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와 권고사직 사이에서
 
서창미 공인노무사
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상담실장
 
“너 해고야! 내일부터 당장 나오지 마!”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해고 장면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대놓고 해고를 통보하는 회사는 드뭅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사실은 해고인데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고, 권고사직을 당했는데 해고라고 억울함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해고와 권고사직은 근로기준법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두고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해고를 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당한 해고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서면으로 노동자에게 통보해야 하고, 갑작스런 통보로 생활의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한 달 전에 미리 예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권고사직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에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회사가 먼저 노동자에게 사직을 권유하고, 노동자가 이를 받아들이면 권고사직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즉, 해고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 함부로 할 수 없지만, 권고사직은 제한 없이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의 합치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해고와 권고사직의 구분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라든가 ‘같이 오래 가고 싶었는데 아쉽다’ 와 같은 애매모호한 통보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해고통보를 해놓고는 근로자에게 퇴직절차에 필요하니 사직서를 내라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해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얼떨결에 사직서를 내버리고 어떻게 하냐고 상담을 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해고를 해놓고 권고사직이라는 허울을 덮어씌우는 것은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노동자의 마지막 기회마저 빼앗는 것입니다.
요즘은 고용노동부에서 시행하는 여러 일자리 지원 사업에 참여하여 지원금을 받는 회사들이 많아져, 해고를 해놓고도 노동자 자의에 의한 퇴사로 처리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이유는 고용노동부의 지원금을 받는 일정 기간 동안에는 해고나 권고사직 같은 인위적인 인력조정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해고 또는 권고사직을 당하고도 실업급여까지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 처리를 해주는 것을 빌미로 회사가 부당한 ‘갑질’을 하며 노동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한 경우 또는 해고인지 권고사직인지 헷갈리는 경우 함부로 사직서를 제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퇴직 절차에 필요하다든가 사직서를 내지 않으면 퇴직금을 줄 수 없다는 협박에 마지못해 제출하게 된 경우, 부당한 해고로부터 구제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회사의 권고사직 요구에 동의한 경우라면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이 맞지만, 이때도 회사가 요구한다고 해서 사직의 사유를 ‘일신상의 사유’ 또는 ‘개인사정에 의한 사유’ 라고 적어 제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권고사직의 경우에는 회사의 권고로 인한 사직의 취지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사직의 사유를 적어야, 차후 실업급여 신청시 회사가 고용보험 상실 신고를 사실과 다르게 했을 때 대비할 수 있습니다.
해고나 권고사직이 노동법에서 뭐라고 규정되어 있든 사실 요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대부분의 노동자에게는 그 구분이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둘 다 일터에서 닥치게 되는 불행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그 불행의 기운이 직감적으로 느껴질 때 당황하지 마시고 먼저 노동 상담을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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