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제, 목신제, 토신제’로 열려...

 

깊은구지 도당제는

‘산신제, 목신제, 토신제’로 열려...

 

 

 

◆ 깊은구지 산신제 신목(神木)은 팥배나무

 

▲ 2013년 산신제 신목 팥배나무(이우찬)

▲ 2013년 팥배나무 아래의 제물(이우찬)
깊은구지 도당제는 성주산 중턱, 제1약수터 위에 있는 팥배나무에서 산신제를 먼저 올린다. 팥배나무는 신령스런 신목(神木)으로 성주산 산신령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나무이다.

신목(神木)은 신령이 강림하여 머물러 있다고 믿어지는 나무이다. 무속신앙이나 마을 신앙에서 하늘과 땅, 천신(天神)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가 바로 신목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 단군왕검의 건국에서부터 이어온 천신인 환웅 하늘님이 현현(顯現)하는 곳이다. 환웅 하늘님이 머무르고 있는 저 광활한 우주의 중심이 내려와 사람과 소통하는 우주목(宇宙木)이다. 그러기에 신목은 하늘과 사람이 한마음으로 통하는 신령스런 장소이다. 환웅(桓雄) 하늘님이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밑에 강림하였다는 데서 신목의 신화가 비롯되었다.

이 신목은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처음에는 천신인 하늘님과 교통하는 나무였지만 지금은 다양한 신들이 머무는 곳으로 바뀌었다. 보통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해주는 서낭목, 성황목(城隍木)이 있다. 서낭신이 머문다. 당사목(堂祠木)이라도고 한다. 깊은구지 할머니나무, 손자나무이다.

산신당의 수호신인 산신령이 머무는 산신목(山神木)이 있다. 성주산 팥배나무는 산신령이 머무르는 산신목이다. 전국에 이 산신목들이 많이 있다.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을 가리켜 부군당이라 한다. 다른 말로 부근당(付根堂), 부강당(富降堂)이라 한다. 이 부군당을 수호하는 나무를 부군목(府君木)이라 한다. 부군이란 옛날 관청내에 두었던 사당을 가리킨다.

마을 사람들에게 운수대통하게 해주고, 재복(財福)을 가져다주는 대감을 보호하는 대감목(大監木)이 있다.

마을을 수호하는 신인 동신(洞神)을 모신 사당인 동신당(洞神堂)을 보호하는 동신목(洞神木)도 있다.

본향신도 있다. 본향(本鄕)은 집안마다 있는 집안의 뿌리를 가리킨다. 그 뿌리를 관장하는 신이 바로 본향(本鄕)이다. ‘본향이 어디냐’고 묻는 것은 ‘조상신의 뿌리가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 본향신을 모신 사당을 본향당이라고 한다. 그 본향당을 수호하는 나무가 바로 본향목(本鄕木)이다.

우리나라 신목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제일 많은 것은 느티나무이다. 여기에 소나무, 황금소나무, 곰솔, 팽나무, 들메나무, 은행나무, 왕버들, 이팝나무, 향나무, 소태나무, 회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음나무, 갈참나무, 느릅나무, 밤나무, 담팔수 등이 있다.

부천에서도 신목은 현재 살아남아 있는 것만 헤아려도 소새의 느티나무, 깊은구지 느티나무, 솔안말 느티나무, 점말 느티나무, 범박 느티나무가 있다. 들메나무는 대장 마을에서 신목이었다. 은행나무는 소새의 은행나무, 여월의 은행나무, 멧마루 은행나무가 있다. 여기에 성골의 측백나무가 있고, 강상골의 향나무, 섬말의 향나무가 있다. 부천의 마을 마다 신목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많이 베어지고 사라져 버렸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와 항의로 인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신목들은 일제 강점기의 지배세력들이 강제적으로 베어냈다. 또한 당시 기독교에서 신목을 중심으로 마을 도당제가 열리는 것을 미신으로 규정해서 마을 사람들 모르게 베어버리는 수난을 당해야만 했다. 여기에 무지한 60~70년대 급격한 도시건설로 인해 집들을 지으면서 많은 나무들이 사라졌다. 도시개발의 하나인 도로를 내면서도 많이 베어졌다. 한 번 사라진 나무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찾아오지 않는다. 참으로 밥 먹는 것만 중시했지 역사와 문화에 무식한 시절이었다.

