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연구소 발효생활 이야기 01

 여러가지연구소 발효생활 이야기 01

느릿느릿~

누룩이랑 놀아요♬

 

배움은 언제나 설렌다. 그것도 된장, 고추장, 술 담그기라니.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여러가지 연구소 발효음식 만들기에 참여했다. 3주 동안 5번의 수업으로 진행된다.

원미동의 대문 없는 집, ‘여러가지 연구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탄 난로가 반겼다. 겨울부터 초봄까지 꺼지지 않는다는 연탄 난로는 집주인 인심 만큼이나 훈훈했다.  

첫 날은 발효 강사 항아리샘의 누룩 만들기 비법을 전수 받았다. 경은, 미미, 수진, 정원 이렇게 4명의 수제자(?)가 장 만들기의 기초인 '누룩‘을 빚었다. 누룩이란 밀이나 쌀, 찐콩 등을 발효시켜 곰팡이를 번식시킨 것을 말한다.

먼저 이화곡을 만들었다. 쌀가루 1키로를 200그램의 물로 반죽하여 야구공 크기로 10개를 만들었다. 이화곡은 이화주(梨花酒)를 만드는 누룩이다. 배꽃이 필 때 만드는 술이라하여 이화주라고 한다. 술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미미샘과 경은샘은 '만드는 사람에 따라 손맛이 달라 술맛도 다 다르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마트에서 사 먹는 술맛은 똑같은데 말이다. 우리가 만든 술맛을 기대하며 열심히 만들었다.

 

집에 와서 종이상자에 밀짚을 깔고 조심조심 이화곡을 넣었다. 마치 푸근한 새집 같았다. 어미새가 알을 품고 새생명을 탄생시키듯 21일 후면 생명이 숨 쉬는 누룩으로 태어난다니 신기했다. 우리는 카톡으로 자신의 이화곡을 자랑하느라 바빴다. 서로의 누룩이 잘 만들어지기를 응원했다.

둘째날 수업은 쌀누룩, 밀누룩, 알메주를 만들고 초간단 고추장을 담갔다.

먼저 고두밥을 쪘다. 식힌 고두밥에 황국(종균)을 넣어 발효를 기다리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누룩은 천연조미료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밀누룩은 거칠게 빻은 밀을 반죽하여 동그란 틀에 넣고 발로 꾹꾹 눌렀다. 20여 분을 밟고 나니 멧돌처럼 단단했다. 발 냄새, 양말 냄새가 들어가 더 맛있게 될 것이다. 음식을 만들 때는 위생에 각별히 신경 쓰지만 누룩은 그럴 필요가 없다. 공기 중에 떠도는 각종 균들이 미생물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전통 고추장이 아닌 금방 먹을 수 있는 고추장을 만들었다. 고춧가루에 이미 발효를 마친 조청과 액젓, 청국장과 밀누룩을 넣었다. 청국장을 넣은 고추장은 타래처럼 쭉쭉 늘어난다 하여 '타래장', 밀누룩을 넣어 만든 고추장은 수퍼에서 사 먹는 고추장맛이 난다하여 '수퍼장'이라고 이름 지었다. 발효균이 살아 있는 고추장이라니 몸이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콩나물, 호박볶음, 무생채, 계란 후라이에 고추장 푹 퍼서 넣고 참기름 듬뿍 넣어 먹은 비빔밥은 꿀맛이었다. 집에서 혼자 점심 먹는 일에 익숙한 나, 이웃집에서 여럿이 빙 둘러 앉아 밥 먹는 일이 낯설었다. 아무도 눈치 못 챘겠지만...

우리집 거실에는 지금 쌀누룩, 알메주, 이화곡이 새생명을 품고 있다. 죽은 생명체에 균들이 들어와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다. 수시로 서로의 누룩을 카톡으로 보여주며 누룩의 상태를 공유하고 있다. 누룩으로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된장, 고추장, 술을 만든다 생각하니 뿌듯하다.

글·사진 |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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