연민보다는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풀의 불운과 불우, 결코 질기지 않은 목숨과, 목숨의 푸른 슬픔까지 이해하고 싶어진다. 척박한 곳에서 태어난 풀의 운명을 깊은 눈으로 포옹한다.

넓은 초원에 우아하게 피어나 화사하게 살아가지 못한다고 슬퍼할 일은 아니다. 단지 깊이 이해할 일. 그래야 우리의 목숨은 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고 겨울의 뒤 어느 봄날에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어쩌면 영원히 만나는 길이기도 하겠고.

죽도록 사랑하는 것보다 죽도록 이해해 주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이해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사랑한다는 말도 되니까, 죽도록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한없이 사랑하는 것이겠다. 만날지 못할 '사이'는 없고, 함께 살지 못할 사이도 없다. 세상의 모든 '틈'에서 태어나 소박하게 살다가 욕심 없이 떠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의 박수를 보낸다. 사랑했다, 풀.

<이 작품은 김주대 시인 창작품이므로, 다른 용도로 쓰시려면 반드시 작가와 상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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