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효과의 중심은 무엇인가?

 
 인간은 누구나 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행복한 자신의 삶을 그려봅니다. ‘행복한 삶’은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 것 일까? 나를 지배하며, 나의 삶의 전반을 좌우지하는 수단과 능력들은 무엇으로부터 지배당하는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인간은 무수한 관계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조직이라는 거대한 그물 안에서 자신의 삶과 능력을 검증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직’이라는 그물을 씌운 정치는 아닐가? 흔히 많은 사람들은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사기꾼’이라 지칭 합니다. 왜 그럴가?
 
 정치가 혐오의 감정으로 오해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정치가 밥을 먹여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구분됩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자유권(선거, 집회, 결사, 사상, 표현 등)보장과 그 댓가를 이루어 냅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사회권 즉 사회복지를 확충하고, 민주주의 의식화를 실현합니다. 많은 시민들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하여 바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민주시민들이 정치에 대하여 혐오의 감정으로 오해하는 이유는 ‘정치꾼’과 ‘정치가’에 대한 혼동입니다. 정치는 ‘정치꾼’들이 아닌 ‘정치가’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민주시민들은 ‘정치꾼’을 ‘정치가’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로부터 정치가 혐오의 감정으로 오해받는 세 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바로 정치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시민의 수준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일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인식론적 호기심이 있는 시민이 중요하다. 이것을 민주시민의 ‘의식의 조직화’라고 규정합니다. 정치의 수단은 언론과 교육이다. 교육과 언론은 정치의 수단인 동시에 내 머릿속의 세상을 만드는 프리즘이다. 정치에 대하여 말할 때 아렌드는 정치의 절반이 나의 생각의 절반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들에게 그 이미지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 국민이 당하는 정치적 비극은 우리국민이 가진 민주주의 의식이 빚어낸 최악의 결과는 아닐까?
 
 나를 알고, 정치를 알고, 바른 정치를 알아가는 것, 이것이 민주시민인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반드시 생각하여야 하는 진리이고, 우리들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진리의 효과’입니다. 어느 한쪽에서 생각 당하는 내가 아닌 ‘이상한 놈’이 되어서 생각하는 나로, 바른 정치를 말할 줄 알고, 실천해 가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현재와 미래에서의 우리들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인문학이 가는 길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글 | 원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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