오천년 유구한 역사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단결을 높이고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를 실현해오던 신목이 베어짐으로써 공동체가 깨어지는 아픔을 당해야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마을마다 여러 신앙에 관계없이 마을 공동체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신목(神木)은 보호되어지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마을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 성주산 산신은 호랑이

▲ 2013년 산신제(이우찬)
▲ 2013년 산신제(이우찬)
성주산 산신령은 호랑이로 표상된다. 옛날부터 우리나라 호랑이는 영물이었고 산신이었다. 성주산 호랑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성주산은 부천시민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산이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숲이 울창해서 호랑이가 출몰하는 그런 산이기도 했다. 깊은구지 마을이야 몇 가구가 살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호랑이가 출몰해서 소를 잡아가거나 사람을 잡아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

  성주산에 호랑이 설화가 전해져 온다.

옛날에 아무개 성을 가진 조상 중에 하나가 성주산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호랑이는 머리 유골만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그 뒤로 깊은구지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바치는 제물을 바치는 신산제를 지내왔다. 호랑이가 즐겨먹는 날것인 상태로 제사상에 올려놓았다. 생육과 선지를 당제의 제상에 올렸다.

  신목인 팥배나무에 하얀 실을 감은 북어를 매달아 놓는다. 이 때 왼새끼로 꼰 새끼줄로 매달아야 한다. 오른새끼로 꼰 새끼줄은 안 된다. 잡귀, 잡신들이 침입을 하지 못하도록 쳐놓는 금줄이기 때문이다. 금줄로 쳐놓은 곳에 당도한 잡귀나 잡신은 평소에 익숙한 새끼인 오른새끼줄로 알고 이를 풀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새끼줄이 감긴 곳을 부지런히 다가가서 풀어보려고 해도 왼새끼줄이기에 절대 풀리지 않는다. 이렇게 노력하다 잡귀, 잡신은 두려움에 가득 차 도망가 버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팥배나무 아래에 제물을 차려놓는다. 북어, 백설기, 팥시루떡, 소 생고기, 사과, 배, 감, 대추, 밤, 그리고 조라술을 담는 잔이다. 이렇게 제물이 차려지면 무녀가 메조밥과 볶은 오곡잡곡, 굵은 소금을 팥배나무 주위에 뿌려 잡귀가 근접하지 못하게 한다. 두 번째 잡귀잡신을 물리치는 의식이다.

무녀는 부정풀이를 한다. 부정풀이는 부정이 성주산 산신제에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굿이다. 여기에서 부정(不淨)은 청정(淸淨)의 반대말이다. 청정한 것은 잡귀나 잡신들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부정을 타면 동티가 오른다. 동티가 오르면 깊은구지 마을 사람들, 부천시민들이 질병과 재앙을 겪는다. 도저히 용납할 수 있는 동티이다. 잡귀, 잡신들이 저지르는 부정은 난폭하고 처절한 행위이기에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산신제에서 부정풀이가 제일 먼저 행해지는 것은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당연히 산신제를 지내러 온 제주인 세 명의 당주에게 달라붙어 있는 부정들을 먼저 털어낸다. 마을 사람들의 부정도 깨끗하게 털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부정을 다 물리치면 제주들이 나서서 본격적인 제사를 지낸다. 초헌관이 제주를 올리고, 그 다음으로 아헌관, 마지막으로 종헌관이 세 점 잔을 올리고 제배(再拜)를 한다. 유교식 제사가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첨잔을 한다. 첨잔 때는 초헌관이 잔을 올리고 나머지 제관들도 하나 같이 재배를 한다.

이렇게 제사가 끝나면 무녀는 복 나누어주기 축수를 한다. 제일 먼저 제관(祭官)에 대한 만신축수(滿身祝壽)를 해준다. 그 의미로 무녀가 대추, 감 등의 제물을 제관들에게 나누어 준다. 제관들은 이들 대추, 감 등의 제물을 먹는다. 이렇게 먹는 것은 산신의 축복이 담겨 있는 재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관은 마을을 대표하기에 마을을 축복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여러 과일들도 제관의 도포자락에 던져준다.

산신제가 끝나면 마을 풍물패가 풍물을 치면서 마을로 이동한다. 이 풍물패 뒤로 마을 사람들이 끝없이 뒤따른다. 하나같이 신나는 마을 축제를 함께 하기 위해 마음이 들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깊은구지 목신제(木神祭)

▲ 2013년 목신제(이우찬)
▲ 2013년 목신제 제물
깊은구지 마을에 돌아오면 윗말 도당 손자나무인 느티나무에서 목신제(木神祭)를 올린다. 이 목신제는 성주산 산신제와 비슷하다. 성수산 산신령이 머므르면서 깊은구지를 보호해주고, 깊은구지 윗마을에 오랜 세월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목신이 보호를 해준다. 이 목신은 느티나무신이다. 이 느티나무신은 도당신이다. 그리고 서낭신이자 성황신이다. 그러기에 이 느티나무는 도당나무, 서낭목, 성황목이다. 이 느티나무는 깊은구지 마을을 지켜준다. 물론 더 확대되어 부천시를 지켜주기도 한다.

