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짝에 다람쥐

 

 

부천 산골말에 도티골, 도티굴이 있다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hansan21@naver.com

 

▲ 도티굴 위쪽 모습

◆ 산골짝에 다람쥐

부천에 산골, 산골말이 있다. 도티골인 도티굴도 있다. 전국에 걸쳐 산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골짜기나 마을 이름이 거의 없다. 도티굴도 마찬가지다.

평안남도 평원군 상송리 연두산 남쪽에 있는 마을이 있고, 부천 산골, 산골말이 유일하다. 산골 대신 산고리, 사내골, 산골굴 등이 전부이다. 산고개라는 뜻의 산지기가 산직(山直)이라는 한자로 변형되어 쓰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땅이름에서는 ‘뫼 산(山)’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전국에 걸쳐 산마다 골짜기를 가리켜 산골이라고 했을 터이다. 아동문학가인 박재훈이 작사한 ‘산골짝에 다람쥐’가 있다.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재주나 한번 넘으렴

팔닥 팔닥 팔닥 날도 참말 좋구나

 

이렇게 산골이라는 말은 널리 쓰여졌다. 하지만 실제 마을 이름이나 골짜기 이름으로는 별로 쓰지 않았다.

 

▲ 도티골 위쪽의 도랑

◆ 도티골인 도티굴은 무슨 의미일까?

부천 송내동에 가면 거마산 북쪽에 도티골인 도티굴과 산골, 그리고 이름없는 골짜기가 있다. 세 개의 작은 골짜기가 나란히 중동벌판을 향해 뻗어 내렸다.

먼저 도티굴은 깊은구지, 부천남중학교에서 인천 장수동으로 넘어가는 마리고개와 연결된 골짜기이다. 단독으로 서 있는 부일주택, 그 곁에 86년도에 입주한 왕궁빌라, 가은병원, 거마산을 성주산으로 해석해서 성주어린이공원, 부천에서 가장 숲이 잘 가꾸어진 성주초등학교, 대한아파트, 동양엘레베이터가 이사한 뒤 세워진 부천송내 e편안세상 아파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천공업고등학교, 송내푸르지오 아파트 아래로 형성된 골짜기이다.

지금은 골짜기로는 위쪽만 간신히 남아 있고 아래로는 골짜기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전부 메워져 있기 때문이다. 도티굴 위쪽은 제법 넓은 밭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고추며 가지, 호박, 토란 등 갖가지 농산물이 풍성하게 자란다. 개울물이 힘차다. 이곳 웅덩이에 봄이면 도롱뇽들이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도롱이들이 성장해서 도티굴 골짜기 산으로 올라 살아간다. 거마산 산자락은 이처럼 도롱뇽들이 생활터이다.

 

▲ 도티굴 개울을 건너는데 쓰이는 나무다리

왕궁빌라 단지에 도티굴약수터가 있다. 가뭄 날에도 맑고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진다. 도티굴 우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왕궁빌라 사람들이 채소를 씻기도 하고, 빨래도 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도의 지형도를 보면 마리고개 언덕 아래에 복숭아 과수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과수원 위쪽 산언덕에는 소나무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을 검디라고 한다.

도티굴은 산골말인 산곡리(山谷里) 앞쪽으로 작은 산언덕 두 개를 넘어서 길게 뻗어 있었다. 산골말은 부천여자중학교를 기점으로 해서 북쪽으로 포진해 있었다.

도티굴 아래는 솔안말을 지나면서 산골가 합류한 뒤 사래이 서쪽을 통과했다. 그 아래는 구지말 앞으로 골짜기 물이 흘렀다. 중동벌을 지나 구지내하고 합류한 뒤 굴포천으로 합쳤다.

도티굴은 전국에서 유일한 이름이다. 뒤에 붙은 굴은 골과 같은 의미로 골짜기라는 뜻이다. 보통 거마산에 도토리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석한다. 북한 몇 군데, 전북 전주에 있다. 부천에선 도토리굴이라고 해야 하는데 도티굴이라고 했다. 도토리굴이 도티굴로 변형되었다는 말인데, 그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그러므로 도토리에서 유래했다는 말은 타당치가 않다.

 

▲ 도티굴에 있는 도롱뇽 안내판

두 번째 해석은 돼지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것도 거마산에 사는 멧돼지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말이다.

