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시티투어 답사기

심쿵! 우리 동네 썸타기

수원 시티투어 답사기

 

 
 

부천향토연구회 콩시루는 2017년 부천시 공정여행 지도제작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향토연구가 한도훈 선생의 강의를 듣고, 시흥 공정여행사 ‘동네’ 김순영 대표의 사례담도 들었다. 시티투어 사례답사로 수원의 주말 시티투어 코스(화서문-장안문-화홍문-화성행궁-연무대-지동시장-팔달문-융릉-용주사-물향기수목원)를 다녀왔다.

 

  아침 일찍 우리 콩시루 회원들은 공정여행에 관한 다양한 모색을 위해 상동역에 모여 수원으로 출발했다. 출발한지 1시간여 만에 수원역 관광정보센터에 도착했다(수원역 AK플라자1층).

  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내려 걱정했으나. 곧이어 그치고, 오히려 무덥지 않아서 좋았다. 관광정보센터에서 명찰을 받고 나오니,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하시는 분들의 계층은 다양했는데 아기를 동반한 가족, 노모를 모시고 온 가족 등.. 주로 중년층이 주루를 이루었다. 유일하게 외국인 한 분이 있었는데, 문화 해설사 선생님이 여행 내내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 해 주셨다. 순간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수원 화성은 정조 임금이 장차 왕위를 세자에게 내어주고, 노후에 내려와서 편안하게 지내려고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조임금은 안타깝게도 49세에 요절하시는 바람에 그 꿈을 이루지 못 했다.

 

 

  수원 화성 성곽의 총길이는 5.7km이며, 높이는 4~6m로 실학자 유형원의 이론을 바탕으로 정약용이 설계하였고, 석재와 벽돌의 병용, 화살과 창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가졌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축조해 ‘건축사(使)상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200여 년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파손되었다. 그러나 축조상황을 기록해 놓은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여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화서문(華西門) 수원 화성의 서쪽문으로 돌로 쌓은 무지개문 위에 단층의 문루를 쌓고 한쪽이 열려 있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다. 남양만, 서해만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로서 그 원형을 잘 유지하여 아담하고 우아한 멋을 풍긴다.

  장안문(長安門) 북쪽 문으로 정문 역할을 하며,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며,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한다. 우진각 지붕으로 규모가 웅장하여 바깥쪽으로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다. 정조 임금이 한양에서 오면 직선으로 제일 가까운 문이므로 이 곳이 정문이 되는 것이다.

  화홍문(華虹門) 화성을 관통하는 수원천의 북쪽 수문이다. 화홍문의 돌다리이기도 하며, 7개의 홍예수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무지개문 위에 단층의 누각을 세웠다. 수문 아래로 쏟아지는 물보라는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 하여 수원팔경중 하나로 꼽고 있다.

 

 

  화홍문을 지나 위로 올라가니, 암문이라는 것이 보였다. 화성에는 모두 5개의 암문이 있는데, 비상시에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시설로, 유사시에는 문을 닫고, 주변에 쌓아 둔 돌과 흙으로 암문을 메워 폐쇄 하도록 하였다. 암문으로 들어가니, 방화수류정을 끼고 있는 연못이 보였다. 이 연못은 용이 노니는 곳이라 하여 용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이 곳에서 우리는 좋아하는 처자와 눈이 마주쳐 승천하지 못해 용이 못 되고 연못에서 노닐게 되었다는 이무기의 슬픈 전설을 들었다.

  방화수류정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이며, 바깥쪽 아래 인공연못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정자이기도 하다.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18각) 등 화성에서 가장 뛰어난 독창적인 건축물이다. 방화수류(訪花隨柳)는 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이다.

 

 

  화성행궁에 도착하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우리는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앞에서 열리는 무예 24기 공연을 보지 못 하고, 행궁 안으로 들어갔다. 무예 24기는 정조대왕시대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꽃을 피운 전통 무예이다. 정조 대왕은 개인 정예부대 장용영을 만들어 암살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했다.

  봉수당(奉壽堂) 정조 대왕이 어머님을 위해 회갑연을 열어드린 곳이다. 70여가지의 음식과 화려한 꽃으로 장식을 하고 연회를 베풀어 드린 곳-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동갑이여서 한양을 떠나 이 곳 화성에서 잔치를 열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헤아려 진다.

  낙남헌(落南軒) 일제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정조는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을 이 곳에서 하였으며, 특별과거(화성 주변지역 백성을 대상) 시험을 치러서 61명(무과56명, 문과6명)의 인재를 뽑았다.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주는 행사도 이 곳에서 있었다. 또한, 정조 대왕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한 양로연을 시행하였다.

