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

 
글 | 서창미 공인노무사
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상담실장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학연수, 유학 등 흔히 말하는 스펙 몇 종을 다 갖춘 여성 인재라고 생각했는데, 첫 직장에서는 열정페이라는 명분하에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노동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착취만 당하면 다행인 것이 사회 초년생인 젊은 여성들은 직장 내 성희롱에도 늘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직장에서 몇 년을 버티다가 맘 맞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라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 회사에서는 퇴출대상 1순위가 됩니다. 복지제도가 좋은 대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운이 좋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까지 쓰게 되었지만, 회사에 복귀해서도 아이를 봐줄 양육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눈물을 머금고 회사를 그만두는 엄마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워킹맘으로 계속 살아가더라도 회사에서 워킹맘들은 슈퍼 ‘을’ 중의 ‘을’이지요. 어린이집에 맡긴 애를 찾으러 가려면 회식은커녕 안면몰수하고 칼퇴를 해야하고, 칼퇴를 하니 성과가 나쁘다는 평을 듣지 않으려면 맡은 일은 물론이거니와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도 쉽게 거부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얼마 전 출간되어 화제가 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란 소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여성들은 늙어서도 처참한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중년 여성들의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파견회사나 용역회사에 소속된 간접고용이 많습니다. 또 특수고용직이라고 해서 노동자처럼 보이는데 노동법의 혜택을 못받는 직종도 있습니다. 주로 정수기 코디네이터 또는 골프장 캐디가 대표적인데, 최근 대법원은 동네 이 곳 저 곳을 누비며 요쿠르트를 파시는 ‘요쿠르트 아줌마’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결을 내렸지요. 불안한 일자리도 그렇지만, 임금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중년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최저임금이거나 그보다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나쁜 일자리가 많습니다. 청소나 미화, 돌봄 노동같은 육체적•정신적으로 높은 강도의 일을 하면서도 그에 맞는 정당한 임금은 지급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딴 얘기지만, 얼마 전 특검 사무실 앞에서 억울하다고 소리쳤던 최순실에게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했던 청소 아주머니를 보며, 저는 저 아주머니께서 최저임금은 받고 일하시는지, 연차휴가는 잘 쓰고 계신지, 휴게시간에는 온전히 쉬실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대통령 선거 전날이니, 아마도 내일 모레면 우리나라의 새로운 대통령이 누군지 알 수 있겠네요. 이번 대선에서는 여성에 대한 이슈가 있었긴 했지만, 대선 토론 등에서 노동에 대한 문제, 특히 여성 노동에 대한 치열한 정책 공방은 안타깝게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일하는 여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정책과 법안이 우리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한꺼번에 바꾸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바뀔 수 있다는 희망과 토대는 마련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여성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이 바뀌는 것이겠지요. 여성과 남성 모두가 노동자로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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