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로 만든 장승도 세우고, 신주(神酒)인 조라술도 담가

                   소나무로 만든 장승도 세우고

                  신주(神酒)인 조라술도 담가

                 온갖 정성을 담는 깊은구지 도당제 

▲ 2001년 지신밟기(최영철 제공)

 

◆ 산신제, 목신제, 토신제

깊은구지 도당제는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화합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제사 지내는 목적은 마을에서 살았던 선조님들의 위업을 받들어 후손에게 보람과 긍지를 심어주기 위한 마을 화합에 있다.

그해 수확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깨끗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성주산 산신을 위로하는 산신제(山神祭)를 지낸다. 윗마을에 있는 느티나무에선 목신제(木神祭)를 지낸다. 아랫마을에선 마을의 평안과 태평을 기원하는 토신제(土神祭)를 지낸다. 이렇게 세 가지 제사를 하루에 지낸다. 예전에는 삼일에 걸쳐서 지냈지만 지금은 단 하루로 끝낸다.

현대에 들어서는 깊은구지 주민뿐만 아니라 부천시민들이 무병(無病)하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장수(長壽)를 기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구지 주민들의 화합과 친목 도모, 지역공동체 의식 고취, 정신적 결속과 지역문화의 계승을 목적으로 한다.

깊은구지 도당제는 제사를 지낼 날짜를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깊은구지 도당제 운영위원회에선 홀수 해가 되면 음력 9월초에 모여 도당날을 잡는다.

▲ 2001년 기념촬영(최영철 제공)

 

◆ 당주(堂主) 뽑기

도당날이 잡히면 도당제를 이끌어갈 당주(堂主)를 뽑는다. 민속 사전에서 당주를 소개한 것을 보면 ‘나라에서 지내는 기우제(祈雨祭), 기설제(祈雪祭), 기청제(祈晴祭) 따위에서 기도를 맡아 하던 맹인무당(盲人 巫堂)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경기도 도당굿, 도당제에서는 제사를 이끌어갈 주인 된 이를 가리킨다. 보통은 무당이 당주이기도 하고, 마을 주민들 중에서 뽑는다. 깊은구지에선 당연히 마을 주민들이 당주가 된다.

깊은구지 도당제 운영위원회에서 음력 구월이 되면 당주를 할 사람을 찾는 방(榜)을 붙인다. 방이라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처지를 거의 알고 있어서 낙점하다시피 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모르는 이웃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라면 숟가락이 몇 개인지조차 알 정도이다. 여러 방면으로 당주 적임자를 찾아서 본인의 승낙 여부를 묻을 뒤 앉은당주 한 명을 뽑고, 선당주 두 명을 뽑는다.

장말도당굿에선 안당주, 밖당주를 뽑는다. 장말도당굿에선 당주를 위해 특별한 당주굿을 행했다. 당주를 위해서 굿까지 벌인 것이다. 깊은구지 도당제에선 이런 배려는 없지만 도당제 전체를 주관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는다.

당주가 되는 자격으로 집안에 임신부가 없고, 상(喪)을 치른 일이 없어야 한다. 특히 상을 당한 사람이거나 상가에 다녀온 사람은 당주에서 철저하게 제외한다.

상을 치른 사람이나 상가에 다녀온 사람이 당주가 되면 상문살을 맞게 된다고 한다. 상문살을 맞으면 갑자기 병이 나거나 심하면 급사(急死)를 한다. 이처럼 아주 무서운 살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상가에 다녀오면 대문 앞에서 고춧가루와 소금을 섞어서 뿌린다. 상가에서 가져온 부정을 막으려는 의식이다. 상가의 물건도 집안에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물건에 부정이 딸려 들어오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상가에 가야 할 때에는 예방책으로 주머니에 붉은 팥이나 콩 너덧 알을 넣어서 간다. 팥이나 콩은 상가에 들어가기 전에 대문 밖을 향해 흩뿌리거나 초상집에서 나오자마자 먼 곳을 향해 던져버린다. 이게 우리네 풍습이다.

