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천하(女人天下) 내우외환(內憂外患)
 
 
글 | 장우정
 
 박종화가 쓴 역사소설 ‘여인천하’는 문정왕후 윤씨를 다루고 있다. 문정왕후는 대윤과 소윤이 싸웠던 을사사화 때 소윤파인 윤원형의 누이다. 중종의 계비이고 윤원형의 애첩이면서도 정경부인 첩지를 따낸 정난정의 시누이가 되겠다.
 무엇보다도 인종의 계모로서 효성스러웠던 인종이 요절하자 의혹도 받게 되었던 대비다. 명종의 모후로서 수렴청정을 하자, 남명 조식 같은 선비는 여편네가 나섰다고 일갈했다. 문정왕후 윤씨와 정난정 그리고 요승 보우가 한통속이 되어 국정을 맘대로 농단했다.
 그 시대는 대동법이 나오기 전이라 방납의 폐단이 극심하여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우리가 잘 아는 ‘임꺽정전’이나 ‘홍길동전’의 배경도 되었던 시대다. 문정왕후가 죽자마자 윤원형과 정난정, 그리고 요승 보우도 모두 자살하거나 처형되었다.
 그리고 명종도 모후인 문정왕후의 뒤를 따라 2년만인 1567년에 승하했다. 그렇게 한번 농단된 나라꼴이 불과 25년 뒤에 임진왜란을 제대로 치를 수나 있었겠는가.
 
 임병양란을 당하고 난 조선이 영조 정조 연간인 18세기에 화려하게 부흥했다. 그랬던 조선이 왜 영조 정조 시대의 영화를 19세기까지 이어가지 않았는가. 정조의 요절이 아쉽다고 해도 그 치적을 그대로 잘 계승했다면 망국으로까지 이어졌을까.
 우리는 여기서 정순왕후 김씨를 주목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정순왕후는 영조보다 51살 연하인 계비로서 손자인 정조보다 겨우 7살 연상이었다. 그렇게 젊은 할머니인 정순왕후 김씨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처형사건에도 무관치 않았다.
 그리고 정조의 세손 지위도 내내 흔들다가, 승하하자마자 정조 끄나풀들을 소탕해버렸다. 그러니까 증손자뻘인 어린 순조의 수렴청정을 맡아서 전횡을 휘둘렀던 것이다. 천주교 신유박해로 피보라를 일으켰으며 정조가 벌였던 정책들은 죄다 뒤집어버렸다.
 정순왕후의 독단에 대한 반동으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모택동을 키운 것은 장개석이듯이 뭐든지 독식하려고 하면 되레 쪽박 차는 법이다.
 어이없는 점은 지혜로운 정순왕후라며 미화된 일화들만 단편적으로 전해진다는 점이다. 왕비 간택 때 아버지 이름이 쓰인 방석에 앉지 않았으며, 목화가 제일 좋은 꽃이랬다고.
  
 명성왕후 민씨도 하필 을미사변으로 희생된 바람에 과오보다 공만 부각시킨 케이스다. 임오군란 때 청국군을 불러들였고 갑신정변 때 또 청국군을 불러들였다.
 20세기에 일제강점기를 당해서 묻혀버렸는데 이미 19세기말에 청나라식민지를 자초했다. 청나라 원세개가 식민지 총독보다 더 큰 위세를 부리도록 아예 판을 깔아줬던 것이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그리고 1894년 동학혁명 때 또 청국군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군까지 맘대로 조선반도에 상륙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청일 간에는 조선에 동시 파병하고 동시 철군한다는 톈진조약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번 들어온 양국군대는 나가달라고 해도 듣지 않고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을 벌였다.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친청파, 친러파였던 명성왕후를 시해한 사건이 을미사변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급속하게 일제보호국으로 전락한 역사는 우리 모두가 주지하는 바이다.
 
 문정왕후 윤씨, 정순왕후 김씨, 명성왕후 민씨의 여인천하를 보면 좀 억울할 여자들이 있다. 장녹수와 장희빈이 그들인데 사극들이 앞 다퉈 악녀모델로 삼다보니 좀 억울했을 것 같다.
 그들은 제 몸 하나의 영화와 사랑만을 위해서 몸부림쳤을 뿐, ‘여인천하’가 당키나 했냐고. 장녹수와 장희빈이 하필 같은 장씨다보니 장영자에 이어 요샌 장시호까지 회자될 판이다.
  
 ‘내우외환’이라고, 나라가 망하는 순서도 ‘내우’가 먼저요, ‘외환’이 뒤다. 안보를 튼튼히 한다며 만리장성까지 쌓았던 진나라가 망한 것도 정작 외환 탓이 아니었다. 조고 같은 문고리 환관을 잘못 쓴 내우 탓이 먼저였던 것이다.
 북핵도 커다란 잠재적 위협이지만 구제역으로 거덜 나는 민생은 오늘 당장 망하고 있다. 피살당한 필리핀 투자기업인들에게는 차라리 개성공단 투자기업들이 더 부러울 수도 있다. 당장 실직으로 굶고 불황의 도탄에 빠진 민생에게 김정남을 죽이고 미사일을 쏘는 위협?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깝다고 먼 ‘외환’보다 가까운 ‘내우’가 훨씬 더 시급한 불똥이다. 배곯아보지 못한 대선주자들이 당장 민생도 아닌 공약을 공염불처럼 읊조리지 말기 바란다.
 안보가 아무리 중하고 중하다 해도 오늘밤 죽어나자빠지는 민생보다는 더 뒷전이다. 절대로 안보를 소홀히 하란 말이 아니고, 그렇게 입으로만 유난떨지 말라는 것이다. 뭣을 제대로 알고나 대선에 나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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