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헹굴까

 

 

 

 

 붓털이 왜 빠지는지를 오늘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진 붓을 알았다 할 수가 없을 듯 합니다. 이 앎이 너무 가상해서 쓰던 붓을 모아봤습니다. 30자루가 넘네요. 아마추어 붓잡이로는 적지 않은 셈입니다.

 인사동 언저리에 필방이라곤 대신당 밖에 없던 시절부터 드나들었는데, 그 오래된 필방 붓도 두 자루나 보입니다. 제일 오래돼 보입니다. 이 둘은 25년 전 난정서를 임서해서 출품하느라 골라 샀던 소필들입니다. 결국 그 작품은 주최 측에서 소장하겠다고 하도 사정해서 끝내 주고 말았습니다.

 이제 앞으로 붓을 더 살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이제 보니 붓이란 것이 글씨나 수묵화나 쓰임새의 차가 별로 없고 비싸기도 하려니와 남은 생에 이 붓도 다 닳구지 못 할듯 해서입니다. 맑은 물에 잘 헹궈 쓰면 오래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수묵은 사실 수와 묵 사이에 지필이 빠진건데, 그래선지 필을 함부로 다루는 것 같습니다.

 이들 붓으로 이제부터 해를 거르지 않고 수묵농사나 진드감치 지어 볼까 합니다. 벼농사는 자급을 위해서이고 수묵농사는 아무래도 타급을 위해서겠죠.

 벼농사에 수묵까지 겸농하다가 여의하면 논 한 귀를 비어내고 작은 연지나 만들어 붓을 헹굴까 합니다.

 

 

글·사진 | 유진생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