이를 제외하고 깊은구지 도당제 운영위원회에선 대체적으로 집안에 부정(不淨)이 없으면 당주(堂主)로 선정한다. 원래는 당주로 선정된 후에 앉은당주 집에서 기거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치 않은 일이므로 현재는 당주를 선정되면 각자 집에서 기거한다.

앉은당주는 제사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 분들에게 제사 비용을 추렴하는 일을 한다. 제비(祭費)는 마을 주민들이 솔선수범해서 낸다. 옛날에는 그 해 농사지은 쌀, 콩, 팥 같은 곡식과 과일을 정성껏 냈다. 마을에서 잘 사는 분은 쌀 한 말이라도 선뜻 냈고, 가난한 사람은 도당제를 지낼 때 음식을 장만하거나 음식을 나르는 일 같은 허드레 일을 했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나는 흥겨운 잔치 마당이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부천시의 지원금에 덧붙여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내는 후원금, 지역 유지 분들의 찬조금으로 부족금을 채운다. 깊은구지 도당제가 부천시 민속문화제로 자리를 잡아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부천시 시민 전체와 어울리는 행사로 거듭 태어났기 때문이다. 앉은당주는 제사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선당주는 도당제를 홍보하는 일을 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깊은구지 마을이 확대되고 부천시 문화제로 거듭나면서 홍보일은 아주 커졌다. 홍보가 잘 되어야 도당제가 성대하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당제에 참여하는 마을 어르신, 부천시 관료들, 깊은구지 유지분들, 초청되어 온 분들을 접대하는 역할을 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도당제에 참여 여부를 묻는 섭외 역할까지 해야 한다. 거기에다 도당제가 진행되는 당일에는 행사 진행을 이끌어가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 2001년 깊은구지 도당제(최영철 제공)

 

◆ 조라술 묻기

당주가 뽑히면 본격적인 도당제를 준비한다. 맨 첫 번째가 조라술을 담는 것이다. 도당제가 진행되기 삼일 전에 조라술을 정성껏 빚는다.

옛날부터 일반 백성들은 조라술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 나라 제사인 종묘제례에선 울창주(鬱鬯酒)로 제사를 지냈다. 울창주는 울금향(鬱金香)을 넣어 빚은 향기나는 술이다.

그냥 술 자를 빼고 ‘조라’라고도 한다. 신주(神酒)이다. 아직 ‘조라’라는 어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부천에서도 이 조라술은 신성한 술로 마을 제사 때 쓰인다. 윗소새대동산신제, 춘덕산산신제, 고리울고유제천의례(告由祭天儀禮)에도 이 조라술이 쓰인다.

옛날에는 이 조라술 담기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산신, 목신, 토신이 드시는 술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야 했다. 누룩부터 만들어 썼다. 하지만 지금은 누룩은 만들지 않고 술을 담그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조라술은 누룩만들기, 물봉하기, 고두밥만들기, 고두밥과 누룩섞기, 항아리에 담기, 숙성시키기, 조라술병에 담기 순으로 진행했다.

누룩은 통밀로 만든다. 통밀은 우리밀이다. 통밀을 맷돌에 갈아 우물물로 끓여서 식힌다. 손에 뭉쳐질 정도가 되게 반죽한다. 그 다음엔 누룩판에 삼베를 깔고 반죽을 넣는다. 둥그렇거나 네모지게 만든 누룩판이다. 그 위를 삼베로 덮고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발로 단단히 밟는다. 누룩에서 공기를 빼는 작업이다. 이것이 누룩밟기이다. 보통 누룩을 짚으로 싼 후 온돌방에 쌓아서 4~5일간 띄우고, 호남과 충청도 서해안 지방에서는 짚으로 묶고 실내의 시렁이나 천장에 매달아서 10~30일에 걸쳐 띄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누룩으로 조라술을 빚을 때는 절구통에 담아 곱게 빻는다. 절구통을 사용할 때의 일이다. 지금이야 믹서기로 곱게 갈면 된다. 체로 친 고운 누룩가루를 그늘에 두어 이삼 일 동안 말린다.