도티굴의 어원은 돝의굴이다. 사실 ‘돝, 도티’란 돼지의 옛말이다. 돝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백제 때는 돼지를 도치라고 했다.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목간에 저이(猪耳)라고 표기했다. 백제 목간 3면에는 ‘소리저이기신자여흑야’(小吏猪耳其身者如黑也)‘란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을 해석하면 ‘하급 관리(小吏)가 저이(猪耳)로 몸의 색깔(其身者)이 까무잡잡하다(如黑也)’라는 뜻이다. 저이(猪耳)는 ‘돼지처럼 생긴 하급 관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돼지, 멧돼지 저(猪)’는 도치로 발음된다. 저(猪)는 ‘돝’으로 읽는 훈독(訓讀)이다. 훈독과 음독을 섞어쓰는 것이 향찰(鄕札)과 이두(吏讀)의 특징이다. 이두(吏讀)는 조선말까지 가장 흔하게 쓰였다. 저이(猪耳)에서 뒤에 오는 ‘귀 이(耳)’는 오직 ‘이’라는 발음만 빌려 읽는 음독이다.

이 백제 목간은 6세기 경 백제에서 신라 향찰을 썼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향찰은 음과 훈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둘을 합치면 ‘돝+이’로 읽는다. 돝이는 도티, 도치이다.

고구려 때는 돼지를 도시라고 했다. 이후 고려 때는 돗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돋, 돝’으로 굳었다. 새끼돼지는 도야지라고 한다. 이는 돝에다 새끼를 뜻하는 아지를 더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도아지가 도야지로 바뀌게 된 것이다.

거마산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부천문화원이 2001년 12월에 발행한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에서 도티라는 말에 주목해서 멧돼지가 자주 출몰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설했다. 본인의 해설이었다. 돝의굴이 도틔굴이 되었다가 도티굴이 된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돋, 돝’이라는 말이 산(山)의 옛말이라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도티굴이 멧돼지가 자주 출현해서 생긴 땅이름이라는 해설을 재고(再考)하게 되었다.

 

▲ 도티굴에 있는 부일주택

세 번째 마지막 해설이 필요하다. ‘돋, 돝’이라는 말에 유의한다. 돼지라는 말도 있지만 산(山)이라는 말이 유력하다.

산의 옛말은 다양하다. 다라, 다리, 닥, 닫, 달, 담, 당, 대, 덕, 도, 독, 돈, 돋, 돌, 돔, 둠, 돗, 돝, 도티, 미, 뫼, 메, 자, 잣 등이다. 이 중에서 ᄃᆞᆮ, 돗, 도치, 도티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나는 산(山)이나 우뚝 솟아있는 것을 표현한 돋음’이라는 뜻으로 쓰여진 땅이름을 모았다.

다라실, 다리목, 다리골, 닥골, 닥실, 닥개, 닥고개, 닥섬, 닫들, 닫골, 달골, 달개, 달고개, 달내, 달마니, 달못, 달목, 달뫼, 달바위, 달밭, 담개, 담골, 담바우, 담안, 당고개, 당머리, 당두, 대고개, 대꾸지, 대내, 대메, 대머리, 대섬, 덕골, 덕산, 덕배미, 덕정, 도내, 도래울, 도음밭, 도내기샘, 도롱골, 도장골, 독골, 독실, 돈바우, 돋골, 돋머리, 돋재, 돌개, 돌내, 돌고지, 돌곶, 돌머리, 돌들, 돌무랭이, 돔바우, 둔골, 둠골, 둠말, 둠벙, 둠의재, 두미재, 둠안, 돗골, 돝머리, 돝목, 도티굴,,,

 

▲ 도티굴에 있는 성주어린이 공원

산을 의미하는 돋과 돼지를 뜻하는 돋, 돝이 발음상 똑같아 생긴 혼란이다. 산에 멧돼지가 많이 살고 있어 이를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용비어천가 제43장을 보면 도티라는 말이 나온다.

玄武門(현무문) 두 ‘도티’  사래 마니 希世之事(희세지사) 그려 뵈시니다

죨애산 두 놀이  사래 니 天縱之才(천종지재) 그려 아까

해설 : 현무문 두 마리 돼지가 한 화살에 맞으니, 당 나라 현종은 세상에 드문 이 신기한 일을 그림으로 그려 사람에게 보인신 것입니다.

죨애산 두 마리 노루가 한 화살에 꿰뚫리니, 하늘이 허락하신 (이 태조의) 이 재주를 그림으로 그려야만 알까?

 

▲ 부천공업고등학교

이렇게 용비어천가 등에선 돼지를 돝, 도티로 썼다. 하지만 땅이름에선 우뚝 솟아오른 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 쓰였다. ‘솟아오름, 돋음’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를 한자로 옮겨 쓰면서 ‘칼 도(刀)’나 ‘겨울 동(冬)으로 음역하여 붙이기도 했다.

과천시의 삼국시대 별칭은 동사힐(冬斯肹)이다. 동사힐에서 ‘동사’는 ‘돋, 돗, 돝’으로 본다. 뒤의 ‘힐’은 고구려말인 흘로 고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돋골’ 즉, ‘해 돋는 고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도티굴은 ‘산굴, 산골’이라는 뜻이다. 도티굴 바로 옆에 있는 골짜기가 산골이다. 이 산골하고 그 뜻이 같다. 표기법만 다를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 성주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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