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이 사는 도티굴 한바퀴 돌며...

 

한도훈 (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hansan21@naver.com

비 개인 뒤 도티굴 한바퀴 돈다. 가은병원 옆으로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산길인데도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산길은 제발 그대로 놓아두면 좋겠다. 타박타박 황토길을 걷는 즐거움마저 여지없이 빼앗아간다.

이마엔 구슬땀이 폭포수처럼 흐른다. 땡볕이 야속하다. 오른손에 카메라, 왼손에 캠코더 탓이다. 발맞춰 가면서 캠코더로 찍는다. 머리 위로는 쉴 새 없이 헬리콥터가 날아온다. 헬리콥터 소음이 귀청을 찢는다. 팔월 여름이 떠나갈세라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잠깐 그친다. 목청 찢어지게 울어봤자 헬리콥터 소음에 파묻혀 암컷에게 전달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도티굴 서편 언덕을 조금 오르자 비대칭적으로 솟아난 메타쉐콰이어 숲이 반긴다. 메타쉐콰이어 둥치에 소개글을 써서 묶어놓은 패찰이 보인다. 친절하다. 나무들이 우거진 언덕을 깎아 농장을 만들어 놓았다. 팜하우스도 보인다.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개가 요란하게 짖는다. 요즘에는 밭농사를 짓지 않는지 농장에는 풀들만 가득하다.

 

 

농장에서 거마산 산등성이로 길은 이어진다. 도티굴로 가기 위해 동쪽 소로길을 택한다. 조금 가자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심장까지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산새소리도 들린다. 그때 헬리콥터가 타타타타 요란하게 소음을 일으키며 거마산을 넘어간다.

작은 개울에 고마리가 가득하다. 고마리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고 잎만 무성하다. 고마리를 헤치고 보니 손바닥만한 개울이 있고 거기에 아주 맑은 물이 흐른다. 손으로 떠먹어도 좋을 것 같다. 고마리꽃이 이 개울에 가득하면 꽃개울이 될 것 같다.

조금 더 가니 뿌리째 무너진 한 그루 나무가 반긴다. 몇 년 일지 모르지만 평생을 이 도티굴에 살다 생명을 다해 넘어진 것이다. 그 나무에 큼직한 버섯들이 가득하다. 죽은 나무가 버섯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동쪽 비탈을 내려가니 제법 큰 개울이 있다. 개울물도 많다. 양말을 벗고 개울물에 발을 담근다. 뼛속까지 시원해진다. 여기에서 어미 도롱뇽이 알을 낳은 뒤 부화해서 새끼로 큰 다음 숲 여기저기로 옮겨 갔을 것이다. 도티굴은 멧돼지가 아니라 도롱뇽 골짜기이다. 도롱뇽 삶터, 도롱뇽 집안 대대로 살림을 꾸려온 곳이다. 새끼에서 어른이 되고, 어른이 다시 새끼를 키우고... 아마도 예전에는 멧돼지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멧돼지는 없고 도롱뇽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아남았을 것이다.

도티굴 개울 아래로 내려가자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토란잎이 반긴다. 제법 넓은 텃밭들이 이어진다. 개울에도 작은 폭포가 이어진다.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청량하다. 이 개울물은 텃밭의 고추며 가지, 옥수수 등 곡식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생명을 이어가게 만들어주는 생명수가 된다. 개울 가득 호스가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는 물지게에 물통을 져 날랐을 것이다. 밭고랑마다 선조들의 발자국이 화석처럼 굳어 있을 것이다.

도티굴 아래로 내려오자 나무다리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개울 건너 텃밭으로 가기 위해 만들어놓은 나무다리가 앙증맞다. 원두막도 한 채 있다. 텃밭에 물을 주다가 너무 더우면 이 원두막에 드러누워 낮잠을 잔다.

‘도롱뇽이 사는 송내동 도티골’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송내동을 솔안말이나 산골말이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도롱뇽과 산개구리는 물과 땅이 깨끗하고 건강한 곳에서 사는 양서류입니다. 도티골은 모든 생명들이 서로 도와 함께 살아가는 축복 받은 마을이지요. 도롱뇽과 산개구리가 잘 살아갈 수 있게 지켜주세요.’

도롱뇽이 잘 살아가려면 텃밭에 농약을 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농약에는 도롱뇽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봄에 도롱뇽이 알을 낳으면 호기심에 이 알들을 건져다가 어항 같은 곳에 두지 말아야 한다. 바로 죽게 된다. 장난삼아 한 짓이 여러 생명을 죽이는 짓이다. 부천에 몇 곳 남아 있지 않은 골짜기를 병들게 하는 것이다.

도티굴 아래에 숨겨진 곳에 금모래 밭이 있다. 부천에서 자연산으로 금모래를 만나다니... 기적이다. 금모래 사이로 맑고 신선한 물이 흐른다. 그렇게 흐르는 물이 아깝게도 우수관으로 사라져 간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금모래가 남아 있다는 사실, 그 하나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런데 금모래가 있는 곳이 도티굴 골짜기 끝이다.

금모래 밭 바로 옆에 부일주택이 있다. 그 앞에는 왕궁빌라가 있다. 1986년도에 입주한 빌라이다. 왕궁빌라 뒤에 도티굴 약수터가 있다. 아니 도티굴 우물이다. 우물은 깊게 파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곳은 깊게 파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물이 콸콸 솟아난다. 이 물을 가둬서 마을 사람들이 채소를 씻고, 빨래도 한다. 텃밭이나 왕궁빌라 화단에 물을 주기도 한다.

“우물 사진도 찍어가세요. 물이 아주 맑고 사시사철 끊기지 않고 나와요.”

왕궁빌라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따스한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넨다. 도티굴 약수터 물을 바가지로 떠서 마신다. 꿀맛이다. 도티굴 돌면서 머리꼭대기까지 차오른 갈증이 순식간에 스러진다.

왕궁빌라 가로질러 가면 큰길이 나온다. 화단에 핀 흰 수국이 아름답게 멀어져가는 여름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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