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리

 

 

 

먹적골 아래 집들이 가득한 골목에서 참나리를 만났다. 언제부터인가 부천은 온통 집들만의 천국(天國)이 되었다. 겨우 자동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을 맞바라 보고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빌라 등으로 채워졌다. 황토(黃土)가 사라지고 거무튀튀한 시멘트, 콘크리트가 차지했다. 땅이라고는 겨우 손바닥만한 공터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 좁은 공터에 참나리가 씨를 뿌리고 끈질긴 생명을 자랑하고 있어 경이로웠다.

우리나라는 나리 왕국이다. 우리나라 나리를 개량해서 만들어진 백합이 역수입되면서 나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백합이 전세계 꽃시장을 뒤덮고 있다. 하지만 나리꽃의 위용은 여전히 개량종인 백합을 뒤덮는다.

참나리. 솔나리, 땅나리, 하늘나리, 뻐국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누른하늘말나리, 날개하늘나리, 섬말나리, 중나리, 털중나리 등이다. 이 많은 나리들이 다들 새롭고 경이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진정으로 참된 나리는 참나리이다. 아마도 수많은 나리들 중에서 으뜸이고 가장 소중하다고 여겨서 ‘참’ 자가 붙여졌을 것이다.

아래로부터 줄기차게 주먹만한 꽃을 피워내는 참나리는 꽃 중의 꽃이다.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꽃이기도 하다. 하기야 거만으로 똘똘 뭉친 꽃으로 무수한 나비들을 불러 모으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모습 또한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울릉도 개척시대에 먹을 게 없어서 지천으로 깔린 섬말나리 뿌리를 캐서 먹었다는 전설 같은 전설이 있는 걸 보면 이 참나리 알뿌리도 식용으로 먹었다. 울릉도 나리분지는 이 섬말나리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울릉도에 가봐도 섬말나리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만큼 귀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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