술 담그는 책임을 맡은 당주는 도당제 사흘 전에 대문에 금줄을 치거나 성주산에서 가져온 황토를 대문 밖에 뿌려놓는다. 부정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부정예방을 한 다음에는 당주는 목욕재계를 한다. 그것도 이른 새벽에 한다. 목욕제계를 한 다음 새벽 우물에서 물을 떠 온다. 깊은구지 대동우물이다. 동네 사람들이 물을 떠가지 전에 신성한 우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새벽 일찍 물을 떠오는 것이다. 정화수(井華水). 일반적으로 우리 민족은 이 정화수를 떠다가 천지신명(天地神明)께 비는 의식을 자주 행했다. 이 우물물에다 황토를 넣어 지장수(地奬水)를 만든다. 황토가 액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장수에서 황토는 아래에 가라앉고 맑은 물만 걸러 사용한다. 이때 숯으로 한 번 더 걸러 사용한다.

조라술에 필요한 쌀을 세 시간 이상 지장수로 불린다. 이 술밥용 쌀은 깊은구지 마을 분들이 한 되, 한 말씩 내놓은 것이다. 시루에 쪄서 고두밥을 만든다. 고두밥이 완성되면 갈대로 엮어 만든 삿자리 위에다 펼쳐서 서늘하게 식힌다. 이제 삿사리가 옛말이 되었다. 주걱과 손을 사용해 고두밥과 누룩이 잘 섞이도록 비벼 준다.

이 고두밥과 누룩을 지장수와 혼합하여 항아리에 담는다. 한지로 항아리 입을 단단히 봉한다. 이렇게 빚은 조라술을 당주가 성주산에 들고 올라가 좋은 장소를 선택해서 술항아리를 땅에 묻는다. 3일이면 조라술이 맛있게 익는다. 땅의 기운이 술을 알맞게 익게 만든 것이다. 조라술이 잘 익으면 성주산 산신(山神)인 산신령(山神靈)의 덕택으로 여긴다.

만약 술이 제대로 익지 않으면 산신령이 노하는 걸로 여긴다. 그러기에 온갖 정성을 다해서 조라술을 빚어야 한다. 조라술이 잘못되면 마을의 안녕을 위한 제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아리에 위에 왼새끼로 두르고 터줏가리로 덮어놓는다. 조라술이 잘 익으면 용수로 걸러 제주로 사용한다.

현재는 깊은구지 마을에서 대동우물이 사라졌기 때문에 조라술을 담금에 있어 복잡한 과정은 생략한 채 이뤄진다.

▲ 2001년 성주산 산신제(최영철 제공)

 

◆ 장승 세우기

깊은구지 도당제가 열리기 전날에 장승을 깎아 세웠다. 보통은 삼사일 전에 장승을 깎았다. 성주산에서 잘 자란 네 그루 소나무를 잘라왔다. 옛날에는 사방(四方)에다 장승을 세웠다. 장승을 세운 곳에는 깨끗한 황토(黃土)를 뿌렸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들어오는 액을 물리치기 위함이었다. 사방 수호신이었다. 동쪽의 동방청제장군(東方靑帝將軍), 남쪽의 남방적제장군(南方赤帝將軍), 북쪽의 북방흑제장군(北方黑帝將軍), 서쪽의 서방백제장군(西方白帝將軍)이다. 사방 수호신이기에 장군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장말에선 장말도당굿을 하면서 이들 사방신으로 세워진 장승을 돌며 돌돌이라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들 사방신을 달래고 이들을 위해 화랭이의 축원이 이루어졌다. 마을 사방신에 이어 대동우물에서 맑고 깨끗한 물이 잘 나오도록 하는 우물 축원굿까지 겸했다.

