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과 직원이 함께 만드는 배움터

▲ 커피동물원 안 풍경
가톨릭대학교 내에는 커피전문점이 총 7곳이 있다.

내로라하는 프렌차이즈카페 틈바구니 속에 커피동물원이 있다. 상호명과는 사뭇 다르게도 카페 안에는 동물인형 하나 없다. 평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동물원은 대학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다.
 
커피동물원의 이름 유래는 인테리어만큼 간단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가출청소년들이 서로 좋아하는 단어를 말하다가 합의한 게 커피동물원이다. 커피동물원은 정확히 ‘사회적기업’은 아니다.
하지만 커피동물원의 성격은 사회적기업과 닮았으며, 현재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 중이기도 하다.
 
커피동물원 담당자인 김정미 수녀는 “성심디딤돌청소년쉼터는 집을 나온 16~19세 여자아이들이 생활하는 중장기 쉼터예요. 커피동물원은 성심디딤돌청소년쉼터의 자립훈련매장으로 출발했습니다.”고 이야기했다.
성심디딤돌청소년쉼터 청소년들은 자립을 위해, 연계기관에서 직업훈련을 배웠다. 그러나 연계기관에서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붙들어주는 게 아니라, 안쓰러운 마음이 큰 탓에 편의를 봐줬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니, 직업훈련은 무색해졌다.
“그래서 쉼터 내에서 직업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과 2006년부터 2년 정도 준비해 만든 자립훈련매장이 바로 커피동물원인 거죠.”

김정미 수녀는 아이들에게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전문적인 일을 찾던 중 ‘바리스타가 괜찮겠구나.’라고 생각했단다.

“바리스타는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훈련을 받아야 돼요. 꽤 기간이 긴 편이라 인내가 필요해요. 따라서 아이들이 이 직업훈련을 받는 동안 인내와 자부심이 생기리라 기대했죠.”

실제로 아이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쉼터에 있을 때는 의자 하나 들기도 버거워하던 아이들이었다. 카페를 준비할 때, 아이들이 협동해 냉장고를 옮겼다.
 
▲ 김정미 수녀
“책임감이 생긴 거죠. 그리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던 아이들인데 바리스타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손님과 마주보고 대화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도 자연스러워 진거죠.”
또한 커피동물원을 찾는 주된 손님은 대학생들이다. 대학생들은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곳에서 훈련받는 동안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대학에 가려는 아이들이 많아졌어요.”
 
커피동물원은 자립훈련매장이라 여기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은 훈련생들이다. 손님입장에서는 커피 맛도 일정하지 않고 때로는 주문이 늦어져 오래 기다리기도 한다. 화를 낼 법도 하지만 대학생들이 이곳의 의미를 안다. 그래서 ‘기다릴 줄’을 안다.
“공정무역커피를 사용하고 있어요. 대학생들과 함께 캠페인도 하고요. 커피동물원을 꾸민 인테리어 제품은 대부분 재활용이에요. 벽면에 붙인 ‘커피의 탄생’은 골판지 상자를 활용했고 개인 컵을 가져오면 300원 할인해줘요.”
커피동물원은 가톨릭 대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길 바라고 있다.
 
“다양한 활동도 자립훈련과정 중 하나죠. 이런 활동을 한 아이들은 되돌아가도 예전의 그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아요. 늘 저는 아이들을 커피콩 볶듯 들들 볶았죠. 여기서 나가면 혼자 살아야하니까…. 너희들은 독립투사다, 독립투사. 악착같이 살아야한다고 말했죠.”
같은 또래들과 다르게 부모의 울타리를 먼저 벗어난 아이들.
 돈이 곧 교육, 생활, 삶의 질을 결정짓는 사회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해도 기회를 얻기 쉽지 않다.
김정미 수녀는 “문득, 문득 아이들이 죽을 기를 쓰고 터널을 지나서 빠끔히 보이는 하늘만 보며 나왔는데 다시 터널인거죠.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요.”라며 말을 마쳤다.

짧은 대화

비버(18)

커피동물원에서 한 달 정도 근무한 비버양. 얼굴이 비버를 닮아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커피동물원은 대학 안에 있기 때문에 주로 대학생이 손님이다. 그런 특성 탓에 손님들은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정신이 없을 것 같았다.
“한꺼번에 사람이 몰려오면 힘들지만 그래도 재밌어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비버양은 이야기 했다.
두 사람정도 움직이면 적당한 주방 안에, 많게는 네 명이 있기도 한다. 동선이 어지럽게 얽히는데도 어려움 없이 주문한 음료를 착착 내놓는다.
“여긴 아침 7시 50분까지 나와서 문을 열 준비를 해요. 아침 일찍 일어나니까 생활패턴이 바뀌긴 했어요.”
평소 올빼미 생활이 익숙했다면 커피동물원 인턴이 되면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지만 가끔 옳지 못한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우리가 어리다보니 남학생들 중엔 반말을 하거나 계산할 때 카드를 던지듯 주곤 해요. 그럴 때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죠. 그래도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힘이 난답니다.”
비버양의 꿈은 디자이너라고 한다. 꿈을 꾸게 되자 공부가 하고 싶었고, 그래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비버양은 “올해는 즐겁게 놀고 하고 싶은 걸 하려고요. 공부는 정식으로 내년부터 하려고 해요. 뭐든 그런 거 같아요.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요.”라며 당당한 미소를 지었다.
  

도도(19)

도도는 센터에 처음 왔을 때 머리카락이 심하게 상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은 그녀가 마치 목도리도마뱀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도리도마뱀의 약칭, 도도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도도는 커피동물원에서 8개월 정도 근무했고 앞으로도 바리스타를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큼직한 가맹점 카페가 아닌 자그마한 동네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도도도 비버와 마찬가지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유아교육을 배우려고 공부하고 있어요.”
도도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 한다. “저도 엄청 방황을 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부질없는 짓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는 의료시설 자체가 없었어요. 사소한 감기도 오래두면 심해지잖아요. 아파도 돈이 없으니까 병원에 갈 엄두가 안 났던 거죠.”
도도는 제대로 된 청소년 의료시설이 있길 바랐다. EXIT, 청개구리밥차, 꿈별에서도 청소년 의료를 돕지만 전문시설은 아니라고 한다.
이들을 부르는 호칭은 대부분 길거리청소년, 학교밖청소년, 가출청소년, 위기청소년이다. 지극히 부정적이고 객체적인 단어다. 이런 호칭들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도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런 호칭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다만, 저는 관심을 바랐던 것 같아요. 진심이 담긴 관심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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