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누에”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국 공모를 실시하고 있는 수주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고경숙)는 지난 9월 11일 제19회 수주문학상 당선자로 군포의 장유정 시인(본명 장봉숙)을 선정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1일에서 20일까지 접수된 462명의 작품 2,500여 편이 8월 26일 예심을 통해 40명의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8월 31일 본심(심사위원 문효치 시인, 문태준 시인)을 거쳤으며 시상식은 10월 28일(토) 오후 1시, 부천 송내어울마당 부천예총 교육실에서 개최됩니다.

 

 

누에

 

장유정(군포)

 

 

수백 년 전 누에의 분묘가 발굴되었다

모서리죽임 같이 흙으로 쌓아올린 사각기둥

실을 짓던 시간들이 뭉쳐있었다

무한한 옷 한 벌 품은 실들이 껍질 속에 있었다

집을 바라는 열의의 모형처럼 타임캡슐엔 우주에 관련한 보고서도 발견되었다

 

집 한 채 따로 들고 나앉듯

방안에는 숨을 뽑아 날개를 만들고 있었다

좁은 침낭 속에 들어 잠을 자는 듯 죽어있는 누에고치

 

자기만의 중심축으로

한곳에 치우침 없이

부드러운 곡선 속에 계속 굴러가는 방향지시등처럼 마찰계수가 작았을 것이다

뾰족한 끝이 보이고

자꾸만 균형 잃고 흔들릴 때

세상과 닿는 유연한 포장

쉼 없이 돌고 도는 지구의 자전처럼 모서리가 둥글다

 

잠자는 머리를 어느 쪽으로 돌리지 않은 것들은 화려한 변태를 겪을 수 있다는 듯

 

미사일저장고를 개조하듯

우주선 캡슐에 건전지 넣는다

긴급 피난형 집처럼 누에가 고치를 짓고 있다

우화등선처럼 손끝에는

하얀 벌레가 한 마리씩 꿈틀거렸다

 

 

[제19회 수주문학상 심사평]

 

 수주문학상에 응모한 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게 고르고, 개별적으로는 고유한 특징들을 갖추고 있어 심사하는 일이 즐거우면서도 쉽지 않았습니다. 최종적으로 논의된 작품들은 ‘첫차’외 4편, ‘대장간 칼’ 외 4편, ‘서큘레이터’ 외 4편, ‘방충망’ 외 4편, ‘누에’ 외 4편이었습니다.

 시 ‘첫차’는 겨울 저녁 한 사람의 영면을 추모하기 위해 들른 장례식장에서 망자와의 스치듯 맺은 한때의 인연을 담담하게 떠올리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영정사진 속 망자의 그 뻐드렁니가 뜻하는 것의 시적 내용이 다소는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 ‘대장간 칼’은 전생에서 후생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시적 화자의 미래(내생)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공간으로서 단철장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단철장이 낫과 같은 날카로운 금속의 공구를 만드는 곳이라는 데에서 화자의 절망과 번민은 생겨납니다. ‘낫’-‘꽃’, ‘전생’-‘후생’, ‘나’-‘그’의 대비가 상징과 암시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산문적 진술이 긴장을 떨어뜨리는 형국입니다.

 시 ‘서큘레이터’ 외 4편의 작품들은 시 창작의 경험이 많아 보였고, 또 조리가 있게 하나의 시상을 직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시 ‘서큘레이터’'에서 보여지 듯 “나는 바람의 생산자. 버튼을 누르면 나의 심장은 뛰지”로 곧바로 진술이 옮겨가도 좋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진술의 보폭을 겹쳐가면서 비좁게 옮겨감으로써 읽는 편에서 갑갑증을 느끼게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방충망’ 외 4편의 작품들은 수상작과 마지막까지 경합했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상상력이 참신하고 탄력이 느껴졌습니다만 작품들의 수준에 편차가 있었다는 점이 열세에 놓이게 했습니다.

 ‘누에’ 외 4편의 작품들은 유려한 생각을 드러내되 중량감이 있고 또 안정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시 ‘누에’는 과거의 시간을 불러내고, 옛 시간이 쌓인 공간 즉 분묘를 누에의 공간으로 바라보지만, 그 유택에 보관된 시간만큼은 둥글고 유연한 것으로 해석하는 부드러운 상상력이 특별했습니다. 개성적인 시안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심사위원 : 문효치(시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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