목신제는 느티나무에 북어를 매다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얀실로 매달아 왼새끼줄로 매달아 놓는다. 무녀는 메조밥, 볶은 오곡잡곡, 굵은 소금을 느티나무 주위에 뿌려 잡귀, 잡신을 몰아낸다. 여기서도 무녀는 부정풀이를 한다. 당연히 목신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느티나무 주변을 깨끗하게 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 분의 당주와 깊은구지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도 부정풀이를 한다.

그 다음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잔을 올리고 재배를 한다. 산신제 방식과 똑 같다. 초헌관이 첨잔도 올린다. 이같은 제사가 끝나면 무녀는 제관에 대해 만신축수를 해주고 대추, 감 등의 제물을 나누어준다.

그 뒤 산신제와는 달리 느티나무 한 바퀴 돈다. 마을을 지켜주는 목신을 받드는 의식이다. 그런 다음 깊은구지 도당제의 하이라이트인 토신제가 진행되는 아랫마을 느티나무로 향한다. 풍물패가 요란하게 풍물을 치는 가운데 깊은구지 도당제 깃발도 환하게 펄럭인다.

지신밟기도 겸해서 마을 집집 마다 돌며 복을 빌어주고 토신제에 나와 함께 하기를 청한다.

 

◆ 토신제(土神祭)는 터주신제로 바뀌어야...

세 번째 토신제는 깊은구지 아랫말 도당 할머니나무에서 행한다. 그런데 깊은구지 토신(土神)은 뭘까? 집의 터를 지켜주는 신(神)이다. 깊은구지 마을 집집마다 이 토신이 있다. 토신이 없는 집은 없다. 토신이 없는 집은 집안의 평안과 안전에 대해 등한시한다고 여기면 된다. 그렇지만 현대에는 이 토신을 모시는 곳은 많지 않다. 토신에 대한 이해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토신은 집안의 평안과 집이 들어서 있는 택지의 안전을 관장한다. 옛날부터 산사태나 큰 홍수가 나면 집들이 무너지거나 사람이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 화재가 나거나 집이 무너지면 사람의 목숨을 해치게 된다. 이러한 자연재해, 인재로부터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분은 당연히 토신이다.

이 토신을 경기도 지역에선 ‘터주신’이라고 한다. 부천의 깊은구지는 경기도에 속하므로 당연히 터주신이라고 했다. 부천의 마을인 진말, 장말, 사래이, 조마루, 벌응절리, 겉저리, 약대, 시우물, 오정, 대장, 멧마루, 고리울, 까치울 등 대부분이 이 터주신을 모셨다.

이 터주신이 사는 곳은 작은 항아리이다. 작은 항아리에 가을걷이로 햇곡식이 나오면 가장 먼저 타작한 좋은 벼를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주저리를 틀어서 터줏가리를 만든다. 이 터주가리에 터주신이 살고 있다. 이를 장독대나 그 부근에 모셔둔다. 이 터주가리는 매년 주저리를 다시 엮어서 갈아준다.

주저리는 어른 서너 주먹만큼의 짚을 가지고 만든다. 손갈퀴로 볏짚의 하부에 달린 잔잎을 긁어낸다. 그 뒤 짚의 윗부분을 묶는다. 이어 묶은 부분의 위쪽을 꺾어서 아래쪽으로 향하게 한다. 마치 우산과 같은 모양이 된다. 비가 내리면 터주가리 안으로 스며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땅으로 떨어지도록 한 것이다. 이 주저리 내부를 벌려 터주단지에 씌운다. 주저리에 왼새끼줄로 묶어 바람에 벗겨지지 않도록 한다.

부천에선 터주신이라고 부르므로 토신제를 터주신제로 바뀌어야 옳아 보인다. 그런데 토신을 모시는 제사인 토신제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토신은 제주도에서 주로 쓴다. 터신이라고도 한다. 그 외 지역에선 토신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경기도에선 터주신 이외에도 텃대감, 터주대감, 터주할매, 지신, 후토주임이라고 한다.

전라도에선 터주신을 ‘철륭’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철령, 천륭, 천룡, 청룡, 철륭할마이, 뒤꼍각시 등으로도 부른다. 철륭이 기거하는 자리는 집 뒤꼍이나 장독대이다. 부천의 터주신이 머무는 곳하고 같다. 전라도에선 철륭이 오가리라고 부르는 그릇을 짚주저리로 씌운 형태 안에서 산다. 철륭가리라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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