이렇게 사방에다 장승을 세우는 것이 경기 남부 지역인 수원, 부천 등의 도당굿, 도당제의 원칙이었다. 그렇지만 그저 두 개만 세우기도 한다. 일반적인 마을에서 마을 입구에다 세우는 장승이다.

소새대동산신제에선 두 개의 장승을 세운다. 성주산에서 베어온 소나무로 만든 북방천하대장군(北方天下大將軍), 남방지하여장군(南方地下女將軍)을 만들어 세운다. 깊은구지 도당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원래는 현재의 깊은구지 소림사 입구인 명덕 세차장 자리에 당집이 있었다. 아마도 도당제, 도당굿을 행할 수 있는 당집이었다. 부천에서 당집이 남아 있는 곳은 장말뿐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마을마다 당집이 있었다. 지금은 천막으로 당집을 임시로 세우고 깊은구지 도당제를 진행한다.

이 당집에 장승을 세웠다. 북방천하대장군과 남방지하여장군을 세운 뒤 북어를 하얀 실로 감았다. 그런 다음 왼새끼로 꼰 새끼줄로 장승에 매달아 놓았다.  

마을 장승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守護神)이다. 옛날에는 마을에 역병이 돌거나 유행병이 돌면 마을이 쑥대밭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를 지켜주는 든든한 지킴이가 필요했다. 장승은 마을 수호하고 온갖 악귀로부터 벽사 역할을 한다.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단호하게 쫓아내는 축귀(逐鬼)를 하고, 마을의 화재로부터 보호하는 방재(防災) 역할을 한다.

장승은 여기에 덧붙여 마을 사람들의 소원에 따라 농사에 풍년이 들게 하는 풍농을 하게 해준다. 풍농지킴이 역할. 어촌이라면 풍어를 해준다. 풍어 지킴이 역할. 마을 사람들의 건강이나 소원성취를 해주는 신앙의 대상물이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간절한 소원이 있는 사람이면 장승에게 빌고 또 빌었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마을에는 수호신을 모신 산신당, 서낭당 등이 있다. 이들 신은 장승 보다는 위에 있다. 상당(上堂)이라고 한다. 이 상당을 보호하고 수호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는 하당(下堂)으로서 장승과 솟대와 돌무더기 서낭당이 있다. 일종의 돌격대 같은 역할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악귀들을 직접 퇴치하기 때문이다.

장승은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가 과장되게 부릅뜬 눈, 엄청나게 큰 주먹코가 특징이다. 주먹코는 정말 어른 주먹만하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귀밑까지 찢어진 입모양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위협적이며 두려움을 준다. 머리에는 사대 관모를 썼다. 이런 장승의 모습은 무서운 듯하면서도 친근함을 지니고 있다. 멀리서 보면 무섭지만 가까이 보면 어수룩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익살스럽다.

깊은구지 장승은 성주산 산신, 깊은구지 도당신의 하위 신이다. 그러기에 장승만을 위한 장승제는 지내지 않는다. 깊은구지 도당제를 지내기 전에 마을로 들어오는 온갖 악귀나 액을 막아내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 조라술 모셔오기

드디어 깊은구지 도당제가 열리는 날이면 세 명의 당주는 성주산에 오른다. 조라술을 묻어 둔 곳으로 가서 항아리를 들고 온다. 이 조라술은 성주산 산신제, 깊은구지 목신제, 깊은구지 토신제 제사를 지낼 때 제주로 사용한다. 이때 깊은구지 마을에서 갈고 닦아 실력이 출중한 풍물패가 앞장선다. 마을의 신명나는 도당제가 시작됨을 알리는 요란스런 꽹과리 소리가 성주산 울리고 부천시 전역에 울려 퍼진다.  

 <다음 호에 계속>

글 |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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