 

  사도세자가 갇혀서 돌아가신 뒤주를 보았다. 사도세자는 체격이 크셨다는데, 이 좁은데서 그것도 한 여름에 8일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그 당시 사도세자를 살려 달라고 간청을 드린 신하가 한 명도 없었다니, 만일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바뀌었을까?

  울적한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점심식사 장소인 지동시장으로 이동했다. 시장 입구에는 몇 몇의 할머님들이 나물과 채소 등을 길거리에 놓고 좌판을 벌이시고 계셨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보리밥집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고 있어서 몹시 더웠다. 뷔페식으로 먹게 되어 있었으나 아주머니가 밥을 퍼 주었다. 나물은 10여 가지 있었으나 가격 대비 맛은 그다지... 두 번 오고 싶은 집은 아니었다. 시간에 쫓겨서 커피를 사들고, 오후 일정을 위해 서둘러 차에 올랐다.

 

 

 
  오후의 일정은 융릉과 건릉이었는데, 시간상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만 올라갔다. 릉에 올라가는 길에는 참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서, 고즈넉하니 좋았다. 왜 이곳을 사도세자의 릉으로 정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다른 릉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정자각이 능침과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약간 비켜 가 능침이 보인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뒤주에 갇혀 돌아가신 아버지를 안타깝게 여긴 정조 임금이 답답해하시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로 해석이 되고 있다.

  융릉(隆陵)은 추존 장조와 헌경의황후가 묻힌 곳으로, 1762년 영조는 28세 나이에 죽은 세자를 슬퍼하면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존호를 장헌으로 올렸고 1899년(광무3)에 장조로 추존되었다. 사도세자가 추존되면서 혜경궁 홍씨도 헌경의 왕후로 추존되었다. 참고로 사도세자의 무덤은 수은묘(양주)-영우원(정조즉위)-현륭원(화성이장)-융릉(광무3)이다.

  건릉(健陵)은 조선 제22대 정조와 효의선황후가 묻힌 곳으로, 추존 장조(사도 세자)의 둘째아들로 1776년 영조가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즉위 직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하고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을 다 했다. 문무를 겸비했던 정조는 규장각을 두어 학문 연구에 힘쓰고, 장용영을 설치하고, 수원화성을 쌓는 등 조선의 중흥을 이루었다. 또한,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붕당정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 힘썼다.

 

 

  용주사(龍珠寺)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갈양사로 창건된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다. 고려 때 잦은 병란으로 소실된 빈 터에 정조 임금께서 보경스님으로부터 무보님의 크고 높은 은혜를 설명한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790년에 절을 새로 지은 것이다.

  용주사로 들어서니 양 입구에 오래된 돌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자로 써 있었는데, 문화 해설사에게 물어보니, 부모은중경을 써 놓은 것이라 했다. 한자를 잘 모르기도 하고 오랜 시간 훼손이 돼서 그런지, 잘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이어서 천보루와 석탑이 있었는데,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이 되 있다. 목조기둥 아래에는 석조 기둥과 같은 높은 초석이 건물로 받들고 있는데, 이는 궁궐 건축과 유사하다. 은중경을 읽어 보고 정조 임금의 효심이 얼마나 지극한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였다.

 

 

  물향기수목원에 도착하기 전에 비가 많이 내려서 걱정했는데. 천우신조로 도착 후에는 비가 그쳤다. 입구에는 안내소가 있었는데, 난간 앞에 각각의 이름 모를 분재들이 예쁘게 놓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기자기한 토피어리들이 양쪽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좋아할 거 같다. 수목원은 여러 갈래가 있었는데. 우리에겐 주어진 시간이 30분밖에 안 돼서 호젓한 오솔길을 택했다.

  길 위에는 많은 꽃과 나무가 있었는데,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연못이 있고 주변엔 산책 할 수 있게 예쁜 꽃들도 많았다.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이 곳에서 벤치에 앉아 시를 읽으며 사색에 잠기련만... 이곳에서는 어떤 코스를 선택해도 후회 없이 힐링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바쁜 일정을 마치고 차에 올랐다.

 

 

  수원 씨티투어 후에 아쉬운 점은 일정이 빡빡하고 코스가 너무 많아서 한 코스도 진중하게 느낄 여유가 없었다. 수원 화성은 이름난 곳이라 한 두 번씩 이상은 다녀갔으리라 생각 되는데 코스를 반으로 줄이고, 여유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도움자료 | 수원시티투어, 네이버 지식백과, 물향기수목원 

글 | 이미영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