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의 행복과 우리의 행복, 세 번째 이야기

포브지카로 가는 길

부탄의 행복과 우리의 행복, 세 번째 이야기

 

▲ 포브지카의 시골학교에서

 다음 일정은 포브지카. 부탄의 동부로 넘어간다. 부탄은 제주도처럼 장방형으로 생겼는데, 수도 팀푸를 비롯한 서부지역이 비교적 잘사는 곳이고 동부는 산악지대라고 한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서 동부지역과 왕래도 쉽지 않다. 포브지카는 동부라고 하지만 국토 전체를 볼 때 중부지방에서도 서쪽이다. 그런데도 거기까지 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부탄의 북쪽으로는 중국 땅인 티벳자치구가 있고, 나머지 3면은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인도 땅을 조금 지나면 네팔이다. 여기가 요즘 중국과 인도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둥랑지구 근처다. 티벳쪽 국경에서 중국이 부탄 쪽으로 도로확장공사를 하고 있는데 군사동맹을 맺은 인도가 이를 저지하고 나섰다. 중국이 부탄을 밀고 들어와 이곳을 장악하면 인도의 북쪽 국토가 동서로 단절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부탄은 인도와는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며, 산업 등 많은 것을 인도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과는 아직 수교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 들어와보니 부탄의 국경지대에서 대치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의 대립은 인도양 봉쇄가 거론되는 심각한 국제뉴스였다.

 
▲관련기사 http://pgtyman.tistory.com/entry/부탄을-사이에--중국과-인도의-영토-분쟁

 

 동부로 넘어가는 관문인 3140미터 고갯마루(도출라패스)에 올랐다. 2003년에 이 고개 근처에서 인도의 반군들과 전쟁이 있었다고 했다. 인도의 아심지방에 근거지를 둔 반군이 정부군의 공격을 피해 부탄국경을 넘어왔고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인도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국왕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승리했다고 하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고갯마루에 108개의 불탑(현지어로 초르텐)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정세도 순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국왕-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은 2006년, 28살에 즉위했으며, 부탄 최초의 입헌군주이다. 선왕이 입헌군주국을 선언한 데 따라 2008년 처음으로 하원 선거가 실시됐다. 총선에서 왕당파 부탄 통일당은 47개 가운데 44석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부탄은 상, 하 양원제인데 먼저 정당투표를 실시하여 상위 두 개의 정당만이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좀 이상한 선거제도다. 민주주의를 강제 이식하고 있지만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입헌군주국이라지만 아직까지 왕의 영향이 막강하다. 왕정을 선호하는 사람이 90%가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1907년에 왕을 옹립했다는데 그 배경은 듣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이 5대왕이니 조선으로 치면 세종대왕 제위의 전성기에 해당할 것인데, 용하게 형제끼리, 또는 숙질 간 칼부림은 없었던 것 같다. 국왕에 대한 존경도 대단하여 집집마다 국왕부처의 사진은 물론 전대 왕들의 사진까지 걸려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하여 서양 문물을 익힌 엘리트이면서 자기보다 10살 어린 평민 출신과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5대왕의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 같다(서점에 이 이야기로 만든 동화책이 있었다).

 국체변경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있다. 2006년 4월 22일 이웃 네팔에서 왕정이 무너졌다. 티베트, 시킴에 이어 네팔마저 왕정이 붕괴된 시점에서 국왕의 고심이 컸을 것이다. 밖으로는 중국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며, 서구 문명과 민주주의가 서서히 국민들 속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부탄은 1999년에 TV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호텔의 TV에서는 많은 방송채널이 나왔다. 알자지라 방송까지 보았다는 일행도 있었다). 종교지도자들의 비호를 받는 외척·귀족세력에 의해 왕실이 허수아비가 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왕실은 절대군주를 포기하고 영국이나 태국 그리고 일본과 같은 ‘존경받는 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아주경제, 하도겸 칼럼 참조).

 첫 선거에서 4명의 왕비를 배출한 외척 상가이 응게덥이 주도한 국민민주당은 참패했다고 한다. 외척의 도전을 제압하기 위한 선거조작은 없었을까? 어쨌거나 하도겸 교수의 말이 전적으로 사실이라 하더라도 왕실의 입장에서는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가정이지만 혁명을 통한 체제전복으로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반군전쟁으로 시작된 상상력은 끝이 없다. 그래도 민초들은 끈질기게 살아간다. 이 산꼭대기에 올라오는 굽잇길에도 소들이 길을 막고 풀을 뜯고 있다. 집도 없고 사람도 안 보이는데 모두 주인이 있는 소들이란다. 길이 좀 넓다 싶으니 오이를 팔고 옥수수를 구워 파는 노점도 나온다. 평생 시내 한 번 나가본 적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 포브지카의 들판과 소
 

 포브지카는 중부지방이다. 지대가 높아 벼농사는 힘들고 주로 감자를 재배한다. 계곡에 형성된 넓은 초원과 뛰노는 말과 소들을 보는 순간 속세를 떠난 것 같은 해방감을 주었다. 맑은 햇살, 신선한 바람, 졸졸졸 시냇물 소리, 새소리, 그리고 소들의 목에 달린 워낭소리까지. 동경해 마지않던 전원생활이다. 장작난로를 피운 롯지형 호텔은 자연휴양림에 온 듯하다. 작은 시골학교의 순박한 아이들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포브지카에서는 검은 목 두루미 센터를 방문했다. 티벳에서 지내다가 겨울을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두루미를 잘 보호하기 위한 NGO 단체라고 한다. 이곳 산마루에 있는 갱테이 사원을 세바퀴 돌아 도착신고를 한 후 착륙하고, 티벳으로 돌아 갈 때도 같은 행동을 한다는 두루미 이야기를 들으며 대장동의 재두루미 걱정도 함께 했다. 인심 좋은 농부의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텃밭의 마늘쫑에 고추장을 찍어 먹던 추억을 어디서 다시 할 수 있을까?

 부탄의 동부라지만 사실은 중부지방의 서쪽에 위치한 포브지카에서는 7월 30일과 31일 두 밤을 묵었다.

 

글·사진 | 윤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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